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훈 원장(홍정형외과)의 장례미사가 1월 30일 오전 10시에 인천교구 제물포성당에서 봉헌되었다. 이날 미사에는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관련인사들과 우리신학연구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등 홍성훈 원장이 평소 호흡을 같이 한 사제 평신도들과 인천지역의 민주화운동과 환경운동 등 홍 원장이 마음을 쏟았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인의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이날 미사는 조성교 신부(인천교구 서운동성당)의 주례로 30여 명의 사제들이 공동집전 했으며, 영결식은 호인수 신부(인천교구 부개동성당)가 진행했다.

이날 강론을 맡은 장동훈 신부(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홍 원장님은 ”과장도 포장도 없이, 필요한 만큼만 담겨있는 정갈한 반찬 종지처럼 자신의 의술을 베푸셨고 자신의 마음을 나눠주셨던 분“이라고 기억하면서, 이틀 동안 찾아온 수많은 문상객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원장님의 넓고 깊은 관계 맺기에 놀랐다고 전했다.

“인천지역에서 활동한다 하는 사람은 다 모인 듯한 장례식장에서 본 원장님의 관계 방식은 진보도 보수도, 지식인도 무학자도,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없어보였습니다. 편 가르기 좋아하고 허장성세에 능하며, 사람과 관계 맺기를 인맥다지기 정도로 여기는 인사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깊이요 넓이, 그것이 원장님의 관계 맺기 방식입니다. 애초에 정계에 입문하셨거나 괜찮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셨어도 뭐라 말할 사람 없을 만한 관계를 맺었던 원장님. 하지만 원장님이 돌아온 자리는 아무도 없는 성당 안 감실 앞이었고 허름한 막걸리집 마주앉은 가난한 눈동자의 언저리였던 것 같습니다.”

이어 인천교구에서 시작한 사회교리대학을 제일 먼저 수강 신청하고 강사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뒤풀이 자리까지 챙겨준 ‘모범학생 홍성훈 원장님’이라며 “이미 사회교리를 몸소 살고 계셨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추수가 끝난 들판에 허기진 제자들과 함께 낱알들을 비벼 까먹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 엉엉 소리 내며 울며, 시정잡배들이 들끓던 세상의 좌판을 분노로 뒤엎으며, 세리든 창녀든 할 것 없이 찾아오는 이 마다않고, 진보니 보수니 떠드는 이들을 부끄럽게 돌려보내던, 오롯이 그 안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 참 사람을 바라보고 마주할 줄 알았던 청년 예수처럼 사셨던 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홍 원장은 “복음을 몸으로 묵상”했던 “진짜 신앙할 줄 아는 분”이라며 “봄날의 바람처럼 자유롭고, 시원한 막걸리처럼 청량하며, 구수한 된장 같은 벗으로 우리들 곁에 함께 있도록 허락해준” 유족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위로를 전했다.

영결식에서 호인수 신부는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홍 원장을 기억하며 “아마도 내가 홍원장과 가장 많이 술을 마셨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시며, 홍성훈 원장의 주위를 돌며 분향했다. 추모식에서 엄종희 원장(지킴이한의원)은 홍성훈 원장이 전날 호인수 신부 등과 점심식사도 나누고, 밤에는 편안히 텔레비전 시청도 하고 주무시다가 자연스럽게 이승을 떠난 사실을 듣고 “다행히 주무시던 중에 고요히 영면하셨다고 하니, 그도 그분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난히 네팔을 자주 다녀온 홍 원장을 기억하며 “히말라야의 눈덮힌 산정이 주는 고요함과 장엄함이 네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품어주었듯이, 홍원장님은 그 삶이 치열했지만 마지막은 고요했다”며 “그렇게 당신을 불러가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천운이 닿아 그분과 지상에서 인연을 맺게 된 나 자신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장례미사 추도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시청했던 동영상.(편집/신상훈, 동영상 인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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