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섭, 이정진 선생 쾌유를 위한 카페 http://cafe.daum.net/echocouple

허병섭 목사님이 이제야 우리 곁을 떠났다. 입을 벌린 불편한 모습으로 병상에서 3년 여 동안 긴 시간을 보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던 목사님은 실제 삶에 있어서도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삶을 살았다. 집에 전혀 돈을 가지고 갈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헌신으로 빈민교회인 동월교회를 섬겼다. 가족들이 영양실조를 앓을 정도로 극빈의 삶을 살아 종교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오늘날 전반적 타락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교회의 풍토에서 이런 삶을 사는 목회자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치부되어 멸시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목사님의 생은 정신이 번쩍 드는 일상을 사신 것이다.

어느 날 결연히 목사직을 반납하고 노가다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목수 일을 했다. 그러시다 말년에는 생태운동을 교육으로 펼쳐나가시다 생을 마감한 것이다. 목사님의 거침없는 행보는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후배들에게 언제나 모델이 되었다.

1980년대 초반. 성공회 전국청년연합에서 자주 강사로 모신 적은 있지만, 나 개인적으로 목사님과 무슨 일을 같이 도모해 보기로는 생명평화결사에서 활동한 게 유일하다. 생명평화결사 전북모임에서 어른으로 모시며 운동의 방향이나 진로를 지도받았었다. 놀라운 것은 70에 가까운 연세임에도 어느 누구보다도 젊은 기운으로 가장 앞서가는 진보적인 비전을 제시해서 감탄을 자아냈다.

그분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로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가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 가슴 깊이 다가온다. 한 없이 부드러운 말씨로 의견을 피력하시지만 내용을 들어보면 서릿발이 돋는 엄정한 것이어서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7년 전 급여도 없이 사목하던 성당에서 쫓겨나 비탄에 잠겨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누구에게 들으셨는지 나를 불러 한 마디 해 주셨다. “교회에 다닌다고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어느 순간 그걸 깨닫고, 그 즉시 나는 목사직을 반납하고 교회를 떠났네.”

나에게는 몹시 충격적인 말씀이셨다. 그런데 나는 그 말씀이 사목에 무능해서 실의에 빠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데 큰 힘이 되었었다. 사실 일반 사람들이 오히려 교회를 다녀서 자기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거나 왜곡된 인격이 되어버리는 걸 많이 목격하게 되면서 목사님의 말이 실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목사님의 말을 이렇게 정리했다. ‘교회를 다녀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파도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에 교회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를 상상할 수가 있을까?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함석헌 선생님이나 장일순 선생님 등 큰 스승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뒤로도 큰 선생님들을 다 교회의 연고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묘하게 그 말이 큰 용기를 주었다. 그 이후 나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다른 종단과 함께 활동하는데 별 저항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목사님의 행보가 우리 같은 무지랭이들에게 하나의 모델이고 전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사직을 반납하셨지만 허병섭 목사님은 예수 이름을 들먹여 생계를 잇는 목회자의 입장으로 본다면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수상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교회를 떠난 목사님의 삶이 진정한 예수님의 모습인 것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신앙유무를 떠나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생명평화결사에서는 목사님을 ‘평생교사’로 모셔서 언제든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족쇄를 채워두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목사님은 이렇게 떠나버리셨다. 하지만 어딜 가겠는가? 우리 마음속에 이렇게 잔잔히 조용한 목소리로 살아계신 걸!

그토록 사랑했던 사모님을 놔두고 멀리 가셨을 리는 없고, 아마 병상 옆에서 여전히 수발을 들고 계시리라 믿는다. 우리도 ‘영원한 소녀’로 남은 사모님을 뵈면 바로 그 옆에 미소 짓는 목사님을 만나게 되리라고 믿고 있다.

김경일 신부 (어거스틴, 대한성공회 광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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