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이찬수]

동해는 어디인가

일년간 일본 도쿄에 머문 적이 있다. 도쿄는 위도상으로는 일본 열도의 중간에, 경도상으로는 오른쪽에 위치한다. 중앙의 제일 큰 섬 혼슈(本州) 동남쪽 도쿄 인근 지역을 관동(關東, 간토)이라 하고, 오사카가 있는 지역을 관서(關西, 간사이)라 하며, 관동과 관서의 사이 지역을 동해(東海, 도카이)라 한다.

한국에서 볼 때 일본은 동쪽에 있지만, 일본 사람들이 볼 때 한국은 서쪽에 있다. 도쿄에서 한국을 상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가 지는 서쪽을 보게 된다. 그것이 도쿄에 있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방위감각이다.

어느 날 여행 차 일본에 들른 한국의 어떤 지인이 도쿄의 내 숙소에 며칠 머물면서 일본 여행담을 들려주었다. 동쪽이라는 말을 몇 차례 하며 동해 바다에 다녀왔다고 했다. 처음 잠깐은 관동 지방 옆 도카이(東海) 연안 바다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여행담을 들으며 이내 일본 동쪽에 있는 태평양 해변가가 연상되었다. 그런데 가만 듣자하니 그이가 다녀온 곳은 일본의 동쪽 바다가 아니었다. 그이는 한국의 동쪽 바다, 울릉도와 독도가 있는 그 ‘동해’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 동해였군요’ 하며 나는 생각을 고쳐 잡고 대화에 계속 응했다.

해양과 바다의 경계

국제수로기구(IHO) 총회를 앞두고 일제 이후 일본해(Sea of Japan)로 국제화되다시피 한 우리의 바다 ‘동해’(東海, East Sea)를 회복하기 위해서 재미 한인들 중심으로 백악관에 청원을 하자는 운동이 벌여졌다. 한국에 있는 많은 이들도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백악관의 의중을 묻는 인터넷 청원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리고 4월 23일부터 국제수로기구 <해양과 바다의 경계> 4차 개정판을 확정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25일에는 기존의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고집하는 일본 측 주장과 ‘동해’/‘일본해’ 병기를 관철시키려는 우리 측 주장 관련 논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일본해 단독표기가 아닌, 동해/일본해 병기가 이루어지는 것이 공평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위치의 아이러니

하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려는 ‘동해’라는 이름 때문이다. 우리가 외교력을 총동원해 만일 동해/일본해 병기를 성취해내고, 나아가 아예 동해 단독 표기까지 성사시켰다고 하자. 그렇다고 기뻐해야만 할 것인가.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서쪽에 있는 바다인데 어느 일본인이 동쪽바다(東海)라는 호칭을 좋아라 쓸 수 있겠는가. 한국인이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일본해’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말을 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동해’라는 표기를 국제화하는 데서 오는 국내외 정치 사회적 효과도 없지 않을 테니, 지금 당장으로서는 동해/일본해 병기 목표가 최소한의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장기적으로 보면 ‘동해’라는 이름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서쪽을 바라보는 이에게 ‘동쪽 바다’라는 이름을 상상하게 하는 일 자체가 크든 작든 일종의 폭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동해만이 아니다. 애당초 서해, 남해 등 아무 고민 없이 한반도 본토 중심의 언어를 통용해 온 탓에 제주도민이 ‘남해안’이라는 말을 쓰거나 들으면서 북쪽을 연상해야 하는 터무니없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극동인가

물론 우리도 유럽 기준으로 설정된 방위 언어를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는 멀디 먼 서쪽 팔레스타인 인근 지역을 흔히 근동(近東, Near East), 즉 ‘가까운 동쪽’이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등 서부 지역을 우리도 중동(中東, Middle East), 즉 ‘가운데 동쪽’이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동남아시아는 또 어떤가. 우리에게는 남아시아 혹은 서남아시아 지역에 해당하는데도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지역을 유럽의 시각에 따라 아무 반성 없이 ‘동남’아시아라 쓰고 있지 않는가. 유럽인의 눈으로 만들어진 방위 언어를 피치 못하게 쓰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우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외교력을 총동원해 East Sea라는 말을 국제 표준 언어로 살려낸다고 해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동쪽’(極東, Far East) 지역에 있다며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하는 습관부터 바로잡아야 할는지 모른다.

청해 또는 화해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십여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듯이, 동해, 일본해라는 말 대신에 ‘푸른 바다’, 즉 ‘청해’(靑海, Blue Sea)라는 제삼의 언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은 적절한 대안이다. 서해를 황해(黃海)라고도 부르듯이, 동해를 청해라 부르는 것은 유효한 대안 중 하나이다. 그도 아니라면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던 ‘평화의 바다’(Sea of Peace)라는 말을 되살리는 일도 생각해봄직 하다. 바다 이름에 ‘평화’를 담다니, 꽤 운치있고 미래지향적인 언어 아닌가. 이번 국제수로기구가 발행하는 <해양과 바다 경계> 책자에 ‘동해’에 대한 국제적 표기가 어떻게 결정되든, 장기적으로는 일본과 협의해 대안적 언어를 찾아내는 데 힘을 쏟을 일이다.

당분간은 한국에서는 동해와 청해를 병행하고 일본에서는 일본해와 청해를 병행하되, 국제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Blue Sea로 쓰도록 하자는 합의를 도출해 낼 필요가 있다. 아니면 영어로는 Sea of Peace, 한국어나 일본어로는 평화해(平和海) 혹은 화해(和海)로 쓰자는 합의를 해도 좋을 일이다. 평화, 조화, 화해를 의미하는 ‘화’(和)라는 글자는 우리에게도 좋고, 오랜 일본적 정신을 잘 담은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때로는 타자에게는 폭력이 될 에너지를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일에 투자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찬수 교수(강남대)

<기사제공/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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