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민중의 벗, 고 허병섭 목사 영결식 열려

오영식 목사의 사회로 '민중의 벗, 고 허병섭 목사 영결식'이 29일 오전 9시에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영결사에서 조화순 목사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산으로 올라가실 때, 예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이 있었는데, 예수는 이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죽으면 그뿐'인 인생을 살면서 유별나게 자식들을 사랑하면서도 후손들과 세상을 위해 광장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허 목사는 그들에게 할 말이 많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오랜 동지, 조화순 목사와 김혜경 선생.

"허 목사와는 마음이 잘 통했다. 둘 다 순진해서"라고 말하는 조화순 목사는 "나라가 망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라며, 의인 몇 사람이 없어서 나라가 망해가는데, "그분의 그분은 또 다른 우리들을 불러 세우는 새로운 순교"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은 매매되지 않는 사람, 마음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나침반의 지침처럼 양심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미란 목사의 기도에 이어 추모사를 한 이철용 전 국회의원(<꼬방동네 사람들>의 저자)은 자신이 "뒷골목에서 어둠을 친구로 삼아 살고 있던 내가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허병섭 목사가 찾아와 던져주고 간 책이 <성경>이었으며, "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고, 예수라는 사나이에게 매료되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허 목사가 병고로 급작스레 쓰러지기 한 주일 전에 자신을 찾아와 "절망하는 영혼들이 희망을 끈을 다시 잡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나는 이제 가난한 갈릴리 해변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허 목사님이 늘 계실테니까"라며 울음을 삼켰다. 

이무성 온배움터(녹색대학 후신) 대표에 이어 추모사를 한 김혜경 고문(진보신당)은 하 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늘 자신을 만나면 "김선생, 밥 좀 있습니까?" 하더라면서, "누구보다 겸손하게 남을 섬길 줄 알았던 허병섭 목사는 항시 민중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영결실은 김창규 시인의 추모시와 사공합창단, 관악을 여는 사람들, 동월교회 교유들의 추모곡이 있고나서, 벽제화장터로 떠났다. 허 목사는 마석 모란공원묘지 납골묘에 안치될 예정이다. 

겨울날

산꼭대기 십자가도 추워서 벌벌 떨던
비탈길에 연탄재 굴릴 때 퍽 깨지며
푹석 먼지 나던 저녁이었습니다

달이 따듯하게 막 떠오르는 그런 시각에
목사님의 동월교회 처마 끝에 참새들이
재잘거리는 그런 수많은 날들이 찾아왔고
수정고드름 뚝 꺽어지던 밤이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고문을 받다가 꼬구라지던
기절하여 넘어지던 밤이었을 겁니다

목사님이 후배들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잡고 건네주던 포도주의 따뜻한 잔이 그립습니다
벗들이 잡혀가고 수배당하고 할 때
동월교회의 십자가는 피를 흘리며
피를 흘리며 가난하여 다하지 못한 사랑을
눈물의 그릇에 담아 주시곤 하였지요
성찬의 그릇에 아직 식지 않은 빵과
오래되지 않은 포도주를 나눠 마시며
목사님은 노동자의 하느님을 말씀하셨지요

벽돌을 쌓고 벽을 바르는 미장공이 되어서
노동자들과 나눠 피던 맛있는 담배와
목구멍을 시원하게 뚫어주던 돼지 껍데기 안주를
노동자 벗들에게 대접하시곤 하셨지요

그런 목사님이 물 좋고 산 좋은 무주로 가셨다기에
구천동 골짜기 붉은 단풍지던 날 찾아갔더니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의 정신은 수유리 산언덕 아래
어느 가난한 단칸방아래 민주주의를 위해
눈을 반짝이던 그날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 어쩌다 말없이 한 많은 인생을
긴긴 세월 말없이 살다가 이렇게 훌쩍
그냥 말없이 떠나시다니요
목사님이 걸어가신 길은 여전히 민중들이 신음하고
도탄에 빠진 그런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목사님, 아니 선배님이 먼저 가셨습니다
지나간 날들이 이제 한줌의 흙으로
무주구천동 덕유산 그 능선에서
통일을 위해 죽어갔던 분들과 함께
영원히 편안하게 안식을 누리소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