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가난한 사람에게는 혹독한 겨울이 깊어갑니다. 민들레국수집에는 일거리가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 하시는 분들이 참 많이도 찾아오십니다.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는데 이분들은 담을 넘을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남의 것에 손을 대느니 그냥 굶습니다. 사나흘 굶는 것은 보통입니다.

요즘은 나이 오십이 넘으면 막노동판에서 일거리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살았던 상만씨는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는 아내를 돌보다가 돈 한 푼 모아놓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하늘나라로 가고 난 후에는 보증금 없이 월 15만원을 내고 여인숙에서 삽니다. 예순이 다 된 몸이라 막노동판에서 일거리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 내내 일거리를 찾아 돈을 모아도 방세내기도 부족합니다. 처음에 민들레국수집에 오셨을 때는 얼마나 미안해하던지요. 당신보다 더 배고픈 사람이 먹어야 하는데 뺏어먹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손수레를 끌고 고물을 줍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온종일 손수레를 끌고 골판지도 줍고 병도 줍습니다. 하루에 칠팔천 원을 번다고 합니다. “상만씨, 주인이 없을 때 슬쩍 돈 되는 물건도 집어넣고 그래야 돈을 벌지요.” “남의 것에 손을 대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것이 나아요.”정색을 하면서 말합니다.

여인숙 옆방에 사는 사람들이 굶고 있으면 함께 민들레국수집에 옵니다. 그리고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 주는 모습을 봅니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상만씨처럼 약삭빠르지 않습니다. 남의 것에 손을 대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면서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입니다.

단무지 아저씨는 술집과 다방을 돌면서 껌을 팔아서 하루를 삽니다. 여인숙 방 한 칸 얻을 힘도 없습니다. 버려진 빈집에서 숨어서 생활을 하지만 껌 팔러 나갈 때는 옷차림에 신경을 씁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장사를 해야 잘 팔린다고 합니다.

오늘은 제게 껌을 한 통 선물로 내 놓았습니다. 지난번에는 반찬 사는 데 보태라면 거금 만원을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껌을 팔아야 몇 천원 벌기도 힘들 텐데도 만 원을 통 크게 내어 놓습니다.

어떤 대선주자는 노숙자를 비난합니다. 노숙자들은 감사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게을러서 일할 의욕도 없다고 합니다. 하는 일이라곤 몰려다니면서 어느 복지단체에서 맛있는 음식을 주는지 찾아다니기나 한다고 합니다(한겨레신문 2007년 12월 7일자 9면). 그런데 가난한 이들과 참되게 만나면 우리의 삶이 술렁거리게 됩니다. 기쁨에 넘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착하게 살고 욕심 부리지 않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살아갑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착하게 나누면서 살 때 그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에 가난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화수 자유 시장은 옛날에는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시장 안에 가게가 있는 분들도 장사가 안 되어서 큰길에 좌판을 펴고 장사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생선을 사고 채소를 사면 덤을 얼마나 많이 주시는지 가격을 알지 못합니다. 생선을 선물로 주실 때도 좋은 것만 주십니다. 김장할 때쯤이면 담아놓으신 젓갈을 아낌없이 선물해 주십니다. 내년에도 젓갈 담아서 주신다고 합니다. 채소도 팔 수 있는 것인데도 아낌없이 나눠주십니다. 가난한데도 얼마나 마음들이 넓은 분들인지요.

흥남상회 아주머니와 김포야채가게 아저씨는 배추나 상추가 비싸면 사러 가도 팔지 않습니다. 싸고 맛있는 것만 골라서 듬뿍 주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작은 나눔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살 수 있습니다.

/서영남200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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