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부는 인천 수봉공원에서 밤새 떨면서 잠 못 이루다 겨울 아침 햇살을 맞이하면 “뜨겁다!”고 민들레 식구인 선호씨가 말했습니다. 얼마나 추웠으면 겨울 아침 햇살이 뜨겁게 느껴졌을까?

2003년 5월 24일에는 어쩔 수 없이 ‘민들레의 집’을 열었습니다. 민들레의 집은 노숙을 하는 우리 민들레국수집 VIP 손님들 중에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분들을 위한 작은 집들입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은 따로 따로 삽니다. 그러면서 느슨하게 함께 삽니다.

민들레 국수집의 첫손님이자 민들레의 집의 첫 식구는 황영석씨입니다. 1955년에 연평도에서 유복자로 태어나서 엄마 없이 할머니 손에 어렵게 자랐습니다.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1984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복자를 버리고 재가한 엄마가 미웠습니다. 그때부터 노숙생활을 했습니다. 아흐레나 굶고 죽으려는 영석씨를 안드레아 형제가 민들레국수집의 첫손님으로 모셔왔습니다. 국수집 문 앞까지 조그만 오토바이에 태워서 겨우 모셔왔습니다. 두 계단을 올라와야 들어올 수 있는데 두 계단을 오르지 못합니다. 겨우 부축해서 올라왔습니다. 국수를 말아드렸더니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 후에 자주 국숫집을 찾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밥을 들다가 졸기도 했습니다. 또 식사가 끝난 후에도 손님이 없으면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지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5월말에 영석씨를 위해 허름한 단칸방을 얻었습니다. 잠은 그곳에서 자고 밥은 국수집에 와서 먹기로 했습니다. 넓은 방이 너무 좋다고 기뻐했습니다. 며칠 후에 스스로 막노동을 하러 나갔습니다. 저금통장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식당을 하는 사촌 여동생을 만났다며 사촌 여동생 곁으로 갔습니다. 잘 지내는 줄 알았습니다.

2003년 12월에 다시 노숙생활을 하는 모습으로 국숫집에 왔습니다. 방을 마련할테니까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며칠 사이에 그만 영석씨가 길에서 쓰러져버렸답니다. 한 달 후에 나타났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길에서 쓰러져 인천 의료원에 입원해 있다가 치료비를 낼 방법이 없어서 몰래 도망 나왔다고 합니다. 방 한 칸을 얻어서 영석씨가 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민등록증도 벌금을 내고 다시 살렸습니다. 2004년 5월 달에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영석씨의 통장에 돈이 입금되기 시작했습니다. 통장에 돈이 모이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방에 열쇠 하나 달랑 놓아두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2004년 6월 29일 아침에 영석씨가 돌아왔다는 반가운 전화를 받고 급히 민들레국수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찾았습니다. 한참 후에야 어색해 하는 영석씨를 골목길에서 찾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옥탑 방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방에서 쉬고 있을 때 올라가 보았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쪼그리고 누워있습니다.

'영석씨, 좀 편하게 누워요. 방도 좁지 않은데.'

바로 눕도록 했더니 등이 아파서 바로 눕지 못합니다. 쪼그리고 옆으로 누워야 편하답니다. 노숙할 때 겨울에 너무 추워서 동네에 버려진 장롱 속에서 여섯 달을 지낸 적도 있다고 합니다. 밤이 이슥해지면 장롱 속에 들어가서 쪼그리고 자다가 새벽 네 시쯤 살짝 나와서 걸어 다니다 낮에 따뜻한 곳을 찾아 눈을 붙이곤 했답니다.

영석씨가 몇 번을 왔다가 바람처럼 떠났습니다. 한 동안 소식이 없다가 2004년 12월 어느 날 추위에 벌벌 떨며 찾아왔습니다. 도원역 근처의 어느 빈자리에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제발 밖에서 고생하지 말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들어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미안해서 도저히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안을 했습니다. 언제든지 들어와서 지낼 마음이 있다면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영석씨가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하고 있을 때 나타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급히 죽을 끓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죽은 먹습니다. 죽을 다 먹고 나서 소원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다리가 아파서 죽을 것 같다면서 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합니다. 월요일에 병원에 입원하자고 했습니다. 방을 구할 때까지는 우선 국수집 난로 옆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기독병원으로 갔습니다. 말초신경염입니다. 무척 통증이 심한 병이라고 합니다. 통원치료만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식당 난로 옆에 매트를 구해서 깔았습니다. 따뜻한 곳에서 있으니까 다리 통증이 한결 나아졌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밥은 꼭 챙겨 들게 하고 약도 시간 맞춰 먹게 했습니다. 표시 나게 몸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은지 노숙자의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오늘은 어디에서 자고 내일은 어디에서 자나...'

