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인천 제물포역 근처에서 월세 십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사는 분이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민들레 국수집을 처음 찾아왔습니다. 차비가 있어서 전철이라도 타고 오실 분이라면 이곳에 오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먼 길을 걸어서 왔을 것입니다.

“손님, 여기까지 몇 분 걸리던가요?”
“삼십 분 정도 걸리던데요.”

밥을 차려드렸습니다. 한 그릇만 드시고 일어나시려는 것입니다.

“손님, 안됩니다. 한 그릇 더 드셔야해요.”
“오늘 처음 왔는데 한 그릇으로 만족해야지요.”
“배고프실 텐데 더 드셔야합니다.”

한 그릇 더 드렸습니다. 두 번째 밥공기도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도 한 그릇만 먹고 일어나려는 용기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는 돈도 권력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람대접을 받지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체온이 있습니다. 따뜻한 체온 때문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불편하고 견디기 어려운 아픔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민들레국수집의 VIP 손님들과 민들레의 집 식구들 그리고 막내인 기성씨를 통해서 어렴풋 압니다.

기성씨는 스물여덟 살 청년입니다. 훤칠하게 잘 생겼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영아원에서 자랐고 고아원에서 생활했습니다. 열여덟에 고아원을 나와서 막노동을 하면서 살다가 스무 살쯤에 일하다가 허리를 다쳤습니다. 노숙을 하고 있다가 징병검사를 받고 공익근무 판정을 받고서는 집도 절도 없고 먹을 것조차 없는데 공익근무를 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민등록도 말소하고 만화방을 전전하면서 앵벌이를 하다가 노숙도 하고 그렇게 숨어서 몇 년을 살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생전 처음으로 갈비탕을 먹어보았다고 합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노숙도 힘들다며 얼마 전에야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허리 치료도 받았습니다. 지금은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운전학원에서 운전을 배우고 있습니다. 내년에 물류회사에 취직을 약속받았습니다. 운전학원에 등록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기성씨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가 어깨를 두드려주었습니다.

“그토록 힘들게 살면서도 착하게 살아줘서 고맙다.”
“착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수줍게 이야기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는 일거리가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 하시는 분들이 참 많이도 찾아오십니다.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는데 이분들은 담을 넘을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남의 것에 손을 대느니 그냥 굶습니다. 사나흘 굶는 것은 보통입니다. 요즘은 나이 오십 육십이 되면 막노동판에서는 일거리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상만씨는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는 아내를 돌보다가 돈 한 푼 모아놓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하늘나라로 가고 난 후에는 보증금 없이 월 15만원을 내고 여인숙에서 삽니다. 예순이 다 된 몸이라 막노동판에서 일거리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 내내 돈을 모아도 방세내기도 부족합니다. 처음에 민들레국수집에 오셨을 때는 얼마나 미안해하던지요. 당신보다 더 배고픈 사람이 먹어야 하는데 뺏어먹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손수레를 끌고 고물을 줍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온종일 손수레를 끌고 골판지도 줍고 병도 줍습니다. 하루에 칠팔천 원을 번다고 합니다.

“상만씨, 주인이 없을 때 슬쩍 돈 되는 물건도 집어넣고 그래야 돈을 벌지요.”
“남의 것에 손을 대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것이 나아요.”

정색을 하면서 말합니다. 여인숙 옆방에 사는 사람들이 굶고 있으면 함께 민들레국수집에 옵니다. 그리고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 주는 모습을 봅니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상만씨처럼 약삭빠르지 않습니다.

남의 것에 손을 대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면서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입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 돈이 없다는 것은 바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것까지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돈이 있어야 하는 세상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불안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사용하는 ‘가난’이라는 말의 뜻은 물질적 빈곤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은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삶을 가난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기에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게 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빈곤한 사람이라도 이웃과 나눌 줄 모른다면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가난한 삶이 아닙니다.

단벌신사인 우리 손님들은 비가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단벌옷이 비에 젖으면 갈아입을 옷도 없습니다. 냄새도 심해집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민들레국수집이 한산해집니다. 비가 계속 오면 어쩔 수 없이 우산도 없이 맥없이 비를 맞고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옵니다. 머리가 젖었는데도 닦을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밥부터 허겁지겁 먹습니다. 배가 너무 고프기 때문입니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아드립니다. 수건이 한번 닦았는데 시커멓습니다. 돌아갈 때 찢어진 우산이라도 하나 쥐어주면 참 좋아합니다.

