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배추가 너무 비쌉니다. 김장을 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십이월 초순쯤 배추 값이 조금 내리면 민들레국수집 손님만이라도 드실 수 있도록 조금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11월 21일 저녁 무렵에 무 200개가 배달되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어떤 분이 이곳에 보내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인천 용현동 성당의 예수살이 모임인 아모스두레에서 토요일에 국수집을 도우러 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인천 금곡초등학교 3학년 2반 선생님과 아이들 여덟이 토요일에 도우러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그만 국수집에서 이토록 많은 착한 분들이 일할 수 있을 게 없어서 김장을 하라고 무를 보낸 것 같습니다. 큰마음 먹고 배추를 주문을 했습니다. 좋은 것으로 백 포기를 주문하고 돌아오다가 다시 되돌아가서 백 오십 포기를 주문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도 모자라겠지만 김장 못하는 이웃들과 그래도 나누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딸과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덕소에 사시는 고마운 부부입니다. 민들레국수집 홈페이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김장하는 데 보태고 싶다고 하십니다. 오늘 배추를 백오십 포기를 주문했는데 주문한 만큼만 더 할 수 있다면 더 해서 김장 못한 동네 이웃들과 나눴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큰마음으로 도와주셨습니다. 덤으로 청송교도소 방문할 때 떡이라도 해서 나눠달라시며 떡값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속이 꽉 찬 배추 삼백 포기와 무 300개라면 행복한 김장 나누기가 될 것 같습니다.


22일에는 배추를 더 주문했습니다. 배추 삼백 포기와 무 100개 그리고 파와 갓을 주문했습니다. 두 해 동안이나 김장을 해 주셨던 봉화의 바오로 형제님이 트럭에 배추를 쉰 포기 정도 실어오셨습니다. 올해는 배추도 비싼데 그냥 봉화에서 김장을 하면 어떠냐고 합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토요일부터 김장을 하려고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착한 마음만 받겠다고 했습니다.

24일은 김장하는 날입니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서둘러 국수집에 갔는데 민들레의 집 식구인 대성씨가 새벽부터 배추를 밖으로 내어 놓고 우리 손님들이 드실 아침밥까지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옥련동 민들레의 집의 두 식구도 곧이어 도착했습니다. 봉사자이신 아가다 자매님도 일찍 나오셨습니다. 무를 씻고 쪽파를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할머니들께서 한 분 두 분 오셔서 거들어주십니다. 구멍가게 지훈이 할머니는 다듬어진 대파를 가게에 가져 가셔서 이웃 할머니들과 함께 썰어서 가져다주십니다. 새마을 부녀회 아주머니들도 오셔서 거듭니다.

금곡초등학교 3학년 2반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이 거들어주시러 오셨습니다. 세 살짜리 은수도 쪽파를 5개나 다듬었습니다. 쪽파를 다듬고 점심을 먹고 배추 절이는 것을 거들면서 도와주다가 월미도로 구경을 갔습니다. 너무너무 아이들이 예쁩니다.

민들레 식구인 원식씨도 배추 절이는 것을 거들었고요. 주헌씨는 생강을 책임지고 혼자서 모두 다듬었습니다. 창환씨는 칼을 전부 갈아주었습니다.


배추는 모두 절여놓고, 갓과 쪽파와 대파는 손질해서 모두 썰어 놓았습니다. 찹쌀 풀을 쑤어서 고춧가루와 섞어서 불려 놓았습니다. 무를 잔뜩 채쳐서 준비해 놓았습니다.

우리 손님들도 끊임없이 오셨다가 식사하시고 가셨다가 또 오셔서 식사하시고 바빴습니다. 다행히 지난해처럼 비가 오지 않아서 우리 손님들 식사 대접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25일은 배추를 버무려서 갈무리도 하고 나누기도 하는 날입니다. 밤새 배추는 잘 절여졌습니다. 김장 양념을 버무릴 수 있도록 커다란 비닐을 준비해 놓은 다음에 생새우를 사러 갔는데 난감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소에는 한 상자에 사오만 원 하던 생새우가 밤새 십사만 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두 상자를 사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한 상자만 샀습니다. 생선아주머니께서 황석어젓 1말들이 1통과 오징어젓 그리고 새우젓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내년에도 김장할 때 쓸 수 있도록 젓갈을 담아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서둘러 오십니다. 지나가시던 동네 아주머니들도 집에 가셔서 앞치마 입고 고무장갑 마련해서 오셨습니다. 주일미사 후에는 송림동 성당 자매님들도 몇 분이 오셨고 송림동 성당 형제님들도 오셔서 거들어주십니다.

돼지고기를 삶아서 썰어놓았습니다. 금방 버무린 배추김치와 함께 우리 VIP 손님들도 맛있게 드십니다. 지나가시던 분들도 한 입 들고 가십니다. 그 많던 배추가 어느새 먹음직스럽게 버무려져서 차곡차곡 갈무리되고, 김장 못한 이웃과 나눌 김치도 네 포기씩 마흔 몫을 만들어서 나눠드리도록 했습니다.

아가다 자매님이 걱정을 하십니다.

“그렇게 나누다간 우리 먹을 김치가 모자랄 텐데요?”
“모자라면 또 담아야지요. 아낌없이 나눠드려야 예수님이 웃으실 겁니다.”


/서영남 200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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