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영화] <줄탁동시>, 김경묵 감독, 3월 1일 개봉

줄탁동시;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영어제목 <Stateless Things>(국적 없는 것들). 퀴어영화.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 모자이크 처리된 베드신. 27세 젊은 감독. 베니스, 런던, 로테르담, 벤쿠버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 초청.

이 영화에 관련된 정보들이고, 영화에는 씨네필 관객의 관심을 받을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19세에 만든 고백의 사적 다큐멘터리 <나와 인형놀이>로 주목을 받았고, <얼굴 없는 것들>, <청계천의 개들>에서는 수위가 높은 장면들로 충격을 주며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줄탁동시>는 김경묵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내에 정식 개봉된다.

영화는 사회경제 시스템의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의 생존 노력과 남자들간의 사랑을 다룬다. 한국사회의 마이너리티인 이주 노동자와 게이의 지금 현재 이야기. 영화는 많은 찬사와 논란만큼 감상이 쉽지 않다. 아프고 관능적이며 매혹적이고 냉정하다.

영화에는 4명의 주요 인물들이 나오고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주유소에서 일하며 비는 시간에는 전단을 돌리며, 닥치는 대로 돈벌이에 몰두 중인 북에서 온 소년 준은 주유소 매니저에게 희롱 당하는 조선족 소녀 순희를 구한 이유로 잘린다. 체불 임금을 받으려다 매니저와 크게 몸싸움을 벌이고 순희와 함께 도망 다니다, 서울시 관광가이드에 따라 고궁과 남산을 거닌다.

2부. 모텔을 전전하며 몸을 파는 게이 소년 현은 유능한 펀드매니저 성훈을 만나 그가 마련해준 고급 오피스텔에서 안정된 날들을 보낸다. 현은 왠지 모를 외로움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그러던 어느 날 성훈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부. 두 소년이 오피스텔에서 만난다.

3부가 시작되기 전, 영화가 90분여 가량 진행된 후에야 ‘줄탁동시’라는 제목 크레딧이 올라오고, 1부와 2부의 준과 현은 전혀 상관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가 영화 뒷부분에서 만나게 된다. 거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준의 이야기에는 중국감독 지아장커의 영화세계처럼 리얼리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전후사정이 생략되어 은유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관능적인 2부는 홍콩감독 왕자웨이의 영화세계처럼 지독히도 외로운 정서와 무드로 분위기를 감싼다.

영화 전체적으로는 처절한 현실을 카메라가 똑바로 응시하며 관객에게 사회의 부조리와 불편한 진실을 되돌리는 대만감독 차이밍량의 대담한 시도를 닮았다. 거울의 안과 밖처럼 살아가던 두 존재가 만나는 3부는 실제인지 환상인지 모호하도록 몽환적이며 주관적이다. 두 사람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혹은 쌍둥이 같이 꼭 닮은 자아라서 어떤 기운이 이 둘을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한 것일지도.

껍데기를 쪼아줄 어미 닭이 없는 이 방외자들이 껍질을 깨고 나가 살아갈 수 있을까. 알들끼리의 부딪힘만 있는 것 같은 이 비정한 현실에서 어떻게 박차고 나가 세상에 외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의 체험은 즐거움, 감동이나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사회 밑바닥의 삶을 보면서 가슴으로부터 통증을 느끼게 되며, 낯선 타자의 행위를 응시하는 불편함으로 가득하다.

애초에 하나였거나 쌍둥이 자아인 두 소년의 사건은 거울처럼 객석을 비추어 우리들 내면의 외로움을 비춘다. 카메라가 핸드헬드로 주인공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방식을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유지하고 영화 내내 종종 사용하는 것은, 배우의 얼굴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물과 함께 거친 길을 동행하다가 관객 스스로 자신의 마음 속으로의 낯선 여행으로 들어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해와 달 전설을 순희가 이야기 하듯이, 영화는 스타일상 대조와 대구를 통해 상징언어를 강화한다. 늘 낮에 길거리를 전전하는 준과 고급 오피스텔이나 노래방 등 밤에 활동하는 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대비하고, 낮과 밤, 안과 밖, 해와 달, 마음과 몸 등 두 가지 요소들의 비교를 통해 영화는 세상의 극과 극, 그리고 다르지 않음에 대해 발언한다.

<줄탁동시>는 한국독립영화의 성취를 보여주는 대담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처럼 종로 일대를 훑는 카메라는 치장하지 않은 생얼의 서울을 그대로 담아내고, 다양한 소수자들이 공존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은 <똥파리>와 <무산일기> 이상의 충격을 준다. 수위 높은 표현 때문에 이 영화가 불편할지언정,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의 성과를 희석시킬 이유는 없다.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는 항변한다.

소년들은 습관처럼 웅크리고 앉는 자세를 취한다. 사회 계층 사다리 제일 아래쪽에 위치한 불안한 소년들이 알을 뚫고 벗은 몸으로 세상에 나올 때, 냉혹한 세상이 그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의 마지막이 희망이길 바란다. 소년들아, 죽지 마라!

청소년관람불가. 3/1일 개봉.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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