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삶과 노래]세상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홍콩에서 이틀 그리고 중국 심천에서 하루 강의를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유난히 맑은 가을이어서 하늘이 높고 푸르다. 기내 뒤쪽으로 가, 지정된 창가 쪽 좌석에 앉으려니 두 사람을 건너가야 했기에 번거롭게 여겨졌다. 더구나 언제 어디서 만나도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중국인들이다. 그때서야 비행기 표를 건네주면서 여행사에서 해 준 말이 생각났다.

“불과 4시간인데, 창가 쪽 자리가 편해. 화장실 다닐 일도 없을 것이고, 하늘 구경이나 하다가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을 걸?”

늘 내가 선호하는 자리는 통로 쪽이었다. 기내식 후 이를 닦으러 가기도 하지만, 출발 직전까지 일을 하다가 겨우 시간에 대어 비행기를 타기가 일쑤여서, 기내세면을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머리를 감은 적도 몇 번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그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은데 답은 ‘불가능은 없다’이다. 좌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를 딛고 서서 세면기에 물을 받아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해 낸다. 변기 위쪽에 보면 키친타올과 비슷한 조금 두꺼운 종이타올이 있다. 그걸로 머리를 닦아내고 짜내고를 반복하여 낭비를 최소화한다. 잘 끝내고 나면 다음 사람을 위해 머리카락을 주워내고 세면기와 바닥을 사용했던 종이타올로 깨끗하게 처리해 두는 것은 기본이고, 함께 탄 동료승객에게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하면 대부분이 잠든 시간을 선택한다. 그리고 통로 쪽 자리를 미리 선택해둔다.

그럼에도 여행사 누나는 창가 쪽 자리가 오가는 이도 없어 속편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46A를 배정 받아 주었다. 그리고 지금 46B와 46C에 앉아있는 젊은 중국인 남녀를 만났다. 두 사람의 무릎을 건너 들어가면서 후회가 시작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평생 나를 괴롭히는 구내염(입안에 염증이 생겨 구멍이 뚫리는 베체트의 대표증상) 때문에 혀 밑 안쪽이 심하게 헐어있어서, 자주 입안을 닦아 주고 알보칠이라는 약품으로 지져주지 않으면 내일 강의는 물론 저녁에 밥을 먹기도 힘들 것이다. 다섯 군데나 뚫려 있어서 통증과 발열이 어찌나 심한지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듣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못한 상태이다.

사랑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소곤거리는 한 쌍에게, 미안함을 무릎 쓰고 두 어 차례 오가는 동안 많이 불편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내가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할 때 마다 재빠른 움직임으로 가능한 한 내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 주었다. 식사를 할 때도, 하고 나서 치울 때도 늘 표 나지 않게 나의 동정을 살펴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내 곁에 앉은 아가씨가 각별하게 그랬다.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고, 의례적인 감사의 말 외에는 친교를 삼갔다. 그러면서 가끔씩 ‘이 사람들이 서양 사람이어도 그랬을까?’를 생각했다. 안 그랬을 것이다. 외국에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 자리에 서양 사람이 앉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 쪽에서 먼저 말을 건네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꼭 내 쪽에서 말을 건네었다. 나란히 앉아 가는 시간 동안은 가족이나 동료처럼 여겨져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게 되고, 개인 신상에 관한 시시콜콜한 얘기까지도 서슴없이 나누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영어나 불어로 말하고 있는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고, 또 그렇게 자주 말을 해야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고상하고 우아한 생각은 아무런 이유나 근거 없이도 내게 한없는 호감과 동경을 넘어서서 쓸데없는 호기심까지 자극하는 서양 사람에 한해서였다. 그렇기에 지금 내 곁에 앉아 말없이 친절을 베풀고 있는 중국인들과는 한 마디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아니 건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승무원이 입국신청서를 나누어 줄 때 보니, 그들은 홍콩 거주 중국인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보다는 영어를 잘 할 텐데도 굳이 내 쪽에서 나서서 말을 섞고 싶은 맘이 안 생겼던 것이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여 일감을 가지고 탔었다. 새로운 내 노래가 담긴 수작업음반의 쟈켓을 만드는 일인데, 수록곡의 내용들을 딱풀로 붙이는 일이었다. 다 보고난 신문지를 깔고 한참을 붙이고 있는데, 이제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일을 마무리 하고 나니 손에 묻은 풀찌꺼기가 신경이 쓰였다. 희귀난치병 베체트 외에도 선천성 면역결핍증이라는 흔하지 않은 병을 하나 더 달고 사는 나는,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결벽증이 심했다. 틈만 나고 기회만 닿으면, 아니 물만 보면 손을 씻는 버릇이 있다.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손을 씻고 싶은데 비행기가 착륙하니 움직일 수도 없다. 옆 자리 아가씨는 얼마든지 비켜줄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차렸는지 자신의 손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밝게 웃으며 내게 건네어 준 물건은 물티슈였다. 여성들이 늘 지니고 다니는 휴대용 물티슈를 한 장 뽑아 말없이 내게 건네었다.

그것을 받아 든 순간 고맙다는 생각보다 먼저 와 닿는 느낌은 그녀가 어쩔 수 없는 우리 동양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에게 비슷한 삶의 감각이 있다는 것을 이성으로가 아니라 본능으로 감지하고 있었기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타고난 결벽증 때문에 손에 뭔가가 묻어있을 수 있다는 별것 아닌 일로 신경이 쓰여, 양손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내 속마음까지를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훨씬 친절한 서양 사람이라도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중국인이기에 앞서 나와 매우 비슷한 동양 사람이었다. 비록 내게 호감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 줄 수는 없었을지라도, 비슷한 삶의 문화를 지닌 동양 사람이라는 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 낯선 땅을 향해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쓸쓸한 내 가슴에 따뜻하게 스며왔다.
2008.10.22.


사진 고태환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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