[인터뷰-5.1 총파업 기획자 조병훈]

해마다 춘삼월이면 평소 자재들을 쌓아놓던 작업장 한 편의 야적장이나 트럭 주차장이 결연한 눈빛과 분노에 찬 함성으로 가득 채워지던 그 시절, 머리엔 하얀 안전모를 쓰고 한 손엔 쇠파이프를 움켜쥔 푸른 작업복 사내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이런 노래가 터져 나오곤 했다.

“파업, 파업, 총~파업,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로 해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파업 현장의 이런 정경은 우리의 머릿속에 정형화된 틀 하나를 단단히 심어놓았다. 즉, 파업은 특정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하는 집단적 의사표현이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아주 드물게 의사나 약사 같은 전문직이나 자영업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고, 외국에서는 기업에 고용되지 않은 공무원이나 경찰, 소방관이 파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 경우에도 ‘동일한 소속감을 공유하는 집단’이 ‘구체적인 요구’를 내걸고 벌이는 ‘단결된 행동’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 조병훈(기본소득 청'소'년네트워크 대변인) ⓒ총파업 블로그 generalstrikekr.blog.com
그런데 애초부터 “노조 깃발 아래 뭉친 우리”가 되기를 거부하는, 동일한 소속감은커녕 각자 직업이나 처지, 성향이 무지개처럼 다양하다 못해 도저히 한 묶음으로 담아내기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이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이해 ‘뜬금없이’ 총파업을 벌였다. 스스로를 “집도 절도 없는 가난뱅이 청년들”이라 부르는 이들은 그 날 박스를 뜯어 만든 피켓과 풍선, 화분, 가면과 종이 왕관으로 치장을 하고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치면서 명동과 시청을 행진했다. 조병훈(기본소득 청‘소’년네트워크 대변인) 씨도 그 날 모인 3백 여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총파업 아이디어가 제안됐을 때부터 줄곧 기획과 준비 작업에 참여해왔으니 이른바 ‘파업 적극 가담자’인 셈이었다.

“힘없는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거부하는 것 밖에는 없었어요.”

맞는 말이었다. 권력과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힘없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혹은 강요된) 운명을 거부하는 것 밖에 없고, 그 거부의 한 형태가 바로 파업이니까. 그런데 그가 말한 ‘힘없는 존재’와 ‘거부’는 단순히 그런 의미로 들리지는 않았다. 

조직보다 행동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20대

“이십대인 제가 홍대 앞 두리반이나 명동 마리에서 철거반대투쟁을 하면서 보니까, 우리 세대의 운동 방식은 예전 선배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들처럼 단일한 강령과 체계를 가진 조직을 만들어 놓고 그 밑으로 모여라 그러면 선뜻 나서기를 꺼려하죠. 하지만 그 대신 이게 내가 할 일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선배들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참여해요. 그래서 단체나 조직을 어떻게 꾸리느냐 보다는 행동을 중심에 놓고 활동하는 게 해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듣고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직이란 것도 결국 구체적인 행동을 위해 만든 틀일 텐데, 현실에서는 그 조직을 유지하고 힘을 키우는 것이 행동보다도 오히려 우선시되는 본말전도의 상황을 흔히 봐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좀 전에 그가 말한 ‘힘없는 존재’란, 조직의 ‘따뜻한 품’에 안겨서 활동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비정형화된 개인을 뜻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직에 속해있든 개인으로서든 간에 어쨌든 뭔가 행동을 하려면 목표와 계획이란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막상 뭘 할 수 있을지를 찾는 건 쉽지가 않았어요. 우린 힘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결국 이 지긋지긋한 시스템에 대한 참여를 철회하자, 총파업이란 아이디어는 그렇게 나오게 된 거예요.”

이 대목에서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궁금증 하나. 물론 기존에 우리가 익히 알던 총파업의 개념으로 이들의 총파업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총파업이라고 하면 뭔가 요구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할 때는 단순히 공장의 기계를 멈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임금을 몇 퍼센트 올려달라든지 근무조건을 개선해달라든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인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목소리는 "진정한 총파업"의 충분조건

“하나의 요구조건을 내걸어서 그걸 따내면 승리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많은 다양한 요구를 내거니까, 운동을 너무 중심도 없이 조각조각 쪼개놓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운동을 파편화시킨 게 아니라 그만큼 각자의 요구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거죠.”

▲ 4월 명동 한국은행 앞 공원에서 열린 총파업 준비모임 참가자들 ⓒ총파업 블로그 generalstrikekr.blog.com

그래서 조병훈 씨와 동료들은 “도시를 멈추고, 거리를 점령하자”라는 슬로건 외에 따로 요구조건을 정하지 않고 참가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직접 말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무상교육에서부터 반값등록금, 기본소득, 청소년 권리, 장애인권, 성차별 철폐, 4대강 개발 반대, 재개발과 강제 철거 철회, 핵발전소 반대, 해군기지 반대, 쌍용차 문제 해결, 저임금 해소, 실업 해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들을 거의 다 망라하다시피 한 의제들을 들고 나왔다. 그 모든 목소리 하나하나에 일일이 귀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총파업”의 충분조건이라는 것이다.