단무지 아저씨는 술집과 다방을 돌면서 껌을 팔아서 하루를 삽니다. 여인숙 방 한 칸 얻을 힘도 없습니다. 버려진 빈집에서 숨어서 생활을 하지만 껌 팔러 나갈 때는 옷차림에 신경을 씁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장사를 해야 잘 팔린다고 합니다. 오늘은 제게 껌을 한 통 선물로 내 놓았습니다. 지난겨울에는 민들레 국수집에 반찬 사는 데 보태라면 거금 만원을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껌을 팔아야 몇 천원 벌기도 힘들 텐데도 만 원을 통 크게 내어 놓습니다.

몇 년간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VIP 손님인 영두씨가 받는 것을 포기했었던 임금을 다행스럽게 받게 되었다면서 십분의 일인 이십만 원은 당신보다 어려운 사람들 몫이라면서 내어놓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부탁이라면서 들어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저와 민들레 식구들에게 한 턱 내고 싶다면서 횟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처음으로 우리 VIP손님께 생선회를 대접을 받았습니다. 영두씨는 막노동을 해서 벌면 십분의 일은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 몫이라면서 한 해에 몇 차례는 나눠줍니다.

화수 자유 시장은 옛날에는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시장 안에 가게가 있는 분들도 장사가 안 되어서 큰길에 좌판을 펴고 장사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생선을 사고 채소를 사면 덤을 얼마나 많이 주시는지 가격을 알지 못합니다. 생선을 선물로 주실 때도 좋은 것만 주십니다. 김장할 때쯤이면 담아놓으신 젓갈을 아낌없이 선물해 주십니다. 내년에도 젓갈 담아서 주신다고 합니다. 채소도 팔 수 있는 것인데도 아낌없이 나눠주십니다.


가난한데도 얼마나 마음들이 넓은 분들인지요. 흥남상회 아주머니와 김포야채 아저씨는 배추나 상추가 비싸면 사러 가도 팔지 않습니다. 싸고 맛있는 것만 골라서 듬뿍 주십니다. 그러면서도 내 살기가 어려워서 도와주지 못한다고 미안 해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오전 열 시에 문을 엽니다. 그런데 여덟 시에도 오시는 분이 있고 아홉 시에도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수집 문을 열 준비를 하면서도 밖을 자주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배고픈 손님이 주변에서 서성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 찾아오시는 손님은 거의 어제 저녁도 못 드신 배고픈 손님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국이 미처 준비가 안 되어도 밥과 반찬만이라도 준비되면 식사하시도록 합니다. 그러면 문 여는 시간인 열 시전에 열 댓 분이 식사를 하신 경우도 많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오후 다섯 시에 문을 닫습니다. 오후 다섯 시인데 마무리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오신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다섯 시까지 하는데, 밥은 다 떨어졌고요, 라면이라도 드시겠...”

어느새 손님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황급히 밖에 나가서 손님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새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후 다섯 시 반이 넘었는데 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서울역에서 지내는데 소문 듣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식사시간이 지난 것을 알고는 먼 길을 왔는데도 불구하고 미련 없이 뒤로 돌아섭니다. 가려는 손님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녁을 못 드시면 어떻하지요?”
“물 마시면 돼요.”

저녁을 못 먹어 배고픈 데 물마시면 된다고 합니다. 중국집에 모시고 가서 자장면 곱빼기를 시켰습니다. 참 잘 드십니다. 늦게 오시는 손님에게는 라면이라도 드실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중에 밥이 떨어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게을러서 일할 의욕도 없다고 합니다. 하는 일이라곤 몰려다니면서 어디에 맛있는 음식이 있는지 찾아다니기나 한다고 합니다.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사람대접이 아니라 짐승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과 만나면 우리의 삶이 술렁거리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따릅니다. 착하게 살고 욕심 부리지 않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살아갑니다. 그 때문에 교양이 없다고 무시당하고 더럽다고 비난받지만 착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돈보다 섭리에 기대어 살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착하게 살 때 그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서영남 200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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