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민들레국수집의 여름휴가는 아주 특이합니다.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멀리 청송교도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꼴베 형제를 만날 때마다 진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봅니다.

꼴베 형제(박용기 47세. 막시밀리안 꼴베는 세례명입니다)는 1990년 나이 서른일 때 징역 20년 6월형에 감호처분을 받고 17년째 청송교도소에 갇혀있는 장기수입니다.

12년 전에 청송교도소의 교도관으로부터 꼴베 형제를 소개받았습니다. 편지를 보냈더니 글씨체는 멋진데 받침은 엉망으로 틀린 답장을 받았습니다. 꼴베 형제는 교도소에서 겨우 글자를 깨쳤습니다. 이렇게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꼴베 형제는 어머니께 불효한 것을 항상 마음 아파했습니다. 어버이날에 어머니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매년 어버이날에는 꼴베 형제의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하고 가슴에 아들 대신 꽃을 달아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감옥에 있는 아들 걱정으로 시작된 심장병을 앓고 계시면서도 청소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아들이 나중에 출소하면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주고 싶어서입니다. 임종 때도 감옥에 있는 아들 걱정에 눈을 감지 못하셨습니다. 제 손을 꼭 잡고 아들 부탁하면서 임종하셨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날인 금요일을 택해서 한 달에 두 번 청송을 다녀옵니다. 청송교도소와 청송2교도소 그리고 청송3교도소의 천주교 형제들과 자매상담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참 멀고 먼 곳입니다.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면서 두 시간 정도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이 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꼴베 형제를 만난 후 12년째 계속하는 청송 소풍입니다.

이번 자매상담에는 저의 아내인 베로니카도 함께 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베로니카의 의동생들인 최고수와 무기수와 장기수 형제 여덟 명은 여름휴가 때의 만남을 아기들처럼 기다립니다. 베로니카도 며칠 전부터 동생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성경, 기도책, 묵주와 수건과 양말과 티셔츠입니다. 교도소 들어가기 전에 과자와 복숭아 그리고 얼음과자와 케이크도 준비했습니다. 형제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좋습니다.

두 개의 외정문을 지나서 세번 째 내정문에서 교도관에게 신분증과 휴대폰을 맡기고 교육교화과에 연락을 하면 교도관이 나옵니다. 신분사항을 적어서 보안과에 가져가서 결제를 받으면 방문증을 받아 가슴에 차고 마중나온 교도관과 함께 자매상담실로 들어갑니다. 몇 개의 경계가 철저한 철문을 지나서 상담실에서 기다리면 교도관들이 우리 형제들과 동행해서 옵니다. 재소자는 반드시 교도관과 함께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시작기도를 하고 성경공부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음식 나눔을 시작하면서 꼴베 형제의 세례명 축하식을 했습니다. 케이크를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생크림까지 말끔하게 드셨습니다. 꿀맛이라고 합니다. 모자라지 않을 음식입니다. 그런데도 아주 조금씩만 준비해 놓은 음식을 드십니다. 너무 맛있어서 혼자 먹고싶지만 기다리는 동료들과 나눠 먹고싶어서 먹고픈 유혹을 참습니다. 어느 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서둘러 마침 기도를 하고 다음 달에 만날 약속을 하고 교도소로 나옵니다.

곧바로 민원실로 가서 자매상담을 나온 형제들에게 만 원 씩 영치금을 넣어드립니다. 청송교도소에만 이천 명이 넘게 갇혀 있습니다. 거의 200여명 정도가 영치금이 한 푼도 없습니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돈이 없어서 참으로 견디기 힘든 수용생활을 하게됩니다.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재소자를 '법자'라고 합니다. 법무부에서 돌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꼴베 형제는 자기 몫을 포기하고 ‘법자’ 할아버지에게 양보합니다. 꼴베 형제의 영치금은 그래서 '0원'인데도 싱글벙글입니다.

꼴베 형제는 교도소의 종이가방을 만드는 공장의 반장입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가 작업시간입니다. 요즘은 한 달에 5-7만 원 정도의 작업 상여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몇 년 전까지는 한 달에 만 몇 천 원 정도 받았다고 합니다. 2003년에 노숙자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한 후에는 배고픈 노숙자들이 굶으면 나쁜 생각을 할 염려가 있다면서 몇 차례에 걸쳐서 모은 돈을 보내왔기 때문에 작업 상여금마저도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약 170만 원 정도의 귀한 돈을 우편환으로 보내왔습니다. 17년 동안 일한 자기 몫을 가난한 이웃과 아낌없이 나누는 모습은 참으로 진흙탕에서 핀 연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받았는데 아낄 것이 없다면서 행복해 합니다.

/서영남 2007.9.24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