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는 일들, 빨래하고 다림질 하는 일들, 감옥에 갇힌 형제들을 찾아보는 일들, 외로운 이웃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일들, 노숙하는 이웃들과 밥을 나누는 일들, 배고픈 이웃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작고 보잘것없는 일들입니다.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어서 누구나 쉽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저는 작은 일들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지만 정성스럽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민들레국수집은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문을 엽니다. 그리고 쉬는 날인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감옥에 갇힌 형제들을 찾아보는 일도 하고, 출소해서 힘겹게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형제들을 만나기도 하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국수집에 필요한 밑반찬 만드는 일도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는 우리 손님들이 언제든지 오셔서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 두세 번 오셔도 괜찮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생각해서 음식을 남기지만 않는다면 몇 번을 드셔도 괜찮습니다. 커피와 녹차도 드실 수 있습니다. 지금껏 국수집이 문을 여는 하루 일곱 시간 동안 다섯 번이나 밥을 드신 분도 있었습니다.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문을 열기 한 시간 전쯤에 국수집에 도착합니다. 쌀을 씻어 안쳐놓고, 국을 끓일 준비를 합니다. 그런 다음 식탁을 깨끗하게 닦고 반찬을 손님들이 기분 좋게 드실 수 있도록 차립니다. 여름철에는 반찬 냉장고에다가 차려놓습니다. 그래야 우리 손님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국이 끓으면 간을 맞춥니다. 한소끔 더 끓인 후에 불을 끄고 맛있게 끓여진 큰 솥의 국을 작은 국솥에 옮겨 담아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래야 우리 손님들이 항상 뜨겁고 맛있는 국을 드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노숙을 하신 분들은 뜨거운 국을 처음에는 먹기 불편해 하다가 나중에는 좋아하게 됩니다.

바쁘게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틈틈이 밖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 손님들이 오시지 않았는지 봐야 합니다. 손님들은 너무 겸손해서 당당하게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혹시나 문이 열려있을까 슬쩍 곁눈질하면서 왔다가도 자기를 반겨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시간이 되었을 때 찾아오면 식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손님들은 미리 오시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한 두 시간 전에 국수집 주변에서 서성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문을 여는 시간이 이삼십 분 남았는데도 오시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거의 대부분 이삼일 굶었거나 아니면 전날에 저녁도 못 드신 분들이기 때문에 되도록 먼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상을 차려드립니다. 미처 국이 준비되지 않으면 국이 없더라도 아침을 들게 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민들레국수집의 하루는 오후 다섯 시에 끝이 납니다. 그런데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서도 뛰어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해드립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그냥 떠나시게 한다면 다음날까지 굶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보통 여섯 시쯤 되어야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는 봉사자들도 자유롭게 와서 도와줍니다. 봉사하시는 분들에게 의무적으로 어느 요일에 오시라고 강제하지 않습니다. 또 몇 시간 동안 봉사해 달라고 청하지도 않습니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어떤 고마운 분이 오실까 마음이 설렙니다. 고마운 봉사자가 많이 계신 날에는 김치도 담그고,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을 특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봉사자가 없는 날에는 혼자 밥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식사하러 오셨던 우리 손님들이 거들어줍니다. 국수집이 좁아서 밖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으면 지나가던 동네 분들이 거들어주십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손님들이 직접 자신의 밥과 반찬을 접시에 담아서 자유롭게 드십니다. 국은 항상 작은 국솥에서 뜨겁게 데워져 있어서 조금 위험합니다. 그래서 손님이 원하시는 만큼 봉사자가 담아드립니다. 국을 차려드리면서 손님들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시중을 듭니다. 물도 따라 드리고, 식탁도 항상 깨끗하게 닦아드립니다. 치아가 부실해서 제대로 못 드시면 가위로 잘게 썰어드리기도 합니다.

몇 분의 손님들께는 봉사자가 식사를 차려드립니다. 다리가 불편한 분과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들, 약간 정신 장애가 있는 분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오는 용식 씨와 술에 취한 손님들은 따로 보살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일들로 민들레국수집의 하루가 바쁘게 지나갑니다. 어떤 때는 술 취한 손님의 주정을 들어주느라 진이 빠지기도 합니다. 몸은 노곤하지만 마음은 평화롭습니다. 사랑으로 하는 일은 희생도 아니고 고통도 아닙니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서영남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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