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어서 오세요. 여기 등을 밝혀 드리겠어요.
이 밤은 당신께서 오신 밤, 이 빛도 당신께서 오신 빛
친구여 어서 오세요. 언제나 등을 밝혀 드리겠어요.

예수님 어서 오세요 여기 문을 열어 드리겠어요.
이 집은 당신께서 주신 집, 이 방도 당신께서 주신 방
친구여 어서 오세요. 언제나 문을 열어 드리겠어요

예수님 어서 오세요 여기 나를 비워 드리겠어요.
이 몸은 당신께서 쓰실 몸, 이 맘도 당신께서 쓰실 맘
친구여 어서 오세요. 언제나 나를 비워 드리겠어요.
(서정슬 시/김정식 곡 「예수님 어서 오세오」 전문)

대림절이나 성탄절 뿐 만 아니라 연중에도 널리 불리는 이 노래의 노랫말을 쓰신 분은 서정슬 시인이다. 뇌성마비장애인으로 평생 동안 자신의 힘만으로는 바깥출입을 못할 뿐 아니라 일상적인 간단한 일조차 흔들리는 머리와 팔 다리 때문에 쉽지 않다. 이렇게 살아온 이가 위와 같은 고백을 한 것이다. 이번 대림절 동안 초청 일정을 통해 만나는 이웃들과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떠오른 생각을 나누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의 명의로 수십 채의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있다. 다른 부동산과 동산은 헤아릴 길이 없다. 살고 있는 집 또한 비교적 넉넉하게 사는 우리 집에 비해 식구 수는 적은데 면적은 4배이다. 그 사람도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 나쁜 짓을 했거나 남을 등쳐먹지 않았고 자신의 능력껏 벌어서 모은 재산이기에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으며,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이 사람이 이런 노래를 부를 때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 필요 이상의 것을 욕심껏 소유한 채 ‘이 집은 당신께서 주신 집. 이 방도 당신께서 주신 방’이라고 노래할 수 있을까?

전철이나 시내버스 안에서 만난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을 보면 여자는 물론 많은 수의 남자들도 성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쌍커플이나 코 세우기는 기본이고, 작은 얼굴과 계란형선호라는 요즘 트랜드를 따라 턱을 깎아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내 친구의 아들은 허락치 않는 부모 몰래 턱을 깎아냈다가 부작용으로 온 가족이 몇 달을 고생했다. 의료사고로 처리되어 분쟁으로 갈 뻔 했고, 다행히 잘 협의되어 재수술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 겪은 불안과 고통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용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황된 것을 꿈꾸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사회적 책임이 없는 어린 사람들을 부추겨 그런 끔찍한 수술을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대는 의료인들에 대한 시선도 고울 수 없다. ‘아름다움을 위한 변신은 무죄’라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타고난 용모를 잘 가꾸고 보존하는 정성과 자신의 독특한 개성미를 살릴 수 있는 자기연출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저 남보다 돋보이고 싶다거나, 개성은 포기한 채 남처럼 되고 싶어서 마음대로 얼굴과 몸의 여기저기를 뜯어고치고 나서도 ‘이 몸은 당신께서 쓰실 몸 이 맘도 당신께서 쓰실 맘’이라고 노래할 수 있을까?

행복은 능력이 있다고 욕심껏 많이 갖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로 예뻐진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지 못하고 자꾸 더 높은 곳에 집착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영혼을 팔아치울 때 행복은 더욱 멀어지고 하느님을 만나는 일 또한 요원해진다. 베네딕도회 수사신부인 안셀름 글륀은 「아래로부터의 영성」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하느님께 이르기 위해 사다리를 위로 놓고 한 계단 한 계단 덕과 성을 쌓아가는 데, 그렇게 해서는 영원히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오히려 사다리를 아래로 향한 채 헐벗고 비참한 사람들의 벗이 되고자 낮아지고 망가져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따라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갈 때 비로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12명이 사다리를 위로 놓고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싸우고 물어뜯는 현실은 그렇다고 치자. 그렇게 해서 결판난 위로 향한 사다리의 첫 계단부터 여섯 계단 까지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느님을 섬기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돕고 부추기지는 않았을까? 그들 모두는 그 자리에 그렇게 서서 ‘이 밤은 당신께서 오신 밤 이 빛도 당신께서 오신 빛’이라고 노래 부르고 있을까?

/김정식 200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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