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의 <흑산>을 통해 본 ‘가련한 자들의 신앙’

“서울에서 의금부 형틀에 묶여서 심문을 받을 때 곤장 30대 중에서 마지막 몇 대가 엉치뼈를 때렸다. 그때, 캄캄하게 뒤집히는 고통이 척추를 따라서 뇌 속으로 치받쳤다. 고통은 벼락처럼 몸에 꽂혔고, 다시 벼락쳤다. 이 세상과 돌이킬 수 없는 작별로 돌아서는 고통이었다. 모든 말의 길과 생각의 길이 거기서 끊어졌다. 고통은 뒤집히고 또 뒤집히면서 닥쳐왔다. 정약전은 육신으로 태어난 생명을 저주했지만 고통은 맹렬히도 생명을 증거하고 있었다.”(김훈, <黑山>에서)

지난 2월 4일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소설가 김훈(아우구스티노)을 초청해 명동성당 교육관에서  “순교자, 그들의 신앙과 오늘 우리의 신앙”이라는 2012년 첫 특별강좌를 열었다. 주최측의 생각과 상관없이, 김훈은 최근에 펴낸 <흑산(黑山)>이란 소설을 통해 ‘순교자’를 일방적으로 찬양하지도 않았고, ‘배교자’들을 폄하하지도 않았다. 150년 전 조선후기사회에서 벌어진 야만을 고발하고, 백성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 전하고, 가엾은 그들의 상처를 위로했다.

김훈은 순교 문제를 다룬 <흑산>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천주교인들이 겪었을 고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 소설가 김훈(아우구스티누스)는 30년 냉담신자다. 성당에 나가지 않아도 절두산 절벽을 바라볼 때마다 먹먹한 그 무엇을 느꼈다고 전한다. 그것은 신앙 이전에, 혹독한 시절을 감당해야 했던 백성들과, 여기서 헤어나려던 천주교인들의 고통이었다. 

냉담자, 외인(外人), 이게 무슨 말이냐?

김훈은 유아세례를 받고 서울 돈암동성당과 혜화동성당을 다녔는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복사를 섰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이라 본당수녀에게 전례에 필요한 라틴어도 조금 얻어 배웠다. 그러나 대학과 군대시절을 지나면서 지난 30여 년 동안 ‘냉담’하고 있다. 강론이 마음에 안 들거나 하는 특별한 사유도 없이 “세속에 찌들려 살다보니 타성과 게으름이 겹쳐 그리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동안 특별히 못된 죄를 지은 적도 없고, 그래서 “간이 차가와진 사람”이라는 ‘냉담자’라는 말이 가혹하게 들린다.

“그뿐 아니다. 천주교인들은 비신자들을 ‘외인(外人)’이라 부르는데, ‘우리 밖에 있는 사람’ 또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들려 깜짝 놀랐다. 다른 말로 바꿔야 한다. 이른바 외인들이 듣기에 용납할 수 없는 차별적인 말이다.”

김훈이 소설 <흑산>을 쓰게 된 것은 경기도 일산 집에서 시내 들어올 때 늘 보게 되는 절두산 절벽 때문이라 한다. “절두산(切頭山)은 세속적 일상성 앞에 있는 불가해한 절벽이다. 우리 같은 이를 끝없이 고문하고 억압하며, ‘너희들의 삶은 무엇이냐?’고 가혹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흑산>이 신앙인의 입장에서 쓴 글은 아니다. 김훈은 객관적 관찰자로서 순교자뿐 아니라 더 많은 배교자, 좌충우돌한 인물을 다루었다. “교회 가르침에 따라서 세상의 악과 싸우러 갔다가 세상의 악에 굴복하고 비참해진 사람들, 그밖에 수많은 백성들의 모습을 다루었다. 여기서 나는 순교자와 배교자, 그 어느 편도 아니다. 다만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배교자는 배교자인가?”..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데

▲ <흑산>, 김훈, 학고재,2011

김훈은 한국교회사연구소 등에서 나온 숱한 자료를 참고했는데, 그중 프랑스 선교사였던 샤를 달레Claude Charles Dallet)가 쓴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유감을 먼저 표명했다.

