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시사비평-오창익] 경범죄처벌법, 구걸행위도 얼마든지 처벌하게 돼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재석의원 167인 중 찬성 166인이었다. 여야를 떠난 압도적 찬성이다.

<경범죄처벌법>의 모태는 1912년 공포된 총독부령 제40호 <경찰범처벌규칙>이다. 헌병경찰을 앞세운 무단통치를 위한 법률적 기제였다. 현장에서 즉결심판을 통해 태형(笞刑)도 칠 수 있었다. 해방되었다지만, <규칙>은 1954년의 <경범죄처벌법>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정적으로 개악되었다.

<경범죄처벌법>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국가가 형사처벌의 촉수를 들이대는 전형적인 악법이다. 경찰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누구든 처벌할 수 있도록 모호한 조항 투성이며, 경찰의 즉결심판에 의해 처벌되기에 아무런 견제나 안전장치도 없는 대표적 형사과잉법률이다.

<경범죄처벌법>은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범죄라고 하기도 힘든 일상적 행위들에 대한 국가의 처벌 기제였다. 박정희 시대에는 장발과 미니스커트의 처벌 근거였고, 전두환 시대에는 시위를 하거나 유인물을 뿌리는 사람들을 겨냥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 법의 독성은 빠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구걸행위도 얼마든지 처벌하게 했다. 그냥 앉아서 조용히 구걸하는 사람도 그 사람이 인도에 있는 한,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구걸하는 사람을 국가가 보호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단지 귀찮게 하는 단속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끔찍하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겨냥한 조문은 셀 수 없이 많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라고 권하거나, 떠들썩하게 손님을 불러 모아도 처벌을 받는다. ‘못된 장난’도 처벌받는다. 뭐가 못된 장난인지는 전적으로 경찰관만이 판단할 수 있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불러 이웃을 시끄럽게 한 사람”도 처벌 대상이다. 어떤 소리가 ‘큰 소리’이고, ‘시끄러운 소리’인지 역시 경찰관만이 판단한다. 문신을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도 처벌받는다.

이런 유치한 조문들은 시민을 교양 없는 또는 미개한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제국주의 식민지 종주국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공화국의 시민을 이렇게 대할 수는 없다. 고약한 법률이다. 당연히 폐지되어야 할 법률이다. 그런데 오히려 개악되었다.

구걸행위 금지와 함께 <경범죄처벌법> 개악의 핵심은 “술에 취한 채로 관공서에서 몹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은 6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는 조문이다. <형사소송법>의 구속이나 현행범 체포 요건은 벌과금 50만원 이상인데, 여기서 딱 10만원이 많으니, 앞으로는 파출소, 지구대, 동사무소 등에서 ‘시끄럽게 한 사람’도 체포 대상이 되었다. 기물파손, 폭행, 모욕, 명예훼손 등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오로지 시끄럽게만 해도 그렇다. 어떤 것이 시끄러운 것인가에 대한 판단도 전적으로 경찰관의 몫이다.

힘없는 서민들에게 경찰은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국회는 거의 만장일치로 경찰공화국의 앞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이렇게 폐해가 빤히 보이는 악법이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까지 합세한 가운데 통과되었다. 아, 이러고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세상이 바뀌는가, 지금도 꿈쩍않는 사람들이 다수당이 된다고 세상을 바꾸겠는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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