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밤늦도록 ‘민들레’(강아지 이름입니다)와 장난을 쳤습니다. 공 던지기 놀이도 했습니다. 민들레는 애완견인데 말티즈종입니다. 집을 잃어버리고 거리를 헤매던 조그만 강아지입니다.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피가 묻은 변을 봅니다. 전형적인 노숙 강아지입니다. 배가 고픈지 민들레국수집 앞을 얼씬거리다가 동네 아이들에게 고생하는 강아지가 가여워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수의사 선생님 말로는 아마 두 살쯤 되었다고 합니다. 주사도 맞고 약도 바르고 또 약도 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사료와 간식도 먹였습니다. 며칠을 보살폈더니 팔팔해졌습니다. 재롱도 부립니다.

베로니카가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어서 집에는 데려가지 못하고 밤에는 창고에서 지내게 했더니 저녁 무렵이면 헤어질 줄 알고 자지러집니다. 그런데 베로니카의 어여쁜 마음 덕택에 집에서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만 집에서 키워도 좋다는 단서가 붙었지만요. 다행스러운 것은 강아지가 변은 베란다에서 보고 오줌은 신문지 깔아 놓은 데서 보는 기특한 짓을 하기에 얻은 허락입니다. 밤에는 예쁜 딸 모니카가 데리고 잡니다. 낮에는 저와 함께 민들레 국수집에 가서 지내다가 집으로 오곤 합니다. 지금도 이 녀석이 제 무릎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언제나 혀를 조금 내밀고 있어서 정말 귀엽습니다. 아기공룡 둘리를 닮았습니다.

아침에 민들레를 데리고 국수집에 갔더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누군가 병든 아기 고양이를 수건에 감싸서 국수집 문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모양입니다. 한쪽 눈은 짓물러서 제대로 뜨지도 못합니다. 아무래도 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저녁 무렵에야 조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사료와 물을 담아서 옆에 두고 창고에서 지내게 했습니다. 살아나면 참 좋겠습니다.

아기 고양이까지 식구가 된 때문인지 오늘은 손님들이 참 많이 오셨습니다. 요즘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동인천역 근처의 노숙자는 참 많이 줄었습니다. 전형적인 부랑 노숙자들 몇 명 외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고참 노숙자들은 민들레 식구가 되어서 동인천역 근처의 노숙자 그룹에서 벗어나버린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서울에서 오시는 분이 찾아오시는 손님들의 삼분의 이 이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구별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오시는 우리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이름을 외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신다는 분이 소문을 듣고 오늘 처음으로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셨습니다. 동인천역에서 내려서 물어물어 찾아오셨습니다.

"고기도 없네,"

반찬을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겨우 김치 몇 조각 담아서 드셨습니다.

"고기를 준다던데 소문은 믿을 게 없네!"

고기가 없다고 반찬투정을 하신 손님이 투덜거리며 떠났습니다. 복이 지지리도 없는 분입니다. 곧바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여의도와 압구정동에서 크게 중국 음식점을 하시는 착한 자매님께서 금방 만든 뜨거운 자장을 큰 통으로 하나 가져오셨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요. 겨우 두 세 시간 동안 그 맛있는 자장이 다 나갔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자장면보다는 밥에 비벼서 드시는 자장밥을 훨씬 좋아하십니다. 정말 맛이 있습니다. 두세 번 드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동천홍"의 착하신 분들, 고맙습니다!

착하신 권순남 자매님의 덕택으로 동네의 착한 이웃에 선물을 나눠드릴 수 있어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애경 선물 세트를 몇 상자나 선물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김포채소가게, 생선 아주머니, 콩나물 아주머니, 착한 중국음식점 아주머니, 아흔 아홉 살 할머니댁, 해성이네, 성은이네, 네네 치킨의 민지네, 국수집 옆집 지희네, 기성 씨 집주인 할머니댁, 찬희네, 민들레의 집 식구들, 중증 장애인 자립센터 등등. 조그만 선물에 얼마나 고마워하시고 기뻐하시는지요! 작은 나눔으로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서영남 200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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