다현이 아빠의 도움으로 조그만 방을 얻었습니다. 중고 텔레비전도 들이고 이불이며 살림살이를 마련했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다리 쭉 뻗고 자니까 참 좋다고 합니다. 이젠 술도 끊어버리고 담배도 끊어버리겠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몸무게가 한 달 만에 10킬로나 늘었다고 합니다. 검사결과 아픈 다리가 회복되는 중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영석씨가 쓰러졌습니다. 부랴부랴 119에 전화했습니다. 응급실에 갔다가 입원을 했습니다. 꽃도 선물 받고, 예쁜 자매님들의 병문안도 많았습니다. 저녁에는 전복죽을 기다리느라 행복해 했습니다. 종합 진찰을 했습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다만 오랜 노숙생활로 영양이 부족하니까 골고루 잘 먹고 잘 쉬라고 합니다. 영석씨는 민들레국수집 이층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취직도 했습니다. 통장에 저금도 사백만원이 넘었습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습니다.

2005년 9월에 영석씨의 힘으로 방을 얻었습니다. 아침에 저에게 열쇠들을 돌려주고, 우산 쓰고 민들레(강아지) 데리고 떠났습니다. 혼자서도 잘 사는 것 같더니만 동인천역 근처에서 노숙을 합니다. 저를 봐도 못 본 체 합니다. 주머니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듬뿍 담겨있습니다. 저금했던 돈을 전부 찾았습니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웁니다. 며칠 만에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돈이 다 떨어진 영석씨는 ‘한번 노숙자는 영원한 노숙자!’라면서 옛날에 지내던 도원역 근처에서 노숙을 합니다.

2006년 6월 4일에 영석씨가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혼자 살 수 있도록 독채로 조그만 집을 얻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노숙하면서 당한 설움을 들었습니다. 벌금 못 내서 구치소에서 살기도 했고요. 강력계 형사들에게 잡혀서 비참한 신세가 되기도 했고요. 고물이라도 줍자고 고물상 손수레를 끌기도 했다고 합니다. 첫날에는 겨우 이천 원을 벌었답니다. 많이 벌 때는 만 원 정도 벌었다고 합니다. 약 넣은 소주 한 잔 얻어먹고 정신을 잃고 리어카를 잃어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계속 노숙을 하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편안하게 쉬도록 했습니다. 일해야 된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용돈이 필요하면 용돈도 나눠드렸습니다. 술을 마시는 것을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2007년 5월 어느 날 영석씨가 알코올 병원에 입원을 시켜달라고 합니다. 베로니카가 입원 준비를 해 주었습니다. 영석씨가 술에 취해서 왔습니다. 입원하게 되면 술을 못 먹기 때문에 있는 돈을 다 털어서 마셔버렸습니다. 병원에 가면서 거의 스무 날을 밥은 입에도 대지 않고 술로만 버텼다고 합니다.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네 달을 입원 치료를 하고 퇴원했습니다. 이제는 술을 먹지 않습니다. 다시 담배도 끊었습니다. 함께 청송교도소 자매상담을 가서 우리 형제들 앞에서 금주와 금연을 약속했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쩔쩔 매는 저를 대신해서 국수집 일을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영석씨의 모습에서 사람은 시나브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민들레의 집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아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가 어쩌면 외로운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 혼자면서 여럿이 함께 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느슨한 공동체가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껏 민들레 식구로 살다가 떠난 사람이 서른 명도 넘습니다. 다시 노숙하는 식구도 있지만 홀로서기를 이뤄낸 식구들이 더 많습니다. 민들레 식구로 지금도 민들레국수집 주변에서 홀로서기를 꿈꾸면서 시나브로 멋지게 변하고 있는 민들레 식구들도 스무 명이나 됩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수 있는 민들레 식구들입니다.

/서영남 200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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