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신부님!
신부님이 건강이 좋지 않고 당뇨가 있으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자주 극심한 두통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미사 드리다 들것에 실려 나가시다니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고통.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인지는 자신만 알 수 있습니다.

저도 15살 때부터 그랬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고열과 두통으로(38~9도에서 가끔씩은 40도 이상이 된 적도 있음) 거의 까무러칠 지경인데도 병원과 약국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으니 특별한 처방도 해줄 수 없다고 했읍니다. 진통제와 해열제가 고작이지만 그것들은 자주 쓸수록 효과가 떨어지고 내성이 생겨서 나중에는 쓸 수가 없어지지요.

예고도 없고 이유도 알 수 없는 고통. 두통 자체는 그것 때문에 죽지는 않을 것이기에 견뎌낼 수밖에 없었지만, 고열로 인한 후유증은 매번 온몸에 혈관염을 유발시켜 말초에서 곪아 터지는 바람에 손톱 발톱이 빠져 나가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여러 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이상한 체험도(아마도 고열 때문) 많이 했고, 23살 때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 본당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시려고 했을 정도였지요. 그거 받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일부러 약속시간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28살 때 <프라도사제회> 관심자로 3년째 구미 신평성당 근로자회관에서 지내던 중, 두통과 고열로 정신을 잃은 채 순천향 병원으로 실려 가서 3일간 병원내 거의 모든 의사들의 집중 임상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이름도 생소한 CGD(선천성 면역결핍증).

그 당시 후천성 면역 결핍증인 에이즈 음성 환자만 2명 있었을 뿐 양성 환자는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첫 에이즈 양성 환자의 개가를 올리려는 순천향병원 의료진의 희망이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저로서는 비로소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행운이라고 여겨야 하나요? 제가 고열 후 겪는 고통과 후유증은 그만큼 에이즈 증상과 흡사했지요. 다만 후천성인 에이즈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어 면역체계가 깨지는 반면, 선천성인 저는 아예 혈구를 만들어 내는 기관이 불량이어서 백혈구수와 적혈구수를 가끔씩 엉터리로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 결과 적혈구수가 부족하면 잘 먹어도 영양소 흡수가 안 되어 영양실조현상이 나타나고(설사와 탈진), 백혈구수가 부족하면 면역체계가 엉망이 되어 공기 중에 무수히 떠돌아다니는 바이러스에 의해 닥치는 대로 감염이 되어 두통과 고열이 오는 거지요. 설상가상으로 이 증상 뒤에 혈관염이 유발되어 곪아 터지거나, 적군인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아군인 백혈구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황하여 오히려 아군끼리 잡아먹어 버리는 이른바 루프스 증상까지 겹치면 도저히 견디기 힘든 통증이 관절과 말초에 옵니다.

그래서 저는 30년 이상 그 고통을 겪으면서 이번에는 꼭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마음으로 유서를 쓰기도 했어요. 친구 의사들의 도움으로 그런 증상이 매우 희귀하여 서울대 병원이 연구 대상으로 욕심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물론 우리나라 의료 수준으로는 연구가 불가하여 영국의 의료진과 협조하여 공동연구를 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6개월을 입원하여야 하며 비용은 병원 측에서 부담하고 연구 성과가 있을 경우엔 적당한 보상사례비도 있다고 합니다. 나을 수 있는 치료도 아니고 단지 연구일 뿐인데 6개월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다른 환자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연구에 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늘 교차하지만 아직까지는 더 나이가 든 이후로 미루고 있읍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눈치 채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너무 좋은 탓이지요. 매번 두통과 고열로 인한 몸살이 시작될 때마다 이번에는 꼭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번번이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지요. 그러니까 고통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지요. 그래서 고통이 시작되면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죽을만큼 고통스럽겠지만 며칠만 겪고 나면 이 고통은 반드시 지나가고 나는 안 아픈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덜 아프더냐구요? 아닙니다. 아픈 것은 똑 같았어요. 조금도 덜 아프지 않았어요. 다만 그 고통을 견뎌내기가 좀 더 나았다는 것이지요. 똑같은 고통이지만 이번에는 꼭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겪는 것과 반드시 지나갈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겪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입니다. 고통의 무게는 변함없지만 겪는 내 쪽에서 달라진 거예요.

요즘도 저는 가끔씩 예고 없지만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고통을 아무런 부주의나 잘못이 없었는데도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합니다. 심한 두통으로 헛것이 보이거나 고열로 온 몸의 뼈가 각각 따로 욱신거리는 통증 속에서 정신이 들 때마다 저는 그 고통이 지나간 후에 맑아지는 정신과 개운해진 육신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확신에 찬 희망으로.

언젠가 중부고속도로를 운전하고 가다가 중부2터널 앞에서(중부고속도로에는 4터널까지 있음) 갑자기 두려운 생각으로 차를 멈추었읍니다. 지금 저 터널로 들어가면 다시는 못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고 그래서 터널 입구 오른쪽에 차를 세우고서 다른 차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수많은 차들이 아무런 의심과 두려움 없이 140~150Km의 속력으로 터널을 향해 질주해 갔읍니다. 그 차를 운전하는 영리한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깨달았읍니다. 그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읍니다. 이 컴컴해 보이는 터널 저 끝에 반드시 환한 쪽으로 나가는 출구가 있다는 것을. 그 확신에 찬 희망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어두움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겠지요. 그런 희망이 터널 속을 환하게 해 주지는 않을 것이므로 희망을 갖는다고 하여 어둠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둠은 그대로 어둠이겠지요. 다만 확신에 찬 희망 때문에 그 어둠이 전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뿐. 그 이후로 다시는 터널 앞에서 차를 멈추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내가 겪어내고 있는 고통으로 인하여 신부님의 그 고통을 다 헤아려 낼 수는 없읍니다. 전혀 다른 몫 일테니까요. 다만 고통의 여정에 동반자로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희망을 나눌 수 있을 뿐이지요. 신부님의 고통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신부님도 저의 고통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고통이 우리 삶에 아름다움이 될 수도 있도록...

오늘 밤 신부님의 꿈속으로 건너가 그 고통의 강가에서 신부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낚시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김정식 200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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