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매년 4월 19일, 나는 대학시절의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영주를 향한다.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산속 외딴 곳, 한 정신요양원에 동아리의 ‘전설’인 김 선배가 잠들어있다. 그는 이 요양원의 정신분열증환자로 48년을 살다가 입원실 앞 소나무 밑에 한 줌의 재로 묻혔다.

대학 신입생 시절 운동권 동아리에서 나는 ‘전설’을 들었다. 김 선배였다. 그가 쓴 글과 선배들의 이야기 속에서 4.19혁명과 그 역사를 온 몸으로 싸워낸 동아리의 창설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김 선배의 삶을 들었다. 동아리의 전통상 새내기 회원이 되면 먼저 ‘전설’을 찾아가 인사를 해야 했다.

나도 그날 처음 ‘전설’을 정신요양원에서 만났다. 폐쇄병동의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고 창백하게 야윈 얼굴의 환자복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짧게 깎은 흰머리와 치아가 몽땅 빠진 합죽한 입, 치매로 인한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과거 혁명과 운동권이라는 아우라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치매노인이었다.

김 선배는 사회학 박사과정 때 4.19혁명의 주동자로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그가 쓴 글과 활동내용이 문제가 되어 지명수배자로 숨어다니다가 체포되어 고문과 투옥을 거쳐 출소했다. 고문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자 그는 아내와 딸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이혼을 했다. 그 후 혼자 살면서 산동네 철거지역에서 야학을 열고 빈민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댈 데 없는 그의 삶은 부랑인처럼 되어버렸고, 빈곤과 질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철거지역의 주민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시위, 데모, 고문을 겪은 유일한 사람이 선배였고 그 영향으로 정신분열증세가 심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전설’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이혼한 그의 아내 덕분이었다. 이혼 후 20여년 만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아내와 딸이 그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영주의 한 요양원에 있는 그를 찾아냈다.

이미 김 선배는 몸과 마음이 망가진 치매노인에 불과하지만 그는 다시 우리 동아리의 ‘전설’로 돌아왔다. 내가 김 선배를 ‘전설’로 인정하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의 비겁과 갈등을 통해서였다.

그날도 교정은 최루탄과 함성, 쫓고 쫓기는 전쟁 중이었다. 나는 망설였다. 도서관과 최루탄과 함성사이에서. 논문과 실험이 당장 내 목을 조이고 있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동아리 선배들이 최루탄과 돌멩이와 맨몸으로 싸우고 있었다.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문을 열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밖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도 상관도 없는 열공의 세계였다. 지금 교정에서 벌어지는 저 위험을 피해 나도 이들처럼 안전지대에 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교정의 함성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고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은 도서관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환자복을 입은 정신요양원에서 만난 치매 노인이었다.

입신양명과 부귀영화가 삶의 목표인 요즘 말과 글이 아닌 자신의 전 삶을 바쳐 자신의 시대를 걸어나온 치매노인은 ‘전설’로 부활하여 우리 동아리 회원들에게 존경과 그리움으로 살아있다. 4월이면 우리는 김 선배가 묻힌 그곳에서 그가 후배들에게 보낸 편지를 다시 읽는 이유다.

“이 어려운 시대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나는 쏘듯이 쏜다. 초중고 차례로 졸업하면 싫든 좋든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그것도 좀 쓸 만한 놈은 좋은 성적으로 쑥 나와야 학계, 관계, 재계, 언론계, 법조계 같은 거대망상조직과 합류할 수 있다. 일단 합류하면 조직의 컨베이어 시스템에 올라간다. 취미가 별것이냐 적성은 쥐뿔이다. 부르조아지에만 들어가면 중산층은 오토매틱이다. 무수한 청년들은 그래서 거대한 조직에 운명을 걸었다.

젊은이들에게 권한다. 조직에의 길은 독창적이지 못한 인간들에게 양보하라. 이제 거대조직은 창의적인 그대들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넓은 세상을 기다리면서 진정으로 그대들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라. 좋아하면 자주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전문가가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삶의 골수다. 그것을 취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심명희/ 마리아. 약사. 2000년 4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요셉의원에서 상근 봉사자로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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