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수 교수의 <믿는다는 것> -2

믿음은 그것이 일상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어느 순간 내 안에 ‘생기는’ 것이다. 믿음은 내 맘대로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이요 은총이다. 인간의 내면은 셀 수 없이 많은 관계망 속에서 여러 후천적 요인들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진다. 단순히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니, 믿으라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생겨나는 것이고, 주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믿는다’지만, 그것은 내 안에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의 언어이다.

‘꽃동네’ 입구 표지석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 있다. 내가 먹는 음식도 은총이지만,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더 근본적인 은총이라는 말이다. 그 힘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내게 주어진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하는 이유도 그와 같다.

불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불교 '정토진종'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을 중시한다. "정토"(淨土)를 주재하는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한다"라는 뜻이다. 아미타불의 자비로 정토에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염불의 공덕으로 정토에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그렇게 염불하며 믿는 마음 자체가 이미 아미타불의 은혜라는 것이다. 인간의 믿음 자체가 바로 아미타불의 선물이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내가 '하는' 것과 그렇게 '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 내가 믿는 것 같지만 뒤집어보면 나도 모르게 믿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주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받아들이는 행위도 있어야 한다. 선물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선물이 된다. 이를테면 공기는 거저 주어지지만, 우리가 공기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에게 선물이 되는 것과 같다. 공기를 너무 조금 들이쉬어 질식하거나 너무 많이 들이마셔 과호흡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둘 다 우리가 공기와 제대로 협력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공기는 주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적절히 받아들여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믿음은 나 혼자만의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이 안팎의 상황에 부응하면서 이루어진다. 믿음의 주체가 ‘나’인 것 같고, 대번에 내 마음대로 이룰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어떤 사실이나 사람에 대한 믿음은, 일일이 다 분석할 수는 없어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받아들임으로써 성립되면서도, 주어지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찬수 (강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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