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쪽방에서 지내면서도 열심히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가서 하루 일거리라도 얻어 보려고 애쓰다가 공치고 빈털터리로 민들레 국수집에 오는 분이 많습니다. 또 목요일과 금요일은 민들레 국수집이 쉬는 날이어서 다른 곳으로 식사하러 갔다가 “젊은 사람이 밥 먹으러 오다니!” 비웃는 말에 아예 자존심이 상해서 굶어버리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민들레 국수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2003년 4월 1일에 “1930년경 미국에서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에 의해 시작된 ‘가톨릭 노동자’ 운동에서 ‘환대의 집’은 교부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소외된 이들을 맞아들이고, 갇힌 이들을 방문하며,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고, 집 없는 이들에게 방을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이 집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 고아, 노인, 여행자, 순례자 그 밖의 곤궁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 이 집은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안식처이면서 독서실과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기도와 토론과 공부를 하는 곳이다. 누구나 환영하는 이 집에선 항상 커피가 난로에서 끓고 있었고, 있는 재료를 아무거나 넣고 끓이는 ‘잡탕 찌개’가 난로에서 굶주린 사람들을 기다려 주었다”(잣대는 사랑에서)는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모델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빌라 옆에 버려진 옷장에서 여섯 달이나 잠을 자면서 지낸 분도 있습니다. 구석진 곳에서 노숙을 하다가 쓰러졌는데 겨우 일어나보니 아흐레가 지났다면서 기다시피 밥을 드시러 오는 분도 있습니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보신탕을 조금 숨겨 놓았다가 이분에게만 며칠 드렸습니다. 며칠 만에 농담을 할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짧은 이야기들

김칫국을 급히 끓였는데도 손님들이 맛있다며 국을 더 달라고 합니다.

미나리나물이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참 행복합니다. 미나리를 두 시간이나 잎을 떼어내고 줄기만 예쁘게 다듬어서 끓는 물에 데쳤더니 공들인 시간에 비해서 너무나 양이 적습니다. 간장, 깨소금, 고춧가루, 파, 마늘 다진 것을 넣고 참기름 넣어서 무쳤는데 거의 모든 손님이 맛을 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이런 정성이 담긴 나물까지 만들어요!’ 하시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손님들이 청양고추를 좋아합니다. 15개나 한 번에 드신 분도 있습니다. 어느 날 손님 한 분이 청양고추가 먹고 싶어 하셔서 청양고추를 사와서 고추장과 함께 내어 드렸습니다. 청양고추 하나 드시고 쓰러졌습니다. 119에 신고했습니다. 구급차가 와서 모시고 갔습니다. 며칠 입원하고 오셨는데, ‘매운 고추 드릴까요?’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십니다.

400원 아저씨는 예순 넷입니다. 군대에서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군복무 기간이 남았는데도 기차표 한 장과 빵 사먹으라는 400원을 받고 군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자주 깜박 놓으셔서 민들레국수집을 잘 찾아오시지 못합니다. 옆 골목에서 이리 저리 헤매고 계십니다.

안드레아 형제가 대부도에 가서 꽃게를 조금 잡아왔습니다. 간장 게장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드릴 수가 없어서 입맛 없어하시는 분들에게만 한 마리씩 드렸습니다. 옆에서 보시던 손님이 제발 간장 게장의 국물만이라도 달라고 하십니다. 어쩌지요! 그래도 국물만 드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민들레 나물을 무친 날은 참 행복했습니다. 얼마나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는지요.

오징어 젓갈을 반찬으로 내면 저는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얼마나 잘 드시는지 마음껏 드실 수 있게 드리지 못해 마음 아프게 만듭니다.

옷에 청색 테이프를 붙이고 오셨기에 ‘이게 뭐지요?’ 물었습니다. 옷이 찢어져서 꿰맬 줄 몰라서 청색 테이프로 붙였다고 합니다. 상동 성당 빈첸시오회에서 보내 주신 옷 덕택에 제가 생색을 내었습니다.

아흐레를 굶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나는 일주일을 굶어 봤어요.’ 합니다. 보통 사흘 나흘 정도 굶는 것은 굶은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죽은 죽어도 먹지 않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는 데도요. 그래도 딱 한 가지 닭죽은 모두들 좋아하십니다.

길에서 좁쌀을 먹고 있는 손님이 분이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어느 교회에 갔더니 좁쌀을 줘서 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국수집으로 모셔와서 밥을 드리니 세 그릇이나 드셨습니다.

고아원 출신인 스물다섯 살 청년이 갈비탕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손님들이 잘 드시는 음식은 보신탕! 갈비탕, 삼계탕, 쇠고기 무국, 곰탕, 감자탕, 쑥국, 민들레 나물, 시금치 나물, 콩나물, 멸치 볶음, 김, 간장 게장, 오징어젓갈, 닭볶음, 돼지 불고기, 소불고기, 고등어자반, 비빔밥, 수제비, 자장면, 청국장, 갈비찜, 동태전, 깻잎조림, 달걀 프라이, 상추쌈, 풋고추, 냉이 된장국, 꽁치 조림, 추어탕, 떡국, 파김치, 부추김치, 닭백숙 등등입니다.

민들레의집 식구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도 참 좋다고 합니다. 노숙할 때는 빈집에서 자거나 길에 버려진 장롱 속에 들어가 잘 때는 기침이 나오면 꾹 참았다고 합니다. 기침을 했다가는 거기에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젠 기침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씨 고운 제주 할머니가 나흘 전에 시장에서 맛나 보이는 튀김을 샀습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으신 데도 불구하고 두세 개를 드셨는데 그만 체하셨습니다. 사흘을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시고 혼자 아프셨답니다. 맛나게 식사를 드신 후에 만 원을 바꿔 달라십니다. 바꿀 돈이 없다고 말씀드리니 주저하지도 않으시고 돼지 저금통에 넣으시려고 합니다. 급히 가게로 달려가서 잔돈으로 바꿨습니다. 천원을 돼지 저금통에 넣으시며 웃으시는 모습이 참 예쁩니다.

민들레 국수집 주변에는 가난한 이웃이 많습니다. 밑반찬을 자주 가져다주십니다. 생색을 내시는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또 시장이나 이웃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너무 많이 덤을 주셔서 제가 시장 가격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서영남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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