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기분 좋은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서울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지만 민들레국수집에서 선생님과 다른 분들이 많은 걸 함께 나누는 걸 보고서 저도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전 봉사도 못나가고 큰돈을 기부할 수도 없지만 이 세상이 우리 아이들의 웃음처럼 밝아졌으면 해요. 그래서 제가 쌀 80킬로를 보내겠습니다. 제 맘이 편 하려고 하는 일 인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밥도 굶을 정도로 가난하다면 이 세상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세상입니다. 우리가 돈을 최고로 생각하면서 자기 이익을 절제 없이 추구하다면 세상은 지옥이 됩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날입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이면 우리 손님들이 힘없는 모습으로 국수집 문을 엽니다. 막노동 일거리라도 조금 있다면 이처럼 배를 곪지 않아도 될 손님들입니다. 겨울철이라 일거리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굶은 분, 겨우 라면 하나 끓여서 먹었다는 분, 물만 먹었다는 분도 있습니다. 손님들이 신경이 곤두서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다툽니다.

상돈씨가 밥을 먹으러 일주일 만에 왔습니다. 상돈씨는 하루 막노동을 하면 일해서 번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일을 나가지 않습니다. 악착같이 일해도 돈을 모을 길이 없다고 체념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서른여덟이지만 혼자 삽니다. 어릴 때부터 힘들게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술이 취해서 가족들에게 폭력을 많이 휘둘렀습니다. 열두 살 때 가출을 해서 지금껏 혼자 삽니다. 외로워서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다 써버립니다. 돈으로 친구를 사려고 하니 친구가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뻥튀기 과자 천원어치를 사서 물과 함께 먹으면 배가 부르다면서 그렇게 지냅니다. 오늘은 밥을 든든하게 먹고 내일 일 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광식씨가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들어옵니다. 돼지갈비찜을 접시에 듬뿍 담아서 먹다가 투정을 합니다.
“정부지원도 많이 받으면서 이따위로 밥을 주다니.”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시던 형근씨가 이 말을 듣고,
“이 나쁜 놈.”
한 대 때려버렸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인지 사소한 일로도 잘 싸웁니다. 겨우 두 사람을 달래서 식사를 마치게 했습니다.

좀 조용한가 싶었는데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우리 손님 한 분이 떠들고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손님입니다. 마음을 다 잡아 먹고 좀 사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는 모양입니다. 술에 취했습니다. 사실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데 나이 마흔 아홉에 교도소에서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리 사회에서는 없습니다. 여인숙에 방 하나 얻고 생활보호 수급권자가 겨우 되어서 방세 걱정은 면하면서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애썼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술에 취해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겁니다. 한 시간 동안이나 빌어먹을 세상이라고 투정을 했습니다. 밥 한 그릇 겨우 들게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은 점점 더 해 가는 것 같습니다. 겨울철에 일거리가 없는지 새로운 손님이 많이 찾아옵니다. 밥 한 그릇 맘껏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져 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 불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날입니다. 영두씨가 밥을 먹다 말고 저를 부릅니다. 주머니에서 오만 원을 꺼내 줍니다. 열흘 동안 일을 했는데 오늘 받았다면서 가난한 사람들 몫으로 받아달라고 합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인데도 아낌없이 나누는 우리 손님입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문을 닫을 시간인 오후 네 시 반쯤에 명호씨가 밥을 먹다가 다른 손님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를 제가 가로막고 서서 말렸습니다. 명호씨는 삼청교육대에서 고생이 많았습니다. 후유증으로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혼자 삽니다. 몇 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얼마 전에 부분 틀니를 잃어버려서 밥을 제대로 못 먹습니다. 술 그만 마시고 부지런히 일해서 틀니를 해 넣으라는 말에 백 이십만 원이나 드는 데 꿈도 못 꾼다며 씩 웃습니다. 다섯 시 반에야 명호씨의 식사가 끝났습니다. 천원만 빌려달라고 합니다. 천백 원을 드렸습니다.

“내일 일해서 꼭 갚으세요.”

/서영남 2008-01-24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