“달레 신부는 한국에 와보신 분도 아니다. 조선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글을 보고 책을 썼는데, 한국 문화와 실정, 한국인의 마음과 전통, 행동양식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사람이다. 서문을 보면 허무맹랑하다”며 달레가 우리 토착문화를 ‘야만’으로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천주교인들의 박해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은 ‘조상제사’인데, 한국을 관리했던 북경 주교들은 이를 ‘야만의 풍속’으로 여겼다. “조상숭배는 실제로 효를 근간으로 나라의 기강을 잡는 것이며, 마을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미풍양속인데, 그것을 교회의 이름으로 금했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달레 신부는 순교와 배교를 엄격한 잣대로 구분했는데, “고문에 못 이겨 교회를 버리겠다는 자들을 다 배교자로 낙인찍고,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죽기 직전까지 매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배교’라는 말이 입에 나왔다고 ‘배교자’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김훈은 우리 형법에도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그분들도 다 천당에 가셨을 것”이라 했다.

“악행을 미워하고 또 가엾이 여기는 내 마음 통해 천주는 당신을 스스로 증명한다”

김훈은 이 소설이 형식적으로는 정약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나, 정작 주인공은 정약전도 순교자도 배교자도 이도저도 아니고 방황했던 자들도 아닌 ‘모두’가 동등하게 ‘주인공’이라고 했다. ‘거룩한 순교자’로 등장하는 정약종의 경우에는 순교장면만 비교적 간단하게 묘사했다고 말한다. 정약종의 거죽만 다루었을 뿐 내면을 다루지 못한 것은 “무섭고, 그분의 속을 아는 것은 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서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만 정약종의 순교장면에서 상상으로 지은 대목이 있는데, 정약종이 고문을 당하면서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보면, 정약종의 세례명은 김훈과 같은 ‘아우구스티노’다.

“너의 이른바 천주가 실재해서 세상을 주관하고 있음을 네가 증명할 수 있느냐?”
“증명할 수 있다. 쉬운 일이다. 어린아이가 웃으면서 걸어올 때, 나는 천주가 실재함을 안다. 그대들이 국법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가두고 때릴 때 저들의 비명과 신음이 천주를 증명한다. 그대들의 악행을 미워하고 또 가엾이 여기는 내 마음을 통해서 천주는 당신을 스스로 증명하신다”

정약종은 결국 서소문에서 참수되었는데, 김훈은 그렇게 순교했던 ‘사학죄인’(邪學罪人)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대국의 정삭을 받들러 북경으로 가는 왕사 일행에 밀정을 끼워 넣어 천자의 궁궐 앞에서 양이들과 내통하면서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교 서적을 몰래 들여온 죄만으로도 그들은 살아남기 어려웠다.
선왕의 재세 시부터 사학죄인들의 무부무군(無父無君)한 패륜은 전국 각지에서 보고되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백성이라면서 땅 위에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삶과 땅 위에 세워진 인륜을 하찮게 여겼다. 비변사 당상이 임금에게 아뢰면서 울음을 삼켰다. 그들은 조상의 신주를 불살라서 제사를 폐지했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여기의 땅이 아닌 곳에 임금 없고 조상 없는 나라를 만든다는 황잡한 요언으로 무민(誣民)하였다. 남녀가 음습한 소굴에서 한데 뒤엉켜서 아비가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이적의 사호(邪號)로 서로 부르고 응답하면서 끙끙거렸다. 그 패역한 마음과 무도한 행실을 민간에 퍼뜨려 임금을 능멸하고 국본을 위협하고 강상을 더럽힌 것이 그들의 죄상이었다. 그들이 세상을 부수려 했고, 부수어지지 않는 세상을 버리려 했으므로 그들의 죄는 세상 전체의 무게와 맞먹었다.”

▲세상의 악과 싸우는 길에서 맑은 영혼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선택'하고, 절망하고, 아파하고, 때로 희망했다.

