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 4주기를 마주 한다

약을 만지고 사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가 발행하는 처방전이다. 환자와 의사와 약사간의 소통의 도구가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처방전을 읽다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과잉진료’의 흔적이다. 그 동기야 여러 가지겠지만, 질병의 근원을 치료하려는 의사의 의욕에서 오는 ‘오우버’라고 해석하면 반드시 과잉진료가 부정적일 수만은 없다. 길음역 8번 출구를 나와 골목길을 따라가면 삼거리수퍼가 나온다. 수퍼 뒤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재개발을 기다리는 집들 사이에 주인 잃은 녹슨 쇠대문이 굳게 닫혀있다.

서울시 성북구 길음3동 1045번지. 재개발로 철거를 기다리는 이 집은 평생을 ‘과잉진료’라는 오지랖 넓은 삶을 살다 떠난 의사 선우경식(요셉)을 기리는 그의 집이다.

▲ 선우경식 원장

2008년 4월 18일 <한겨레신문>의 사설은 ‘쪽방촌의 슈바이처 하늘나라로 왕진을 떠나다’로, 방송과 각 언론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노숙인의 아버지’, ‘살아있는 성자’, ‘영등포 슈바이처’라는 영예로운 수식어를 그의 이름 앞에 바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선우경식. 그는 ‘가난’과 ‘봉사’로 평생을 과잉진료하며 살았던 의사였다.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 의사 선우경식은 직업인 의사와 신앙인의 소명 사이에서 긴 고민과 갈등을 거친다. 더 크게 더 고급스러운 병원 건물을 짓고 최첨단 의료기기와 고액의 의료상품을 만들어 부유층 환자를 주요 고객으로 삼아야 경쟁에서 이기는 병원, 최고의 이윤을 만들어내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의사, 그는 자본주의의 논리 한가운데서 가난과 봉사의 자리를 제 삶의 좌표로 선택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는 그가 운영하는 자선진료소(요셉의원)를 변화시켰다. 그때까지 달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해왔던 진료소는 이 사건을 전환점으로 구조조정과 파산, 실직과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평범한 회사원과 가장들이 찾는 노숙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는 처방전에 ‘약’, ‘주사’라고 쓰는 대신에 ‘밥’과 ‘집’과 ‘일자리’를 써야 했다.

노숙인을 치료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아픈 몸뿐만 아니라 삶까지 치료해야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노숙인의 자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자활’은 의사로서 노숙인 환자를 치료하는 동안 얻은 깊은 통찰에서 나온 결론이었고,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노숙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부활’이라는 삶의 회복이었다.

‘의사면 의사답게 진료실에 앉아 진료나 하지!’하며, 농업과 공동체 생활을 통해 노숙인의 삶을 회복을 시키려는 그의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조롱과 비판을 던졌다. 그러나 선우 원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기피하는 노숙인 자활사업을 시작했다. 2006년 암과 뇌졸증으로 투병하던 마지막 2년 동안, 그는 전북 고창에 노숙인 공동체 ‘선우경식 기념 자활터’의 씨앗을 심고 터를 다졌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의학의 한계가 아닙니다. 치료비가 없어서 죽는 환자가 있다는 현실입니다.”

1986년 달동네 무료진료에서 시작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그의 과잉진료는 2008년 막을 내렸다. 그러나 2012년 현재 그가 남긴 ‘선우경식 기념 자활터’ 안에는 생전의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9명의 노숙인들이 삶의 부활, 자활을 위해 땀을 흘리며 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 고창의 요셉의 집. 앞으로 보이는 농토는 현재 자활터 식구들이 경작하는 블루베리 밭이다.

오는 4월18일은 그가 떠난지 4번째 맞는 기일이다. 생전에 그를 알았던 사람들 혹은 소문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모두가 존경과 찬사로 그를 기념하고 추모한다. 그러나 ‘추모’와 ‘기념’의 저 쪽 한편에서는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수많은 노숙인들이 여전히 거절당하고 외면당하고 내쫓기고 있다.

서울역도 성당도 병원도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도 이분들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문턱이 높다. 세상에서 가장 문턱이 낮은 집, 그런 집이라야 들어갈 수 있는 이분들이기에 선우경식은 자신의 삶을 낮추지 않았던가? 가난하고 힘없고 내쫓기는 이들 곁에 서 있는 것, 바로 그 삶 때문에 지금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있지 않은가?

선우경식. 그분이 따랐던 스승 예수는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가신 이를 기린다면 ‘선우경식’이라는 이름을 기릴게 아니라 그분이 생전에 하셨듯,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고, 부자들이 벌레 보듯 하고 상종하지 않으려는 노숙인들을 위해 성당문턱을 낮추고 문을 활짝 열어놓을 일이다. 그리고 그가 했던 대로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재수없게(?) 마주친 꾀죄죄한 노숙인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공짜’와 ‘퍼주기’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무슨무슨 이름이 아니라, 그처럼 가난과 함께 하는 사건과 그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비록 ‘가난’과 ‘봉사’라는 과잉진료로 ‘오우버’ 한다해도 그 길과 그 행동을 따를 일이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의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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