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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 권력화된 종교에 대한 경고사랑의 교회 신축과정에 드러난 정교유착을 넘어서 사회참여를
  • 경동현 기자 ( kdh1225@gmail.com )
  • 승인 2012.03.08 08:45 | 최종수정 2012.03.0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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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6일 종교자유정책연구원에서 주관한 "정치와 종교 뗄 수 없는가"라는 심포지엄에서 토론을 맡았다. 정교분리와 관련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벌여야 하는 한국사회의 종교현실이 참담하기 그지없다. 내가 맡았던 주제는 '사랑의 교회' 신축공사와 관련된 행정 처분들이 정교분리원칙에 어떻게 위배되는지를 다룬 허진민 변호사의 발제에 대한 토론이다. 사랑의 교회 문제가 무엇보다 특정 종교 편향의 행보를 보인 현 정권하에서 불거진 의혹이라는 점, 그리고 다종교 사회라는 우리네 종교 현실을 고려할 때 이 문제는 종교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날 심포지엄과 토론에서는 주로 '개신교의 정교유착' 문제와 '정교분리'의 문제를 다루었기에 일단 '정교분리'가 무엇인지 선명히 살피는 게 중요하겠다.

해법이면서도 해법이 되지 못하는 정교분리원칙

   
▲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정교분리의 역사적 출발은 교권세력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반동적 교권세력을 정치권력에서 몰아내기 위해 혁명적 시민세력이 교회에 요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교분리 담론은 본질상 그리스도교의 교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원칙이라기보다는 교회가 세상의 진보에 오히려 방해물이 됐던 일정 시기에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 사이에 타협의 산물로 형성된 것이다. 정교분리론, 그 자체가 바로 정치적 담론인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랑의 교회 신축과정의 문제점을 정교분리의 원칙에 근거하여 지적하는 것은 사랑의 교회 신축 공사가 정치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특혜가 주어졌다는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2100억 원 상당의 호화건축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파격적인 고도제한 완화, 공공도로점용허가, 서초역 출입구 변경 등 신축허가 과정에서부터 숱한 의혹이 그동안 제기되어왔다.

한 주간지에 따르면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김덕룡 전 의원,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 등 유력 정치인이 신도로 있고, 판검사와 변호사 260여 명으로 구성된 법조신도회 등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포진해 있어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김 포그니, “사랑의교회 정관계 ‘검은 커넥션’ 나도는 내막‘, <일요신문> 2012년 2월 15일자 기사)

그러나 정교분리 원칙을 잣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이는 자칫 종교를 세상과 분리하여, 불의한 세상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외면하도록 종교에게 요구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군부 정권이 종교계의 반독재운동에 대한 비난의 근거로 내세운 논리가 바로 정교분리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군부정권의 논리는 ‘학생은 공부를, 노동자는 근로를, 종교인은 기도를, 정치는 정치인이’라는 형태로 제시됐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정교분리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종교가 정치독점 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기능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정교결합을 요구한 것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혁명적 시민 세력이 교회에 정교분리를 요청한 이래로 정교분리 요구의 주체는 정치가 됐건, 종교가 됐건 자신의 불리한 상황,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장된 경우가 대부분인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실제로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최근 4대강 문제와 제주 해군기지 건립, FTA 문제 등에 대해 교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우려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반대 목소리를 내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세속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교회를 못마땅해 하며, 대놓고 반감을 표시한다. 이런 신자들의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낀 한국 가톨릭교회는 지난해에 주교회의 차원에서 '사회교리 주간'을 선포하며, 교회가 전통 안에서 세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음을 주지시키고 강조하고 있다. 복음과 삶의 일치를 강조하는 신앙의 관점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이 해법이면서도 해법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 2011년 9월 2일 제주 강정 구럼비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평화기도소에 있던 사제들을 끌어냈다.이처럼 가톨릭교회는 용산참사와 4대강 사업, 제주 강정 해군기지 문제 등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과 '평화'를 지향하는 사회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사제들의 사회참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무슨 말을 어떤 방식으로 전할까?

변호사인 발제자는 사랑의 교회 신축공사와 관련된 행정 처분들이 정교분리원칙에 어떻게 위배되는지 법 전문가의 관점에서 시시비비를 주로 논했다. 발제 내용에 충분히 공감을 하면서도 법적인 시시비비의 결론이 논란의 당사자인 ‘사랑의 교회’ 신도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하고 의문이 일었다. 법적인 시시비비의 결론은 대화의 단절로 이어지기 십상인 탓에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종교간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독보다 더 무섭다는 예수독이 오른 사람들하고 무슨 대화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과 공감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말을 전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라 생각한다.

‘세계정의’를 주제로 다룬 세계주교시노드(주교대의원회의) 제2차 총회 문헌 38항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교회가 정의를 증거해야 한다면, 교회는 먼저 사람들 앞에서 감히 정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 눈에 정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교회 안에서의 행동 규범, 교회 재산, 그 생활양식 등을 검토해 보아야 하겠다."

종교를 떠나 일반 상식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동의할 수 있는 관점이라고 본다. 정의라는 표현 대신 ‘예수의 가르침’ 혹은 ‘부처의 가르침’으로 바꿔 읽어도 좋겠고, 개신교 교회나 불교 사찰의 상황과 관련지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이런 관점에 동의한다면 각각의 종교 안의 상황을 성찰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이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장만능주의의 영향으로 갈수록 개인의 고립화, 원자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신앙에서도 사회적 차원의 기능, 역할보다는 개인에게 위로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신앙이 인기를 끄는 탓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 가톨릭교회의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복음은 현실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현실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내적 평화'를 주어 현실을 버텨내는 역할로 기대된다.

이러한 신자들의 기대에 반해 교회가 현실에 직접 개입한다면 '교회'라는 휴양지는 곧 전투장으로 바뀌게 된다. 많은 신자들은 정교분리라는 고차원 논리 이전에 바로 이런 고통을 피하기 위해 교회의 사회적 발언에 직감적으로 불안해하고 불만을 느낀다. 이런 현상이 종교 전반으로 확산될 때 종교는 개인과 사회를 정화하는 치료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를 견디게 해주는 해독제, 피로회복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 문제가 불거진 배경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음을 같은 종교인의 입장에서 자기 고백할 때 대화의 가능성은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단 가능성이 열리게 되면 특혜 시비 논란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 사랑의 교회 모습이 종교(예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교분리가 요청된 본래의 의미가 권력화한 종교의 모습에 대한 경고였음을 기억하면서 서로의 종교를 돌아보는 자기고백을 동반한다면 공감과 대화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리라. 사랑의 교회 출석 신도 5만 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때 평신도를 세우고 세상을 섬기는 교회의 모범이라 불리던 사랑의 교회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신자라면 이 물음에 귀 기울일거라 생각되고, 그런 분들의 작은 변화가 이 운동의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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