정약전, ‘흑산’이라는 참혹한 유배지를 긍정한 사람
황사영, 친체제에서 반체제로 넘어간 아름다운 청년


김훈은 정약전과 정약용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배교한 사람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선택’이었다고 변호한다. 형틀에서 내려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는 뜻이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배교의 대가로 사형을 면하고 유배되어, 거기서 모든 중요한 저작들을 썼다. “이것은 흠이 아니다. 선택일 뿐”이라고 김훈은 말한다. 이들 형제들 안에서 근대와 봉건, 신앙과 세속이 교차하고 있는데, 여기서 김훈은 특별히 정약전에게 주목했다.

정약전은 정약종처럼 고귀한 신앙인도 아니었고, 정약용처럼 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흑산도에서 첩을 얻어 자식을 둘이나 낳고 서당을 만들어 학동들을 가르쳤으며, 바다를 바라보며 천해고도 흑산도에서 어부들을 위해 실용서인 <자산어보>를 썼다. 정약전이 서울사대부를 그리워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지만, 말벗도 책도 없는 그곳에서 동화되어 살았다. 이를 두고 김훈은 “흑산이라는 참혹한 유배지를 긍정한 사람”이라며 “자신이 처한 현실 위에서 꿈을 세워나간 지식인”이라고 평가했다.

정약전이 흑산에서 가르친 것은 <소학>(小學)이다. 소학에서는 인간의 기본 도리를 “물을 뿌려 마당을 쓸고 어른이 물으면 대답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처럼 정약전은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경전들을 통해 유배지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었다.

한편 황사영에 대해서 김훈은 “교회에서는 최근에 안중근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지만, 황사영에 대해서는 머뭇거리는 태도가 보인다”며, 황사영 백서에 담긴 내용을 떠나서 인간 황사영을 탐색하고 있다. 김훈은 “황사영은 외인들의 지독한 편애를 받은, 주자학이 길러낸 가장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소개한다. 황사영은 임금이 잡은 손목을 비단으로 감아둘 정도로 ‘친체제적인 인물이지만, 가장 반체제적 인물로 돌아선 사람이라며 “세상의 악과 싸우며 극단에서 극단으로 간 사람”이라고 말했다.

야트막한 토굴에 숨어서 세상과 절연된 상태에서 그가 쓴 것이 <황사영 백서>다. 여기서 김훈은 “어떻게 그런 곳에서 제 영성을 유지하고, 그 힘으로 현실을 조직해서 세상의 악과 싸울 수 있었을까?” 묻는다. 외세를 불러서라도 모든 악을 없애려고 갈망했던 사람이다. 이를 두고 김훈은 “황사영이 제시한 해결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삶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저렇게 경건하고 엄숙한 것이구나, 쉽게 삶 앞에서 까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교회 없이도 이미 ‘인간의 영성’을 산 사람들

김훈이 <흑산>에서 가장 애정을 느낀 인물은 평안도 정주 역참의 마부 ‘마노리’였다. 마노리는 황사영에 의해 입교하기 전부터 북경과 조선을 오가며 교회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를 두고 김훈은 “그들이 한국교회를 있게 한 보석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마노리는 천주교 신앙에 입교하기 전에도 이미 ‘인간의 영성’을 지닌 사람이었고, “교회와 관련 없이도 본래 타고난 영성으로 선악과 미추(美醜)를 판단하고 알 수 있다”고 김훈이 믿게 한 사람이다.

<흑산>을 읽어보면, 마노리는 “길 걷기가 단잠처럼 편안했다”고 한다. 마노리는 숨을 쉬듯이 걸었다고 한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어서, 그 길을 사람이 걸어서 오간다는 것이 마노리는 신기하고 또 편안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갈 뿐 아니라, 저 마을에서 이 마을로도 가면서, 길 위에서 서로 마주치기도 하고 마주친 사람들이 어긋나게 제 길을 가고 나면 길은 비어 있어서 누구나 또 지나갈 수 있었다. 길에는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있었고 주인은 없었다.”

김훈은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기본”이라는 점을 마노리는 길에서 배웠다고 썼다. 마치 지상에 머물 땅 한 평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순례자’가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현실의 악을 건너가려다 짓밟혀 생애를 망친 비참한 사람..
"하느님이 그를 지옥에 버리지 않을 것이다"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한편 <흑산>에서 천하의 악인으로 등장하는 ‘박차돌’에게도 김훈은 구원의 여지를 남긴다. 박차돌은 타고난 현실감각과 영민함으로 천출을 면하고 공명첩을 사서 지방향청의 아전으로, 포도청의 하급관리로 일했는데, 결국 배교와 더불어 천주교인들을 밀고해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 과정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갈등하면서도 결국 제 이득을 탐하던 자였다.

