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닌 것이 없다> 이현주 목사 출판기념 강연회 열려

 

<사랑 아닌 것이 없다>는 이현주 목사가 10여년 전에 돌맹이, 풀, 빨랫줄, 나무젓가락 등의 사물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물들은 이현주 목사의 친구가 되어 대화를 나눌 뿐 아니라 때로는 그의 스승이 되어 숨겨진 삶의 지혜를 전하기도 한다.

"사람도 사물이요 나무도 사물이니 말이 안 통할 리 없지만, 하도 오래 서로 말을 나누어보지 않아선지 사물들과 대화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무엇보다도 대화에서 먼저 중요한 건 내 말을 잘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일인데, 그러려면 내 생각 내 판단을 비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더란 말씀입니다. 그래요, 이건 그냥 한번 해본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연습이지요. 저는 이런 연습을 통해서, 제가 풀이고 풀이 저라는 진실을 몸으로 한번 저리게 깨닫고 싶었습니다."

이현주 목사는 사물과의 대화가 곧 '나와의 대화'라고 말한다. 질문을 던지는 이도 '나'고, 답변을 듣는 이가 모두 '나'지만 ‘다른 나’이다. 이를테면 나무와 나뭇잎의 대화와 같다는 것이다. "둘은 아니다. 그러나 나뭇잎이 나무인 것도 아니다"라며 나무가 아는 것을 새로 돋은 나뭇잎은 모를 수도 있으니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이라 했다.

▲마포 정보 도서관에서 열린 출판기념 강연회에서 이현주 목사가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있다.

이날 미리 신청한 50명의 독자들과 함께 한 출판기념 강연회에서 이현주 목사는 "미리 준비를 착실하게 하는 것도 미덕이고 좋지만 가끔은 아무 준비 없이 해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 중에 하나"라며, 그 자리에서 방금 떠오른 생각 몇 가지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살다보면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며 상실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상실은 그것이 뭐든 간에 아프지요. 그러나 아프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있어요. 바로 ‘아는 것’이죠. ‘사람은 무엇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안다’라는 격언이 있어요. 아파보아야 건강한 게 무엇인지 압니다. 밝은 곳에 있어야 어둠이 무엇인지 정말 알게 됩니다. 처음부터 계속 어둠 속에 살았던 사람은 어둠이 무엇인지 몰라요. 작년 가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게는 큰 상실이었어요. 그가 가니 비로소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더군요."

이어 성서의 아담이 에덴 동산을 떠난 것도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며 “하느님께서 ‘이 열매 먹으면 죽는다’라고 하셨을 때,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살면서 대가로 산다는 게 뭐지 모르고 천지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로 모르고 살래? 아니면 열매를 먹고 죽지 않고 산다는 게 뭔지,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래?"라고 묻는 것이다.  여기서 아담은 후자를 선택했고, 그래서 온갖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해탈'을 경험할 자격을 얻게 된다. 하나를 상실해야 다른 하나를 얻는다는 뜻이다.  

한편 이현주 목사는 책에 실린 '사물과 나눈 대화' 역시 하나의 '선물'이라며, 이런 선물은 그냥 온 게 아니라 우리가 뭔가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온 것이라며 "내가 바라는 게 아니면 나한테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바란다고 반드시 오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깨어 있기 수련을 하지 않으면 깨달음이 와도 몰라요.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싶다를 가지고 있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선물이 주어져요. 하지만 선물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강연은 독자들과의 대화로 이어졌는데, 참석자들은 평소 살면서 가슴에 품었던 질문들을 던지고 답변을 청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영화 일을 선택했다는 어느 참석자는  "조금만 더 하면 거의 정상이 보이는데 다 내려놓고 다른 산을 올라가고 싶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이에 이현주 목사는 "내 속에 꿈이 있다는 건 참 좋지만  꿈을 이루어야 겠다는 강박을 당하게 되면 억지를 쓰게 된다. 그러면 꿈을 안 가지느니만 못하다"며 "외형적인 거 너머에 있는 안 보이는 꿈, 지금 여기서 이룰 수  있는 꿈을  꾸라"고 조언했다. 

"성인들은 모두 그런 꿈을 꿨어요. 프란체스코 성인이 ‘수도원을 크게 지어야지’ 이런 꿈을꾸지 않았잖아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고 싶다’이게 유일한 꿈이었어요. 그런건 '지금' 할 수 있잖아요? "

이현주 목사는 자신이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면 하느님께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하죠?”라고 자주 묻는다고 전했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은 “응, 네가 어떻게 하나 보려구” 한다고 답한다. 결국 내 자신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현주 목사는 독자들을 위한 선물도 직접 만들어 선물했는데, 이 작은 책갈피에는 ‘空’이라 적혀 있었다. 내 생각, 내 고집들이 점점 사라져 텅 비어  기다리면  이현주 목사가 이 책에서 사물과 대화하듯  세상 모든 존재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 소리들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다 했다.  그것이 나이고 내가 그것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알 수 있으리라. 존재하는 모든 것, 사랑 아닌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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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샨티출판사, 2012

송곳이 말한다.
“나의 모든 날카롭지 않은 부분들은 내 몸의 지극히 작은 부분인 ‘날카로운 끝’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이 날카로운 끝 한 점에 수렴될진대, 송곳이란 곧 날카로움이라고 해도 잘못은 아니겠지.”
“아무렴. 끝이 뭉툭한 송곳은 더 이상 송곳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자네의 ‘뾰족한 끝’은 무엇인가?”
“……?”
“그것 아니면 자네가 자네일 수 없는 그것이 무엇인가?”
“……”
“그것 아닌 자네의 모든 부분이 오직 그것으로 수렴되는 그것이 무엇이냔 말이다.”
“……”
“참고 삼아 말해주지. 바울로라는 사람은 일찍이 그것을 ‘사랑’이라고 했네.” (송곳과의 대화,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중에서)

이현주 목사의 책이 ‘다시’ 나왔다. 절판된 <물物과 나눈 이야기>를 부분 수정하여 <사랑 아닌 것이 없다>라는 이름을 달았다. 책을 펴낸 샨티 출판사의 이홍용 주간은 "좋은 책이 묻혀 지는 게 아쉬어서 이렇게 다시 냈다"고 했다.

마포 평생 학습관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앞둔 그를, 봄의 끝자락에서 만났다. 변함없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 그는 전날 부산에서 모임을 하고 방금 전 서울역에 도착했노라 했다. 그는 부산뿐 아니라 대전, 광주 등에서 한 달에 한 두 번씩, 서울에서는 홍대 앞 건축사무소 ‘빅터 하우스’에서 매주 토,일요일 모임을 갖는다. 자유로이 둘러앉아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배워가는 자리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데 혹시 힘드시지는 않냐고 묻자 오히려 에너지를 얻게 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꼭 자신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나와 만나는 그 사람이 그 시간에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 더 성숙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이 지금  가슴에 품은 하나의 소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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