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쇄신]

하나.

진도 바닷가에 있는 폐교에서 3일 간의 주일학교 여름캠프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4개 본당의 중고등학교 학생 200 여명과 함께 하는 모든 일정의 진행을 통째로 맡았는데, 참가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이른바 대안캠프라고 말할 수 있는‘내버려 두기’로 진행되었습니다. 모처럼 아니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든 일상과 일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학생들은 이 상황을 기쁘게 잘 받아들이고 적응하여 자기들 방식으로 잘 먹고 잘 놀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역할이 없어진 교사들은 스스로 견디지 못했고,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있는 학생들의 해방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밤에 제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단체기합을 주고 자신들이 마련한 일정을 강행함으로써 어렵게 준비하고 진행한 대안캠프는 완전히 실패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다 실패한 것은 아닌 것이, 매일 낮 시간 동안이라도 아이들은 충분히 놀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아프고 쓸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캠프가 끝난 폐교를 돌아 나오는데, 버스 정류장에 할아버지 한 분이 봇짐을 들고 서 계셨습니다. 미안함 때문에 자꾸 거절하시는 할아버지께 어차피 가는 길이니 내 차를 함께 타고 가시자고 애원(?)하여 어렵게 동승을 하게 되었지요. 쓸쓸함을 달래는 데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 특효약이 됩니다.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아침에 텃밭에 나갔다 돌아오던 안사람이 무면허 오토바이에 치어서 병원에 있어라우. 전신 골절로 움직이지 못허는디, 수술을 받아봐야 알겄지만 앞으로도 평생 움직이기는 어렵다고 허네요. 그래서 광주 큰 병원에다 입원을 시켜놓고 돌아와 필요한 짐을 싸가지고 다시 가는 길이어라우.”
“차 시간이 40 분이나 남았는데 댁에 계시다 나오시지 않구요.”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차라리 나와서 기다렸지라우. 애들은 다 도시로 나가고 우리 두 식구 사는디, 그 양반이 참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했어라우. 참 좋은 양반이었는디 가슴이 아프요.”


아내에게‘그 양반’이라고 부르는 한국 남자를 나는 처음 만났습니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진도 읍내까지 30 여분을 함께 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삶의 고통 같은 것이지요. 터미널로 꺾어지는 네거리에서 한사코 내려달라는 할아버지를 터미널 앞까지 가 내려 드렸습니다.

“아따, 태와준 것도 고마운디, 가실 길을 놔두고 일부러 여그까지 왔으니 미안해서 으째야쓰끄라우?”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요. 성경에‘누군가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주라’고 적혀 있어요. 오늘 함께 오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녁은(나는) 교회도 안 다니고 절에도 안 다니요. 그랑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읍지만, 나도 담에 다른 사람 만나면 꼭 그렇게 해주고잡소. 잘 가쑈잉~.”

가슴을 숙여 절을 하시면서 눈물까지 글썽이셨습니다. 진정한 메타노이아(회심)가 무엇인지 가슴 깊이 사무쳐 왔지요. 비록 아는 것은 많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순하고 겸손한 그분께 성경 얘기를 꺼냈던 일이 오래도록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둘.

몇 년 전, 대구 대현동 성당에 갔을 때 수녀님으로부터 들었던 얘기입니다. 육십 중반인 아주머니께서 저녁미사에 가기 위해 자기 집 담장을 막 돌아 나섰을 때,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 아마도 잭 나이프로 여겨지는 칼을 목에 들이대면서 말했습니다.

“가진 돈을 다 내 놓으이소. 그라마 해치지는 않을낍니더.”

그 순간 아주머니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자기가 지금 무엇 하러 가는 중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았고, 미사에 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갈 수 있는 방법을 그 강도가 이미 말해 준 셈이지요. 돈만 다 내 놓으면 해치지 않겠다구요. 그래서 강도가 보는데서 손가방을 열고 다시 지갑을 꺼내어 가진 돈 7만 몇 천 원을 다 주었습니다. 돈을 받고 칼을 접은 후 강도가 약속대로 해치지 않고 곱게 돌아서자, 아주머니는 또 다시 미사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보이소예. 지가 미사에 댕기와야 하는데, 다리에 관절이 와가 걸을 수가 없네예. 그라이 택시타고 댕기오구로 만 원만 빼 주마 안되까예?”
원래는 자기 돈이었지만 이미 건너갔으니 좀 빼달라고 했는데,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던 강도가 웃으면서 이 만원을 빼 주더라는 겁니다.
“왔다 갔다 오 천원씩, 만원 만 빼주마 되는데...” 라고 했더니
“우리 어무이도 천주교 신자라요.”라고 말하면서 돌아서 갔다고 합니다.

미사 후에 얘기를 들은 수녀님께서
“그러다 위험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돈을 빼달라고 하셨어요? 그냥 미사 포기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셨어야지요?”
“그 사람이 돈 다 주마 해치지 않겠다고 하더이 약속을 지키더라꼬예. 그라이 만원만 빼달라꼬 사정하마 빼 줄끼라꼬 믿음이 생깄다 아입니꺼.”

자기 어머니가 천주교 신자라고 밝혔다는 것은 그도 세례신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비록 어찌어찌 하다가 강도업에 종사하게 되긴 했지만 어머니 같은 분이 다리가 아프시다는데 당연히 돈을 빼 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기왕에 빼드리는 김에 넉넉하게 빼드렸지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누군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마태오5장41절)’는 말씀을 강도가 실천 했다는 것은 그가 언제든지 돌아가 쉴 수 있는 메타노이아에 대한 지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었음을 짐작케 해줍니다. 아마도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셋.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늦은 밤 강도가 들어와서 총을 들이대며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오십견이 와서 도저히 손을 들 수 없습니다”
그러자 총을 내려놓고 곁에 와 앉아서 두 어 시간을 오십견에 대해 말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나도 3년을 고생했는데 그 심정을 충분히 짐작하겠다니까요. 오죽하면 총 앞에서 손을 못 들겠어요. 한방이고 양방이고 다 가 봐도 소용없지요? 내가 효과를 본 병원이 있는데 내일 나랑 함께 가볼래요?”
그래서 약속을 했고, 다음 날 만나 함께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나서 치료비를 강도가 내 주었다고 합니다.

이 따뜻한 이야기는 우리가 늘 그리워하는 곳, 언제든지 돌아가 쉬고 싶은 곳은 누구에게나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김정식 20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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