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슬픔이 간직된 내 어린 시절. 학교 수업시간을 빼고 난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가까운 산이나 들판 그리고 강으로 가서 자연과 어울려 지냈다. 가끔씩 양호실에 딱 한 대 있었던 풍금을 만져보거나 삼촌이 불다가 버려둔 하모니카를 혼자서 불어보기도 했지만 많은 시간 동안 그냥 심심하게 지냈다. 또래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왜 저렇게 쓸 데 없는 일들을 반복할까?’라고 생각했기에 한 번도 함께 어울려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구슬은 왜 이리저리 굴려대며, 자치기라는 나무 막대기는 무슨 이유로 저리 때려댈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딱지들은 왜 저렇게 많이 만들어서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눈알을 부라리며 진땀을 뺄까? 일부러 구경한 적은 없지만 지나가다 우연히 볼 때 마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한없이 한심하게 여겨지고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보지 못한 것이 억울하게 생각될 지경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 혼자 지내는 일에 익숙해졌고 책과 자연을 친구로 여길 수 밖에 없었다. 앞산에 올라 참나무 밑에 앉아 책을 읽다가 가까이 다가온 다람쥐나 토끼 혹은 산새들에게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주로 내 얘기였지만 열심히 들어주는 것 같아 신이 났다. 그런 얘기는 나뭇가지나 풀잎, 물고기나 물풀들 혹은 바람결이나 강물에게도 했다. 훗날 이런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내 노래에 담겨졌다.

열 살이 지날 무렵 누나를 따라 읍내 교회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듣다가 어떤 깨달음이 왔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를 다 듣고 계신 분이 있다는 것과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날의 놀라운 새로움은 아직까지 아름다운 충격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도시 중학교로 진학하여서도 이런 생활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면 음악실에 혼자 앉아서 피아노를 치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내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슬픔은 바다에 별을 심고」였다. 어느 낙도 교사의 슬픈 삶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광주교대를 졸업하고 초등교사 자격을 얻은 그분은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낙도의 교사를 자청하여 올갠 한 대를 쪽배에 싣고서 전교생이 서너 명밖에 안 되는 낙도로 갔다. 그 섬에서 근무를 하고나면 도시 학교로 발령을 내주겠다는 교육청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가려는 교사가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어거지로 발령을 내면 임기를 못 마치고 교사직을 그만 두어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그분은 평생을 그 섬에서 교사로 살겠다고 약속했고 아이들과 섬사람들과 섞여 살며 그렇게 행복했다. 그러나 1 년도 채 안된 어느 날 급성 맹장염을 앓게 되었는데 하루에 한 번 들어오는 배가 높은 파도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고 부두에서 고통스럽게 배를 기다리다 어처구니 없이 숨을 거두었다. 이것이 그의 거룩한 삶의 전부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한없이 가난하게 죽어간 그분 때문에 열네 살 중학생이었던 나는 며칠 밤을 새며 울었다. 그분이 따라 살고자 했던 예수를 아무런 다른 이유도 없이 따라 살고 싶었고 그러기로 스스로 결심을 했다.

며칠 후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으로 가서 ‘나는 커서 부모님이 바라는 사람이 되지 않고 예수를 따라 살 것이며 그러기 위해 낙도에 가서 선생님이 될 것이다’라는 요지의 결심을 밝혔다. 주무시다 일어나셔서 다 들으신 다음 아버님은 아무 말씀이 없이 바로 다시 주무셨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면서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단다. 다만 건강하게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그저 애를 쓸 뿐이다. 그러니 다른 걱정 말고 어서 잠이나 자거라.”

어머니의 이 말씀은 내게 큰 격려가 되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신 부모님의 교육열은 하늘만큼 높아서 외갓집 아제를 데려와 누나와 나의 가정교습을 시키셨고 그 덕분에 내 성적은 늘 최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 대부분의 급우들은 방과 후에 집안일이나 농삿일을 거들어야하는 형편이었다. 성적이 좋으니 부모님의 기대 또한 컸을 것이다.

아마도 판사나 검사 혹은 변호사??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의 꿈은 낙도교사다. 나도 가난한 사람들과 섞여서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고 싶다.

내게 이런 꿈을 심어준 그분을 통해 나는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다.
가슴 아프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행운.

이 슬픔을 팔아서 조그만 꽃밭 하날 살까
이 슬픔을 팔면 작은 꽃밭 하날 살 수 있을까

이 슬픔 대신에 꽃밭이나 하나 갖게 되면 
이  작은 채송화는 가장자리에
그 뒤 쪽엔 해맑은 수국을 심어야지

샛노랗고 하얀 채송화
파랗고 자주 빛 도는 수국
그 꽃들은 마음이 아파서
바람 소리 어느 먼 하늘을 닮았지

난 이 슬픔을 팔아서 자그만 꽃밭 하나 살 거야
저 혼자 꽃밭 보며 가만히 노래하며 살 거야 (이정우 시 / 김정식 곡「노래」전문)

/김정식 200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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