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중 `세계는 지금'에서 몽골의 유목민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겨울 섭씨 영하 56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서 그들에게는 가진 것 모두라 할 수 있는 가축들이 떼죽음을 하였고 살아남은 가축들도 그때 너무 허약해져서 계속 죽어간다고 합니다. 늘 옮겨 다니며 사는 그들이 가축을 위해 축사를 짓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혹한 속에서도 가축들은 그대로 방치된다고 하지요.

저는 평생을 안고사는 난치병 때문에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면, 이를테면 영하로만 내려가도 몸에 이상이 오고 그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서 몸살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나기가 늘 힘이 들지요. 언젠가 캐나다에 사는 친구가 그곳으로 와서 함께 살자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경영하는 사업을 동업하면 된다구요. 다 좋았는데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는 말에 정이 뚜욱 떨어졌습니다.

이런 나에게 몽골 유목민이 겪는 고통은, 아니 북쪽 끝에 사는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마저도 결코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고통스럽습니다.


몇 년 전, 자카르타와 싱가포르에 갔을 때 그곳에 사는 교우들이 2세들에게 하는 가장 큰 고민은 늘 따뜻하여 추위를 겪지 않기에 추위를 준비하는 마음이 없고, 그것이 미래에 희망을 갖지 않는 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 또한 몽골 유목민들의 아픔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게는 그것도 고통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두 차례나 방영되었던 여섯 편의 다큐멘타리 <차마고도>를 재방송까지 다 보았고, 지난 주 제주에 머물었던 며칠 동안 DVD로 또 다시 보았습니다. 내용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해발 5,000 미터 고지에 사는 티벳 사람들과 네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견디어 내는 삶을 바라보고 싶어서입니다.

삶이란 고통의 연속일 뿐 아무런 희망이 없다 해도, 부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며 그저 견디어 내는 삶.
그 고통을 바라보면서 내 고통을 달래어 보지만,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고통이 됩니다.

그런데도 저는 오늘도 어느 성당에서 초대한 사순특강 나눔 중에, `고통을 이겨내는 길'은 그리스도가 하셨던 대로 아버지의 뜻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제도 했고 그제도 그그제도 했으며 내일도 모레도 또 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몽골 유목민들의 가슴에도 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북한 주민들과 티벳, 네팔의 오지 사람들을 비롯하여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어쩔 수 없는 삶의 고통을 그저 견디어 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들이 고통의 아픔을 아버지의 뜻이라 여겨 기꺼이 받아들일 수도 있을까요?

저보다 훨씬 오래 사셔서 세상 경험이 많으시고 고통 또한 수없이 겪어내신 어르신들의 가슴에 제 나눔은 또 어떤 위로로 가 닿았을까요? 이 은혜롭다고 하는 사순시기에 제가 겪는 고통은 바로 이것입니다.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함께 나눌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이 고통들을 제 마음의 고통과 함께 그분께 맡겨 드립니다. 그리고 지순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에게서 이 고통의 쓴 잔을 거둘 수 있으면 거두어 주십시요.
그러나 저희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요. 아멘."

(사순 3주일에) 

/ 김정식 200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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