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바라보는 하늘의 시선을 담은 영화 <신과 인간>

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영화 <신과 인간>을 통해 가톨릭 수도자들의 ‘관상’을 ‘비극을 바라보는 하늘의 시선’이라는 측면에서 묵상하는 글이 개신교 잡지 <목회와 신학> 2012년 3월호에 실렸다. “인간은 땅의 비극에서 하늘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 김창호 목사(소일공동체)는 1996년 알제리에서 일어난 ‘프랑스인 수도사 납치사건’의 행방을 뒤쫒는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산골마을 티브히린에 위치한 수도원에 내전의 긴박한 상황이 전해지고, 정부군의 보호제안과 외교부의 출국요청에도 수도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명의 터전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듬해 3월 26일 새벽 1시, 무장괴한들이 수도원에 침입해 수도사들을 납치하고, 프랑스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인질범들은 일곱 명의 수도사를 전부 살해했다. 이 사건은 반군이 아니라 정부군의 각본아래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사, 일상의 발견
선교, 선포보다는 경청과 공감과 눈물이 드러나야..


김창호 목사는 배경인 알제리를 소개하면서 “굳이 북아프리카의 험한 동네가 아니라, 아프카니스탄이나 북한이어도 상관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이런 나라에서 정치권력이 백성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지도자에게 그토록 무시당하고 사랑받지 못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쪽 울타리에서 사는 사람들은 순박하고 따뜻며 인간미가 넘친다”고 전한다. 이슬람문화로 도배되어 있지만 투박하고 훈훈한 마을에서 수도원을 세우고 살아가는 수도사들이다.

수도사들이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는 현지인은 별로 없다. 대다수 사람들은 코란을 외우고, ‘인샬라’로 인사를 한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수도사들을 자신들의 모임에 초대하고 서로 울타리를 넘어 교류한다. 수도사들은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함게 밭도 일구고, 꿀을 만들어 장터에 내다 판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소녀는 할아버지 수도사에게 사랑에 대해서 묻는다. 결혼도 안한 처지지만, 인생의 연륜이 쌓인 현자는 연애상담을 해준다.

이 장면을 소개하면서, 김 목사는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는 코카콜라를 파는 방식과는 다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그건 입이 아니라 귀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고, 일방적인 선포보다는 경청과 공감과 눈물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으면서, 자신이 신학생 때 떼제공동체에서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서울 화곡동에 있는 떼제공동체에서 떼제의 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어떤 사역(사목)을 하십니까?”
“뭐...밥도 먹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이를 두고 “우문에 현답이었다”고 고백하는 김 목사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차원을 바라보고 있음을 직감했다. ‘사역자(사목자)’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보통은 일상의 삶이 저차원으로 밀려나고, ‘사역(사목)’이라 인정될만한 것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결혼식 하객이 아니라 기도라도 맡겨야, 설교나 상담이라도 맡겨야 누군가를 만난다. 명분 없이는 만나지 않는다. 이를 두고 김 목사는 “위대했던 종교개혁자들이 수백 년 전에 ‘모든 것이 성직’이라고 했던 말을 잊고 다시 시간을 되돌려 또 다른 중세를 살아간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묻는다. 이어 “알제리의 수도사들은 금띠 두른 천상의 메신저가 아니라, 성육화되신 스승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고 전한다.

사랑 때문에 스스로 보호받기를 거절한 사람들

한편 알제리의 수도사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찬양으로 그날을 마무리했지만, 반군이 마을을 접수하기 시작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은 천군천사를 군대로 묶어서 그들을 지켜주는 조물주의 어마어마한 권능이 아니라, “그보다는 신이자 인간이셨던 그분께서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셨고, 어떻게 죽어가셨는지를 징그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아는 것이었다”고 김창호 목사는 전한다. 예수는 교황청의 보호를 받으실 수도 없었고,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 받으셨고, 죽음의 순간에 하늘 아버지의 고개돌림을 경험했다. ‘왜 나를 버리셨냐’는 철저한 공포와 외로움을 경험했을 뿐이다.

