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종완씨가 하얀 봉투를 수줍게 내밉니다. 2만원이 담겨있는 돈 봉투입니다. 적지만 반찬 사는 데 보태라고 합니다. 오늘은 회사 쉬는 날이라면서 국수집에 거들 것이 있나 싶어서 왔다고 합니다.

종완씨는 올 봄에 늙으신 모친을 모시고 민들레국수집에 식사하러 왔습니다. 지난 해 구월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친구의 빚보증을 섰다가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몰렸다고 합니다. 늙으신 모친은 칠순이 넘으셨고 아들은 마흔 둘입니다. 부평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밥 먹을 곳이 없어서 멀리 화수동까지 찾아왔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날인 목요일에 밑반찬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 같아서 오전 11시쯤 국수집에 갔습니다. 돼지고기 장조림을 만들고 있는데 늙으신 모친을 모시고 종완씨가 찾아왔습니다. 쉬는 날인지도 모르고 왔습니다. 무척 시장해 보였습니다. 밥을 새로 하기도 어렵고 해서 두 분을 모시고 근처의 순대국집에 갔습니다.

종완씨가 순대국을 맛있게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 해 구월 달에 길바닥으로 내몰렸답니다. 그렇게 되니 어느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며칠을 굶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 너무도 죄스러워 어머니를 모시고 무작정 순대국 집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순대국을 시켜서 공기 밥을 네 공기나 먹었답니다. 그리고 소주도 한 병 먹었더니 2만원이 나왔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식사를 마치신 것을 본 다음에 식당 주인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을 했습니다. 다음에 돈이 마련되면 꼭 갚겠다고 했습니다. 식당 주인은 믿을 수 없다면서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돈을 가지고 찾으러 오라고 해서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겨우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부평역전에서 배고파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노숙하는 사람들이 민들레국수집 이야기를 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는데 화수동을 세 시간을 헤매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간판이 흰색에 노란 글씨로 쓰여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종완씨에게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늙으신 어머니가 비바람 피해 몸 누이실 방 한 칸만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찜질방에라도 주무시게 하려고 손수레를 빌려서 고물을 줍는 일을 하는데 하루 겨우 삼사천 원을 벌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방 한 칸이라도 있으면 막노동을 하더라도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립니다. 늙으신 어머니를 버리고 혼자 도망갔다고 다시 돌아왔다면서 울먹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살 집을 구했습니다. 보증금 오십 만 원에 월세 십만 원입니다. 방 하나 부엌 하나입니다. 오래 비워둔 방이어서 기름보일러를 수리하고 방도 도배를 해야 합니다. 계약금으로 이십만 원을 드렸습니다. 방 도배가 끝나는 대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민들레 식구 한 분이 병원에 입원해 있기에 방 준비가 될 동안 그곳에서 임시로 지내시도록 했습니다. 부평역 근처 노숙하던 곳에 가서 짐을 챙겨 오시도록 했습니다. 까만 비닐봉지 세 개에 담아온 짐이 이삿짐의 전부입니다.

민들레국수집 옥상 방에서 헌 이불과 텔레비전 그리고 그릇과 냄비와 전기밥솥과 수저 등등을 챙겨드렸습니다. 쌀도 한 포 드렸습니다. 중고품 파는 가게에 가서 중고 냉장고와 세탁기 그리고 가스레인지를 샀습니다. 종완씨에게 취직자리를 구해서 자립할 때까지는 방세와 쌀과 밑반찬은 최소한으로 도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먹고 살만해지면 민들레국수집에 갚는 것이 아니라 직접 힘든 이웃을 찾아서 도와주는 것이 갚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석 달 전에야 겨우 종완씨는 조그만 회사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조금 있던 빚도 조금씩 갚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부터 민들레국수집에도 한 달에 2만원은 후원하고 싶다면서 수줍게 봉투를 내밉니다. 오늘은 집에 비싼 석유를 세말이나 넣었다고 자랑합니다.

/서영남 200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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