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톨릭인터넷언론<지금여기>의 편집회의가 있는 날이다. 모처럼 명동으로 자리를 옮겨서 한다니 산뜻한 봄밤 거리의 꽃향기가 가슴으로 스며온다. 모임장소가 명동성당 뒤편 삼일로를 따라 늘어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있기에 그 앞에 주차를 하기위해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삼일로를 따라 남산 쪽으로 가던 택시가 정차를 하더니, 운전자가 밖으로 나오면서 바지춤을 벌린 채 나를 향하고 선다. 주춤하고 잠깐 앉아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소변을 보는 것이 아닌가. 나마저 아무 일 없다는 듯 나가기가 민망해서 잠깐 기다리며 위쪽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내려오고 있다. 남자들끼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여자 두 사람이 정답게 얘기하며 내려오는 순간 아찔했다.
서로가 당황할 줄 알았던 내 짐작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바로 코앞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못 본 척 지나가는 여자들은 점잖다고 해 두자. 그런데 여자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볼 일을 다 마친 이 남자는, 하던 일을 조금도 서두르거나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그 때 까지 한 손에 들고 있던 화장지로 마치 마시던 찻잔을 닦듯이 꼼꼼히 잘 닦은 다음, 화장지는 길가에 버리고 여유 있게 바지춤을 여미고 차로 돌아갔다. 택시 운전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급한 상황을 만날 수 있고, 그래서 일상처럼 만나는 그런 일에 무심해질 수도 있다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풍경이다.
모임장소에 들어서자마자 그 얘기를 했더니 모두 실실 웃어대는데, 전혀 예상치 않은 질문 하나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남자들의 소변문화로 이어졌다.
“아니, 남자들도 소변을 본 후에 화장지를 사용하나요?”
“그럼요. 소변 후에는 잔변이 남아있을 것이고 속옷이 그것을 처리해 주겠지만 깔끔한 남자들은 화장지를 사용하여 처리를 하지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볼 일이 없었지만 좀 의아스럽네요.”
“물론 다 그러는 것은 아니구요. 깔끔한 남자들의 경우예요. 화장지가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가까이에 화장지가 있으면 사용하는 남자들도 요즘엔 의외로 많아요.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대변마저도 화장지 보다는 신문지를 사용했었기에 그런 일은 상상도 못했었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친구가 늘 소변보러 갈 때 화장지를 가지고 가는 걸 알게 되었고, 화장지가 없으면 손으로라도 처리하고 나서 손을 깨끗이 씻더라니까요.”
“와. 오늘 새로운 남성문화를 알게 되었네요,”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고, 내가 경험했던 몇 가지 얘기들은 우리의 재미를 더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공장소나 고속도로 휴게소 혹은 음식점 같은 곳에 있는 남자 화장실에는 어김없이 입변기가 있다. 말 그대로 서서 소변을 보는 곳이다. 앉지 않아도 일을 볼 수 있는 이 편리한 변기는 도중에 튀는 소변 때문에 늘 말썽이다. 그래서 주변의 청결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고심 담긴 제안을 내어 놓는다. 「편리하게 주신 물건(?) 잘 사용 합시다」,「한 발짝만 더 가까이」,「깨끗이 사용 합시다」,「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튀지 않게 합시다」,「청결」등 많은 문구가 입변기 위에 붙어있지만, 그걸 보고 실천하는 남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소변이 떨어지는 지점이다. 어느 지점으로 떨어지든지 조금이라도 튀기는 마찬가지지만, 변기 맨 아랫부분으로 떨어지면 가장 많이 튀게 된다. 유체가 고체 면에 떨어질 때 어떤 각도가 마찰계수를 가장 낮게 해 주는지를 생각해보면 변기 쪽으로 가깝게 다가설수록 튀는 양이 적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변기를 끌어안고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이런 함수관계를 잘 고려해 본다면 변기 윗부분부터 3분의 2지점으로 떨어질 때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답이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화장실 바닥에야 튀든지 말든지 자신에게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능하면 멀리 서려하고, 관리책임자들은 가능하면 한 치라도 앞 쪽으로 서도록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참신하고 기지(機智)있다고 여겨지는 고속도로 휴게소 두 군데를 소개해 본다. 한 곳은 줄줄이 서 있는 입변기 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1.일보 전진 2.정조준 3.발사」라는 말은 군대에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사격훈련 수칙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남자들이 슬며시 미소를 머금은 채 지시대로 따라해 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아마도 먼 옛날 힘들었던 군 생활의 추억을 잠시나마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추억이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아름답게 반추된다. 비록 아픈 추억일지라도.
또 하나는 너무나 재치 있다고 여겨져서 이 부분에 심사가 있다면 단연 대상감이라고 여겨진다. 아까 언급한 3분의 2지점. 그러니까 마찰계수가 줄어들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지점에다 예쁜 무당벌레 스티커를 하나 씩 붙여 놓은 것이다. 남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무당벌레를 맞추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걸 왜 맞추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거기에 예쁜 무당벌레가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조준하느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변을 보고 있는 중에도 한 발짝 한 발짝씩 더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런 지혜가 삶의 모든 곳으로 스며들어, 억압을 하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고서도 서로를 위해 한 발짝씩 다가설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 감동을 주어 각자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인다면, 그래서 더 이상 물리력이나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다면, 아무도 누군가를 통제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 따뜻하게 이어지는 편집회의 분위기에서 이미 그런 희망을 확인하면서, 세상을 향하여 오늘도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싶다. 기쁜 마음으로.
너희 살을 떡처럼 떼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너희 피를 포도주처럼 따르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조그만 틈을 내어 주는 것
조금씩 움직여 작은 곁은 내어주는 것
기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박해석 시/김정식 곡 「기쁜 마음으로」 전문)
*모든사진은 인터넷 검색에서 퍼옴
/ 김정식 2008-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