이를 두고 김 목사는 “나처럼 알람소리에 하루를 시작하고, 도시의 소음과 텔레비전 소리에 흐려진 영혼이 아니라, 새벽종소리에 잠이 깨고 동료들의 그레고리안 챤트와 함께 새벽을 여는 영성은 이 차가운 역사에서 하느님이 어떻게 움직이시는지 생생한 지식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갓 구운 바게트와 커피향이 넘실대는 그들의 나라로, 그냥 눈 딱 감고 파리행 비행기를 타면 주님의 보호하심이 너와 함께 할 거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겠지만, 수도사들은 ‘두려움에 벗어나게 해달라’는 자신들의 기도에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대답하시지 않는 하느님’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들이 들은 것은 오히려 “왜 너희들은 억울하게 죽어가는 알제리 민중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느냐?‘라는 반문이었다.

반군의 총성이 가까이 들리고 떠나라는 정부군의 압력이 거세질 때 그들 안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난 살려고 수도사가 된 것이지, 죽으려고 수도사가 된 것이 아니다.” 이 만만치 않은 반론을 잠재우고 만장일치로 수도사들을 위험천만한 알제리에 남게 한 마을 사람의 말이 있다. “당신들은 나뭇가지고 우리는 새인데, 당신들이 가버리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종교, 문화, 인종을 넘어서 어느덧 수도원은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처소가 돼버린 것이다. 집은 돈만 있으면 뚝딱 지을 수 있겠지만, 가정은 사랑을 가지고 오랫동안 가꿔야 한다.

성탄절 저녁, 반군들이 수도원에 처음 들이닥쳤을 때, 그들이 약품을 내어놓으라고 총구를 들이댔다. 수도원장 크리스티앙은 자신들은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라 줄 것이 없다고 거절한다. “우리는 검소하고 누추해서 이웃과 친합니다.” 여기서 김창호 목사는 “마을사람들은 수도사들이 필요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니까 필요했다. 사랑하는 친구가 떠나는 것, 그게 배신이다.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며, 그들의 삶에 반군도 경의를 표했음을 기억한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어떤 날인가?”
“우리의 평화의 왕이 탄생한 밤이죠.”
“왕이라면...예수? 실례 많았소.”

순교자, 희망 없이 사랑한 예수를 닮아가는 길

 

김성호 목사는 영화 <신과 인간>의 압권은 수도사들이 수도원에 남기로 한 후 열린 최후의 만찬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으며 그들은 2천년 전 스승이 제자들과 함께 했던 것과 유사한 메뉴로 밥을, 아니 빵을 먹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땅위를 기어다니지만 언젠가 호반을 나는 새처럼 하늘로 비상할 것을 꿈꾸며, 그들은 포도주를 음미하고 감사하고, 미소짓고, 뒤이어 그들을 뒤덮을 어둠에 두려워 흐느낀다.

김 목사는 “어쩌면 소박한 밥상 앞이 천국이지 싶다”고 전하면서, 그들이 무장괴한들에게 산속으로 끌려가는 마지막 장면도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에는 ‘신께서는 의인의 죽음에 너무도 익숙하시다’라는 독백이 하느님의 시선으로 흘러나온다. 이 마당에 김 목사는 “그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라는 하도 많이 물어서 너덜너덜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변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주님은 광명이시고, 어둠이 이길 수 없다’는 찬양을 올린 그들이 북아프리카의 비극에서 도망쳐 뽀송뽀송한 예술의 나라로 돌아갔다면, “우리는 이 신학적 난제를 푸는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사실 우리 역시 신앙생활 가운데 이 수도사들이 겪었던 고뇌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진짜 기도는 시작도 안 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안온한 삶과 편리한 신앙 속에서 “그냥 주문을 외우고, 청구서를 날렸을 뿐”이라고 일갈한다.

이처럼 하느님은 고난의 상황을 인간의 걸작으로 뒤바꾸는 예술가다. 그걸 영성가들은 ‘관상’이라 부른다. 영화에서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주님의 빛’을 노래하는 수도사들 머리 위에 천군천사가 아니라 정부군의 헬기가 떠다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희망 없이 희망을 노래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하느님 때문에 희망 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외롭고 고독한 한 때를 맞이했듯이, “순교자들의 피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끈질긴 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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