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톨릭인터넷언론<지금여기>의 편집회의가 있는 날이다. 모처럼 명동으로 자리를 옮겨서 한다니 산뜻한 봄밤 거리의 꽃향기가 가슴으로 스며온다. 모임장소가 명동성당 뒤편 삼일로를 따라 늘어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있기에 그 앞에 주차를 하기위해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삼일로를 따라 남산 쪽으로 가던 택시가 정차를 하더니, 운전자가 밖으로 나오면서 바지춤을 벌린 채 나를 향하고 선다. 주춤하고 잠깐 앉아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소변을 보는 것이 아닌가. 나마저 아무 일 없다는 듯 나가기가 민망해서 잠깐 기다리며 위쪽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내려오고 있다. 남자들끼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여자 두 사람이 정답게 얘기하며 내려오는 순간 아찔했다.

서로가 당황할 줄 알았던 내 짐작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바로 코앞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못 본 척 지나가는 여자들은 점잖다고 해 두자. 그런데 여자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볼 일을 다 마친 이 남자는, 하던 일을 조금도 서두르거나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그 때 까지 한 손에 들고 있던 화장지로 마치 마시던 찻잔을 닦듯이 꼼꼼히 잘 닦은 다음, 화장지는 길가에 버리고 여유 있게 바지춤을 여미고 차로 돌아갔다. 택시 운전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급한 상황을 만날 수 있고, 그래서 일상처럼 만나는 그런 일에 무심해질 수도 있다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풍경이다.

뉴질랜드 퀸즈타운에 위치한 호텔 소피텔의 남성용 화장실. 호텔 2충에 위치한 남성용 화장실 소변기 위에는 실물 크기의 여성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사진 속의 여성들은 볼일을 봐야하는 남성을 주시하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모임장소에 들어서자마자 그 얘기를 했더니 모두 실실 웃어대는데, 전혀 예상치 않은 질문 하나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남자들의 소변문화로 이어졌다.

“아니, 남자들도 소변을 본 후에 화장지를 사용하나요?”
“그럼요. 소변 후에는 잔변이 남아있을 것이고 속옷이 그것을 처리해 주겠지만 깔끔한 남자들은 화장지를 사용하여 처리를 하지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볼 일이 없었지만 좀 의아스럽네요.”
“물론 다 그러는 것은 아니구요. 깔끔한 남자들의 경우예요. 화장지가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가까이에 화장지가 있으면 사용하는 남자들도 요즘엔 의외로 많아요.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대변마저도 화장지 보다는 신문지를 사용했었기에 그런 일은 상상도 못했었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친구가 늘 소변보러 갈 때 화장지를 가지고 가는 걸 알게 되었고, 화장지가 없으면 손으로라도 처리하고 나서 손을 깨끗이 씻더라니까요.”
“와. 오늘 새로운 남성문화를 알게 되었네요,”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고, 내가 경험했던 몇 가지 얘기들은 우리의 재미를 더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공장소나 고속도로 휴게소 혹은 음식점 같은 곳에 있는 남자 화장실에는 어김없이 입변기가 있다. 말 그대로 서서 소변을 보는 곳이다. 앉지 않아도 일을 볼 수 있는 이 편리한 변기는 도중에 튀는 소변 때문에 늘 말썽이다. 그래서 주변의 청결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고심 담긴 제안을 내어 놓는다. 「편리하게 주신 물건(?) 잘 사용 합시다」,「한 발짝만 더 가까이」,「깨끗이 사용 합시다」,「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튀지 않게 합시다」,「청결」등 많은 문구가 입변기 위에 붙어있지만, 그걸 보고 실천하는 남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소변이 떨어지는 지점이다. 어느 지점으로 떨어지든지 조금이라도 튀기는 마찬가지지만, 변기 맨 아랫부분으로 떨어지면 가장 많이 튀게 된다. 유체가 고체 면에 떨어질 때 어떤 각도가 마찰계수를 가장 낮게 해 주는지를 생각해보면 변기 쪽으로 가깝게 다가설수록 튀는 양이 적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변기를 끌어안고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이런 함수관계를 잘 고려해 본다면 변기 윗부분부터 3분의 2지점으로 떨어질 때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답이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화장실 바닥에야 튀든지 말든지 자신에게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능하면 멀리 서려하고, 관리책임자들은 가능하면 한 치라도 앞 쪽으로 서도록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참신하고 기지(機智)있다고 여겨지는 고속도로 휴게소 두 군데를 소개해 본다. 한 곳은 줄줄이 서 있는 입변기 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1.일보 전진 2.정조준 3.발사」라는 말은 군대에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사격훈련 수칙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남자들이 슬며시 미소를 머금은 채 지시대로 따라해 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아마도 먼 옛날 힘들었던 군 생활의 추억을 잠시나마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추억이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아름답게 반추된다. 비록 아픈 추억일지라도.

또 하나는 너무나 재치 있다고 여겨져서 이 부분에 심사가 있다면 단연 대상감이라고 여겨진다. 아까 언급한 3분의 2지점. 그러니까 마찰계수가 줄어들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지점에다 예쁜 무당벌레 스티커를 하나 씩 붙여 놓은 것이다. 남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무당벌레를 맞추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걸 왜 맞추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거기에 예쁜 무당벌레가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조준하느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변을 보고 있는 중에도 한 발짝 한 발짝씩 더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런 지혜가 삶의 모든 곳으로 스며들어, 억압을 하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고서도 서로를 위해 한 발짝씩 다가설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 감동을 주어 각자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인다면, 그래서 더 이상 물리력이나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다면, 아무도 누군가를 통제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 따뜻하게 이어지는 편집회의 분위기에서 이미 그런 희망을 확인하면서, 세상을 향하여 오늘도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싶다. 기쁜 마음으로.

너희 살을 떡처럼 떼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너희 피를 포도주처럼 따르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조그만 틈을 내어 주는 것
조금씩 움직여 작은 곁은 내어주는 것
기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박해석 시/김정식 곡 「기쁜 마음으로」 전문)


*모든사진은 인터넷 검색에서 퍼옴 


/ 김정식 200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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