물론 파업 참가자들도 자신들이 내건 요구들을 “이 놈의 사회”가 하루아침에 선선히 받아들일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이들의 총파업을 기존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차별화시키는 핵심요인 중 하나 일 지도 모른다. 즉,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통해 사용자나 정부를 압박한 다음 협상을 통해 일정한 결과를 이끌어낸다. 이기느냐 지느냐가 갈리는 싸움이란 거다. 하지만 이들의 총파업은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어차피 기나긴 싸움의 한 페이지 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더욱더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의 행동을 만들어내고 또 그걸 줄기세포처럼 분화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런 기대를 갖는 근거 중 하나가 이번 총파업이 참가자 모두가 파업의 주체이며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한다고 하면 온라인상에서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요. 그런데 노조의 총파업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세상을 바꾸어주는 건 아니잖아요. 나도 총파업에 동참할 테니 같이 가자, 이렇게 돼야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좀 답답했어요. 하나의 주제로 대동단결을 촉구하는 방식은 사람들을 직접적인 참여자가 아니라 응원과 지지를 하는 관객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런 구조를 바꾸고 싶었어요. 모두가 파업을 해야 진짜 총파업이 되는 거죠.”

참가자 모두가 파업의 주체이자 주인공

그래서 이번 총파업 준비 팀은 블로그를 만들어 사람들이 직접 자신만의 총파업 동참 선언을 쓰도록 했다. 선언은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영상이 될 수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스스로 동참선언을 할 수 있게 온라인 게시판을 만들었어요. 서명만 하면 재미가 없어요. 내가 참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가장 쉬운 게 짤방에 올리는 거잖아요. 우리 게시판이 총파업 짤방인 거죠.”

짤방. “짤림 방지”의 줄임말로 온라인상에서 재미없는 글만 쓰면 게시판 운영자가 삭제할지 모르니 흥미 있는 사진 등을 올려 짤림을 방지함을 뜻한다.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이들의 총파업에도 장막이 하나 드리워져 있는 듯 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짤방이 뭔지도 모르고,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지 않은 기성세대(선배세대나 어른)들은 이들의 취지에 공감한다 할 지라도 선뜻 같이 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총파업 블로그에 올라온 참가자들의 포스터 ⓒ총파업 블로그 generalstrikekr.blog.com

“어른들을 일부러 소외시키려는 건 아니고,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하는 게 우리 또래의 문화니까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거예요.”

어쨌든 그 짤방에서 “파업을 할 수 없다면 병가를 내고, 병가를 낼 수 없다면 태업을 해서”라도 “이 놈의 사회를 멈추자”는 발칙한 상상력이 움텄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놀라웠다.

“각자의 요구를 다 같이 이야기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체제의 변화를 말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도시를 멈추자고 이야기한 거예요. 흔히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안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겠냐고 되묻지만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체제를 일단 멈춰놓고 생각을 해보자는 거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왜 이걸 계속하고 있는지, 왜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래서 본래 행진도 강남 테헤란로에서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체제에 복무하는 장소는 소비의 중심지인 강남 테헤란로라고 생각했거든요. 근처에 삼성 건물도 있고요. 그런데 집회신고가 나지 않아서 한국은행-명동-시청을 행진하는 것으로 변경했어요.”

정말 애초 계획대로 강남 테헤란로에서 행진이 이뤄졌더라면, 이들은 한국 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전국적으로 수십,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1987년 6월 항쟁과 1991년 열사정국 때도 유독 저항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던 곳이 강남이고, 그 중심을 관통하는 등뼈가 곧 테헤란로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에는 집회신고제의 문턱에 한 발 양보하기는 했지만, 체제의 중심지를 점령하겠다는 자신감 가득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들의 행동이 조만간 한국 사회에 더 강력한 펀치를 제대로 날리게 될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90년대 말에 한국 사회운동 세력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잖아요. 10년간 젊은 사람들이 방황하다가 이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멘붕(멘탈 붕괴)’을 마무리하고 정신을 차리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누구는 젊은이들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질책하고 또 누구는 억지 위로를 건네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젊은이들을 이끌어가려 했지만,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집도 절도 없는 가난뱅이”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은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강요된 세상을 향해 당찬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다만, 세상의 귀가 너무 어두워 그들의 외침을 제대로 듣지 못할 뿐이다.

▲ 5월 1일, 을지로 거리를 점령한 총파업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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