“지방향청에서 아전 노릇을 할 때도, 관아에 끌려와 매 맞는 백성을 볼 때마다 박차돌은 세상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매 맞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박차돌은 관아의 창고를 파먹은 돈으로 공명첩을 사서 대처로 나올 수 있었지만 때리고 가두는 자들의 세상을 피할 수 없었고, 때리고 가두는 자들 옆에서 때리고 가두는 일을 기록하고 있었다.”

박차돌은 “현실의 악을 건너가려다 짓밟혀 생애를 망친 비참한 인물”이라며, 좌충우돌하면서 그가 겪은 고통만으로도 그의 죄는 사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훈은 “박차돌 역시 천당에 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느님이 그를 지옥에 버리지 않으리라고 믿는다”고 전하면서, “영원히 벌을 받는다는 지옥이 있다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죄보다는 벌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훈은 “지옥에도 구원의 실낱같은 희망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초기 천주교 평신도들의 전형으로 하층계급 출신의 ‘오동희’를 꼽았다. 특히 김훈은 오동희의 입을 빌어 ‘기도문’을 적었다. 이 기도문이야말로 사실상 당시 천주교인들의 바람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음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김훈은 당시 천주교인들이 제 영혼의 구원이나 종교의 심오한 원리를 알아서 입교한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현실의 억압과 착취, 악에서 헤어나오는 방편으로 천주교 신앙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약육강식, 우리시대의 야만을 뉘우치고 뉘우쳐야

김훈은 자신이 아직 ‘사랑에 장악되지 않아서’ 소설을 쓸 때 ‘사랑’이니 ‘용서’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흑산>이라는 소설에서도 ‘사랑’이라는 말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언급할 때만 사용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초기 천주교인들이 삼위일체론이나 창조론 등에 감읍해서 신앙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들은 다만 ‘이웃사랑’이나 ‘거짓말 하지 말라’는 단순하고 명료한 가르침에 감복되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한 구절이면 세상의 악을 모두 제거하는 데 충분했다. 그 사랑이 없어서 세상에 악이 창궐하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김훈은 “악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속을 떠날 수 없는 게 인간”이라며 “소설가란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떠나 모든 사람이 아름답고 존엄함을 글로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김훈은 다산 정약용이 말년에 “학문의 목적은 뉘우침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한다. “뉘우침의 진정성 위에서 인간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 우리시대에 던지는 말이 있다. <흑산>에서는 150년 전의 ‘야만’에 대해서 썼는데, 이제 우리는 자기 시대의 야만성을 들여다보고 뉘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훈은 우리시대의 야만성을 ‘약육강식’이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일산에는 6,000원 하던 짬뽕이 3,300으로 내렸고, 7,000원 하던 소고기볶음밥이 11,000이다. 중간이 없다. 여기서 3,300원 짜리 밥을 먹느라고 표를 받고 줄을 서는 젊은이들이 많다. 파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가? 전셋값이 치솟고 있는데, 돈 없는 이는 방을 줄여가야 하고, 그마저도 줄일 수 없는 사람은 갈 곳이 없다. 세입자는 밥을 줄여야 하는데, 우리는 시장의 합리성을 말한다. 시장의 원리는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하지만, 이 시장의 섭리가 과연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묻게 된다. 이런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 시장의 섭리 안에 깃든 ‘야만’을 감지할 도리가 없다.”

김훈은 시장의 원리가 갖는 ‘무력한 자에 대한 야만과 폭력’을 해결하지 않고 150년 후에 다시 거론한다면, 이는 공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음 생애에는 책 없는 세상에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김훈은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와 ‘슬픈 옥이’를 떠올렸다. 그가 제일 부럽다 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행복의 나라로..   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한대수

장막을 걷어라 /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
창문을 열어라  /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더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 주  /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  눈을 떠봐요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 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