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더 갖기 위한 삶보다는 더 나누기 위한 삶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세상물정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2000년 11월에 25년 동안이나 정들었던 수도원에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왔습니다.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수봉공원에 올라가서 하염없이 인천 시내를 바라보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온종일 인천 시내를 걸어 다녔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하루를 소일하기로는 걸어 다니는 것이 좋았습니다. 물론 차를 타고 다닐 돈도 없었습니다.

발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난감한 때에 청송2감호소에서 출소한 안드레아 형제가 다른 출소한 형제 둘을 데리고 저에게 울면서 찾아왔습니다. 도와달라고 합니다. 참으로 막막한 때에 찾아온 안드레아 형제가 고마웠습니다. 세 형제들을 여인숙에 머물게 한 다음 함께 교정사목을 했었던 자매님들께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곧바로 교도소 형제들을 돕기 위해 모아두었다면서 사백 몇 십 만 원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돈으로 인천시 동구 송현동의 달동네에 “겨자씨의 집”이라는 조그만 집을 월세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교도소생활을 하고 출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낼 곳조차 없는 형제들 몇 명과 함께 지냈습니다. 출소한 형제들이 많았을 때는 열 명도 넘었습니다. 형제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틈틈이 청송 교도소와 감호소의 형제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동인천역을 지나다니면서 배고픈 사람들이 비참하게 길거리에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그릇의 밥을 먹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줄 세우는 사람들의 인정머리 없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앞에 세워놓고 설교하고 그것도 모자라 길게 기도까지 한 다음에야 다 식어버린 밥을 먹게 하는 가슴 아픈 모습을 보았습니다. 밥을 먹은 후에 설교를 하면 전부 가버리니까 먹기 전에 설교를 해야 한다는 뜨거운 열정이 가슴 아팠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사람대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이루셨을 때 배고픈 사람들에게 깍듯하게 사람대접을 하십니다. 모두들 둘러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이천여 년 전 예수님이 사셨던 그곳에서는 부자들이라야 앉아서 식사할 수 있었지 가난뱅이는 부자들 흉내를 낼 꿈도 못 꾸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앉아서 식사하도록 따뜻하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십니다.

출소한 형제들을 위해 작은 집수리 가게를 만들었는데 출소한 형제들의 허황된 꿈 때문에 실패하고 그만 빈 가게가 되어버렸습니다. 빈 가게를 어떻게 이용해볼까 생각하다가 출소한 우리 형제들이 밥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하고 덤으로 거리에서 주린 배를 채우는 분들에게 한 그릇의 밥보다 사람대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흉내 내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이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언제든지 녹차와 커피도 돈이 없어도 마실 수 있도록 2003년 4월 1일에 민들레국수집이라는 아주 조그마한 식당을 열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내어 놓은 소년처럼 저도 가진 것을 전부 털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삼백만 원이 전부입니다. 먼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석 달 동안 답동 성당 근처에 있는 ‘아시아 전문 요리학원’에 등록해서 한식 조리를 배웠습니다.

그런 다음에 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중고가게에서 산 식탁이 너무 커서 사분의 일을 잘라내고서야 겨우 식당에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간이 의자에 비집고 앉으면 겨우 여섯 분이 않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의 식당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배고픈 사람이 많습니다. 먹다 남은 음식물이 썩어 넘쳐난다는데도 배고픈 사람이 많은 이유는 나눔이 불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충분한 물질이 주어져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나누어 가진다면 물질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고픈 사람이 많아지면서 필요에 따라 나누지 못하고 힘대로 가지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순들과 대립들, 경제적인 문제들과 갈등들은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바로 나눔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별 것 없다는 우리의 삶을 이웃과 조금씩 나누기 시작할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이라는 이름은 예수살이 공동체의 민들레 서원식에 참석했다가 국수집 이름을 민들레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살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을 민들레국수집의 기본 정신으로 삼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식사할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살로 가지 않는 눈칫밥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무료급식이라는 표시를 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보통 음식점처럼 일반요식업 등록을 했습니다. 사업자 등록도 했습니다. 사업자 등록은 나중에 할 이유가 없기에 취소했습니다. 돈을 주고받지 않기 때문에 세무서에 보고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판도 흰색 바탕에 노란글씨로 되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십자고상 하나만 벽에 걸어 놓았습니다. 손님들에게 기도하라고 잔소리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잘 살라고 잔소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돈이 모자라서 문을 닫는 경우가 있더라도 하지 않을 것들도 다짐했습니다. 첫째로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산을 얻기 위해서 프로그램 공모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자들의 생색내는 돈은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후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후원회 조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착한 사람들의 후원은 기꺼이 받을 것입니다. 개인의 자발적인 나눔이야말로 사람을 살리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면 저의 주머니를 모두 털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돈이 없어서 문을 닫아야 한다면 민들레국수집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문을 닫고 다른 일을 찾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처럼 경직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인 민들레국수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모든 봉사자들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떠나고 싶을 때 마음 편히 떠나실 수 있도록 먼저 와서 보고 하고픈 일을 찾아 하시도록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아무도 없을 때라도 혼자서라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직접 주방 일을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연지 어느새 사 년 육 개월이 흘렀습니다. 요즘은 한 달 평균 4000~5000명의 손님들이 찾아오십니다. 손님들은 대부분이 노숙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찜질방에서, 고시원에서, 여인숙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분들도 많이 찾아오십니다. 멀리 서울에서 노숙하시는 분들도 많이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신 손님은 어느 누구도 음식 값을 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귀한 손님들이기 때문입니다.

피터 모린은 가난한 사람들을 “하느님의 대사”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대사”들인 우리 손님들은 값없이 음식을 대접받아야 합니다. 처음 국수집을 시작할 때 우리 손님들의 자존심을 위해서 백 원이나 이백 원을 음식 값으로 받는 것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 음식을 대접하고 음식 값을 받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식당 이름이 민들레국수집이지만 국수는 없습니다. 며칠씩 굶은 사람에게는 국수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밥집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름을 바꾸지 않는 것은 언젠가 우리 손님들도 별식으로 국수를 찾을 날이 오기를 바라기 때문 입니다. 찾아오시는 손님이 점점 늘어나서 할 수 없이 한꺼번에 열 분이 앉을 수 있도록 식당을 넓혔습니다. 그러면서 공간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보통 상차림으로 했던 상차림을 바꾸었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간단한 뷔페식 상차림으로 만들었습니다. 뷔페식으로 바꿀 때 염려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뷔페식으로 했을 때 음식 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걱정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욕심이 거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처럼 축적할 줄을 모릅니다. 제발 더 드시라고 강권을 해도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들이 먹어야 한다면서 양보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 사이에는 언제든지 두세 번 와서 드셔도 됩니다. 몇 번을 밥과 반찬을 더 드셔도 좋습니다. 애원을 하다시피 사정해도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서영남 200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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