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삶과 노래]소통과 쇄신

 

 

우연이든 필연이든 절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가능하면 빼지 않고 예불에 함께 하며 내 방식대로의 기도로 삼았다. 이번 여름 제주 약천사에서도 며칠을 그리 했는데, 아침 예불에 오신 보살 두 분과 인연이 닿아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갔다. 냉면전문점은 아니어서 맛은 별로였지만 낯선 곳에서 받는 배려는 늘 따뜻하게 스며왔다. 밥값을 해야겠다며 노래 한 곡 들려드리겠다고 자청했다. 마침 태풍이 지나간 뒤라서 멀리 보이는 한라산 자락을 옅은 안개가 감싸고 있었는데, 「먼 산」이라는 노래를 부르기에는 분위기가 그만이었다.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
꽃피고 잎 피는 그런 산 이아니라
산국 피고 단풍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이요.

꽃이 피는지 단풍 지는지
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이요.

(김용택 시/범능 곡 「먼 산」전문)

 


몇 해 전. 전남 보성 대원사 개산 1,50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되어 축가를 부른 적이 있다. 주지스님께서 열린 마음을 지향하셔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내 노래 중에 비교적 밝은 분위기가 담긴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이어서 절집 노래인「먼 산」을 불렀다. 「평화의 노래」는 루까복음과 시편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교회적인 용어가 거의 없고 평화를 염원하는 노랫말이 보편적이어서 절집 행사에서도 잘 어우러졌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의 평화를 위해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여라.
거기 평화 바라는 사람 살고 있으면 평화 머물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게 되돌아올 것이다.
내 집안에 평화. 내 나라에 평화. 온 누리를 향해 평화의 노래 불러라.
내 겨레와 벗들 나 사랑하기에 평화의 노래가 넘치게 하리라.
(루까10.5~7/시편122로 김정식이 만든 「평화의 노래」전문)

예향(藝鄕)이라고 불리는 광주 지방의 노래하는 후배 정세현이 출가하여 범능 스님이 된지 오래다. 스님이 절집노래 음반을 내면서 출반기념음악회를 했는데, 거기에 노래손님으로 초대되어 내 노래 한 곡과 스님이 만든 절집노래 한 곡을 불렀다. 가톨릭교회에서 생활성가 가수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십자가를 매고 부르는 절집노래가 독특한 운치로 다가갔는지, 음악회 후에 절집 식구들이 내게 와서 말을 건네었다.

“노래 너무 좋았어요. 목소리가 맑아서 향기가 깊었구요.”

“제가 노래를 훨씬 더 잘 부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스님이 돋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못 부르느라고 힘들었어요.”

“아이구. 그러셨어요? 마음 씀씀이도 곱네요. 그런데 가톨릭신자인데 절집 노래를 그리 잘 부르시니 아예 불교로 개종을 하시지 그러세요?”

“제가 교회 안팎에서 초청되어 노래공연과 강의를 일 년이면 이 백 차례 가량을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초청행사에서도 불교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이고 절집노래도 자주 부르는 편이예요. 가톨릭교회는 생각보다 훨씬 열려 있어서 이런 일에 너그러운 편이구요. 가톨릭신자들이 절집노래를 들으면 참으로 좋아하지요. 제가 불교로 개종을 하면 불교신자가 한 명 늘어나겠지요. 그렇지만 누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불교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해주며, 성당에서 절집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아~네. 듣고 보니 그렇군요. 노래만큼이나 마음이 깊어 더 호감이 가네요. 계속 가톨릭에 남아 계시면서 성불하세요. 저희가 기도합니다.”

해맑은 보살님들의 미소가 아직도 내 가슴에 연꽃송이로 남아있다.

제주를 떠나 서울 집으로 온 다음 날, 보살님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선물로 드린 음반을 듣고 마음이 맑고 평화로워져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음반 뒤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한 것이다. 그 동안 오래 쉬었던 음반작업을 10년 만에 다시 하게 되었는데, 편곡을 맡은 친구에게 전해주기 위해 새 음반에 실릴 노래들을 내 방에서 가녹음을 했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시간에 쫒겨 아침시간에 녹음을 하느라고 잠이 덜 깬 목소리였지만, 오히려 욕심 없는 목소리가 편안하여 들을만하다는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어 음반 몇 장을 더 복사를 했고, 그 음반 안에 「먼 산」이 있었다. 어쨌거나 정식음반도 아닌 곳에 실린 내 노래를 듣고 평화를 누리고 있다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약천사를 떠날 때 내 고향의 이웃마을 누나인 비구니 스님께서 제주도 특산인 하귤 두 개를 가방에 넣어주셨다. 초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하귤(夏橘)은 인도 원산으로 일본에서 그 종자가 들어와 흔히 ‘나스미깡’으로 불리는 자몽에 가까운 과일인데, 자몽에 비해 신맛은 더 강한 반면 단맛과 쓴맛은 훨씬 덜하여 상큼하기가 이를 데 없다. 또한 자몽은 세 가지 맛이 버무러져 있다면, 하귤은 세 가지 맛이 각각 살아나면서 가장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일 맛이 바로 이 제주 특산 하귤이다. 약천사 경내에서는 올해 하귤 농사가 풍작이어서 고마운 분들께 여기저기 선물로 보내었는데 누나 스님께서 손바닥 만한 냉장고에 갈무리해 둔 것을 내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과일 두 개를 빼내고 나니 냉장고 안이 이렇게 넓어지는 것을, 왜 빼내고 나서야 알게 될까?”

집에 와서 하귤 두 개를 한숨에 먹고 나니 평소에 거의 먹을 수 없는 과일이기에 갈증이 더했다. 너무 많이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배가 고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침 전화를 걸어온 보살님께 그 심정을 토로했다.

“보살님.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하귤이예요. 그런데 스님께서 제게 주신 것 두 개를 다 먹고 나니 더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잘 가라앉지 않네요. 철이 늦어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일인지 알아보아 주시겠어요?”

“그러셨어요? 진작 말씀을 하시지요. 사찰에서 하귤을 수확하여 여기저기 얼마나 많이 보냈는데요. 이제 다 보내고 없을텐데요.”

“제가 절에 있을 때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있는 것을 봤는데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법당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알려 드릴께요.”

잠시 후 보살님은 따 놓은 것은 없지만 아직 나무에 달린 것은 있으며, 따서 보내도 좋다고 법당의 허락을 받았다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예불 후에, 두 보살님께서 땡볕을 받으며 나무에서 바로 따낸 하귤을 당일특급 항공택배로 보내주셨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신선한 맛은 나무에서 바로 따낸 과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설악산 오색계곡 시냇물에 담가놓았던 수박 맛이나, 우리나라 국토 최남단의 섬 마라도에서 시켜먹었던 짜장면 맛도 참 좋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먹는 하귤 맛은 그런 맛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나는 요즘 행복하다. 평화를 주는 노래 한 곡이 보살님들의 마음을 움직여, 땡볕 아래서 한 나절 귤을 따면서도 행복을 누리도록 해 주었다. 그것도 가톨릭신자가 부르는 절집노래 한 곡이 그랬다. 내가 누리는 최상의 과일 맛은 보살님들이 누린 행복함의 작은 한 부분일 것이다. 하귤 맛보다 더 깊은 것은 사랑이라는 향기다. 사랑이란 서로 무엇을 주고받는 것이다.

사진 - 고태환

/김정식 200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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