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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작은 자매들
   

1980년 겨울. 대구에서 군종병으로 근무 하던 내게 여동생이 찾아왔다. 그 즈음 샤를 드 푸꼬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라는 수녀회와 가깝게 지내던 동생은 편지에 늘 자매들의 삶을 적어 보냈었다. 『단순 가난의 나자렛 삶』을 동경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매들의 대구 공동체를 찾아갔다.

서너 분의 자매들이 계셨는데 그날의 기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동체 가족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찾아온 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인데, 다른 수도공동체에서 만나기 힘든 일이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온전히 나누는 모습이었다.

 우리와 얘기를 나누던 중에 동네 신자 아주머니께서 찾아오셔서 수녀님을 나무라셨다. 얘기를 들어보니 연탄이 떨어졌기에 100장을 사드렸더니 당장 쓸 몇 장만 남기고 이웃집에 나누었다는 것이다. 사주신 분은 수녀님들 때시라고 사드렸더니 또 남을 줘버렸다고 투정이시고, 식구 중 가장 어른이신 일본인 수녀님께서는 당신들도 어렵지만 이웃에 더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나눈 것 뿐 이라고 말씀하신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감동으로 가슴이 차올랐다.

 그도 그럴것이 수녀님들의 거처는 누추하기 그지없었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 비닐을 쳐 놓았는데 연탄마저 떨어진다면 겨울을 지내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도 더 가난한 이웃과 나눈다는 것이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1년 후에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 집에 잠깐 머무는 동안 성탄을 맞았다. 성탄절 날 동생들과 함께 일산 밤가시골에 있었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공동체에 놀러 가기로 했다. 지금은 일산 신도시 건설로 모두 철거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 속에 섞여 농사일도 거들면서 살다가 함께 철거되어 조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가서 끓여먹을 라면 몇 개와 자매들과 함께 나누어 부를 성탄노래였다. 성탄절 전날 밤. 가난한 사람들 속에 섞여 가난함을 기쁨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자매들에게 소박한 선물을 해 드리고 싶다는 소망이 노래로 피어났다.

성탄을 기다리는 하이얀 내 맘 위에
함박눈 소리없이 내려와 쌓여있네
우리는 꿈꾸었지 눈 쌓인 하얀 성탄
하느님 나의 소망을 예쁘게 이루셨네
하얀 성탄 기쁜 성탄
은종 울려라 즐겁게 노래하자

하얀눈 내려와서 어둔 밤 밝히우고
목동은 별을 따라 구세주 찾고있네
우리는 기다렸지 예수님 오실 날을
구유엔 아기 구세주 방긋이 웃고있네
하얀 성탄 기쁜 성탄
은종 울려라 즐겁게 노래하자 (김정식 사/곡 「하얀성탄」 전문)

밤을 새워 악보를 그리고 성탄 카드를 만들고 난 새벽에 마당으로 나가보니 하얀 함박눈이 소복히 쌓여있었다. 성탄절 미사를 마치고 우리는 벅찬 가슴으로 눈길을 달려 밤가시골로 갔다. 수련원이어서 다른 공동체 보다 식구가 많았었는데 우리는 준비해 간 노래를 나누었고 자매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다. 그것은 음식과 시간이었는데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갈 때 가장 소중한 나눔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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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오랫동안 자매들과 함께 친분을 나누면서, 서울 부평 문산 부산 대구 조치원 목포 등 국내 공동체 뿐 아니라 로마나 네덜란드 스위스 등 내가 찾아갔었던 어느 공동체에서나 한결같이 만날 수 있었던 자매들의 삶의 모습이 바로 ‘가진 바를 모두 나눈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찾아간 이웃을 가장 평안하게 해 주는데 실재적인 가난을 살아내지 않는다면 흉내조차 내기 힘든 일이다.

이교도들과 섞여 살다 이교도에 의해 살해될 때 까지 한 사람도 개종시키지 않았고 단 한 사람의 후계자나 제자도 없었던 샤를 드 푸꼬의 정신을 따라 자매들도 누구를 가르치거나 이끌려 하기보다 가난한 사람들 속에 단지 섞여 살면서 가난하나마 가진 바를 모두 나누려는 삶을 살고 있다.

공동체 가족 중 25%는 무슬림 지역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웃들 곁에서 가난한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한 때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난지도에서는 쓰레기를 줍고 살았고, 파출부 일이나 사무실 청소부 혹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등 궂은 일을 하면서도 가난한 삶이 주는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자매들은 오늘도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기위해 누추한 마굿간에 나신 아기 예수가 방긋이 웃고 있는 것처럼...

/김정식 20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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