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겨울이 다가오면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우리 VIP손님들을 위한 김장이 어떻게 마련되어질까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민들레국수집의 일이 제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좁쌀 한알. 도솔출판사. 최성현. 46쪽).

저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이 보내 주시는 분들을 대접한다면서 겁도 없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프로그램 공모를 하지 않는다, 후원회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생색내면서 주는 돈은 받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면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점점 늘어나는 손님들 때문에 진땀이 났습니다. 손님들이 드실 쌀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연줄연줄 아는 분들에게 부탁해 보았지만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분도 있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정말 큰 실수를 했구나 싶었습니다. 눈 딱 감고 민들레국수집 문을 닫아버리면 그만입니다. 책임질 일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얼굴이 뜨겁습니다. 한 끼 밥도 얻어먹기 힘든 우리 손님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이런 우리 손님들의 처지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은 또 어떠실까? 용기를 내어서 민들레국수집의 옆 동네인 만석동의 ‘기찻길 옆 작은학교’의 단비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겨우 말했습니다. 공동체와 상의한 후에 연락을 준다고 합니다. 잠시 후 단비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백만 원을 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냥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첫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첫해인 2003년도에는 갑자기 늘어난 우리 손님들이 드실 쌀을 구하느라 김장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푸짐한 김장이 마련되었습니다. 거저 주시는, 아무런 대가가 없는데도 넘치도록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했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과 함께 오순도순 숨어 지내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문하러 오셨던 착한 분이 우리 손님들에게도 대접하라며 성탄 선물로 주신 쇠갈비 반 짝을 택시비를 아끼려고 자유공원 근처에서부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고 오다가 너무 힘들어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님께 짧은 거리를 타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굳이 목적지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국수집 앞까지 태워다 주신 기사님께서 허름한 민들레국수집을 보시곤 어떤 곳인지 물어봅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곳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차비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서너 시간 후에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강화도에서 음식점을 하시는 형님이 좋은 일로 식당을 그만두게 되셨는데 올해 담은 김장 김치를 전부 국수집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곧바로 트럭을 빌려서 강화도로 가서 한 트럭 가득 김치를 싣고 왔습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순무김치까지 주셨습니다. 우리 손님들께 늦은 봄까지 대접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의 김장은 경상북도 봉화에서 농사를 짓는 착하신 바오로 형제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농약을 뿌리지 않았고, 화학비료도 쓰지 않은 유기농 배추인데 그냥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모자라는 고춧가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토굴에 그 많은 김장을 저장까지 해 주십니다. 그래서 두 해 동안은 겨울이 오기 전이면 민들레의 집 식구 서넛과 함께 봉화에 가서 김장을 했습니다. 천오백 포기나 되는 배추를 배추밭에 가서 직접 배추를 뽑아서 트럭으로 바오로 형제님의 집으로 옮겨서 밤늦게까지 전등을 켜 놓고 배추를 다듬고 소금물에 절여 놓습니다. 십일월인데도 살얼음이 어는 곳입니다. 찬바람 맞으며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배추를 절이느라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절인 배추를 맑은 냇물에 헹굽니다. 오전 아홉 시 반쯤에 봉화성당의 수녀님과 자매님들이 승합차로 오송골에 오십니다. 마당에 자리를 펴고 수녀님과 자매님들은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려주십니다. 겨우 저녁 무렵에야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많은 배추가 먹음직스럽게 버무려져서 토굴의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겨서 저장됩니다. 다음 해 여름까지 청송 교도소를 다녀오는 길에 들러서 싣고 오곤 했습니다.

“김치가 제일 맛있어요.”

손님들이 김치가 맛있다고 기뻐합니다. 정말 김치가 맛있습니다.

네 번째 해에는 김장은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봉화에 계신 착한 바오로 형제님께만 큰 부담을 드리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또 마땅히 김장 김치를 저장할 곳도 없어서 김장을 하지 않고, 그냥 조금씩 김치를 담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웃 분들이 저보다 더 김장 걱정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동네 새마을 부녀회에서는 일손을 거들겠다고 합니다. 식재료를 납품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은 김장을 한다면 필요한 고춧가루와 마늘과 생강을 내어놓겠다고 합니다. 샘표간장 대리점을 하시는 분은 소금과 까나리 액젓과 양념들을 선물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화수시장의 착하신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싱싱한 새우를 두 상자나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화수1동 동사무소에 계신 착하신 분께서 배추가 필요한지 물어봅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착하신 분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배추를 샀다면서 필요한 곳에 전해달라고 했다 합니다. 그래서 배추 200 포기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속이 꽉 찬 배추를 320포기나 실어다 주셨습니다. 김포야채 가게 주인은 필요한 무와 대파들을 원가에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옥련동 민들레의 집 식구 셋이 배추 절이는 일을 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지나가시다가 한 분 두 분 거들어 주십니다. 어느새 배추를 다 절여 놓았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김장 쓰레기를 치우는 것을 거들어 줍니다.

김장하는 날인데 비가 내립니다. 봉사자이신 아가다 자매님이 어느 틈에 천막을 마련해 오셨습니다. 새마을 부녀회 자매님들이 비옷을 입고 절인 배추를 씻고, 나르고, 양념을 다듬습니다. 오늘 김장은 배추 320포기, 무 300개, 쪽파 20단, 갓 20단, 대파 15단입니다. 국수집 주변의 민들레의 집 식구들도 김장을 거들어주기 위해 모였습니다. 식사하러 오셨던 우리 VIP 손님 몇 분도 쪽파 다듬는 것을 거들어주십니다. 생선 노점상을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싱싱한 대구를 열 마리나 주시면서 매운탕을 끓여 김장하는 분들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동네 약방 어르신께서는 뜨끈한 쌍화탕을 직접 오셔서 나눠주십니다. 민들레국수집의 김장이 아니라 동네 김장을 하는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김장을 하는 날이지만 VIP 손님들도 계속 찾아오셨습니다. 금방 버무린 김치도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소문을 듣고 식사하러 오신 손님 한 분이 불평을 합니다.

“하필 오늘 김장을 해서 밥 먹는 사람 힘들게 하느냐. 쉬는 날 하지.”

김장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200포기를 담아도 저장해 둘 곳이 모자랄 텐데 320포기나 담았으니 김치가 넘쳐납니다. 김장을 반으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민들레국수집에서 먹을 김치입니다. 하나는 김장을 못 담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이 가득 담겨 버무려진 맛있는 김치가 차곡차곡 창고에 저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장도 못한 가정에 나눠 줄 김치도 비닐 봉투에 잘 담아 나눠 드렸습니다. 서른 가구도 넘게 가져다드렸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에게도 필요한 만큼 나눠드렸습니다. 그 많던 김치가 자기 있을 자리로 잘 나뉘어졌습니다.

다시 새로운 겨울이 다가옵니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올해 김장도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공동선 2007년 11-12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 서영남 2007-11-13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