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주교회의연합 '사회행동 주교 연수' 25년 만에 재개

▲ 카렌족 난민 마을의 한 집. 카렌족은 바닥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집을 짓는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 인간발전사무국(FABC-OHD)은 “아시아 민중의 고통과 교회의 응답: 사회교리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25년 만에 사회행동주교연수(BISA VIII)를 열고 이주 노동자, 난민, 토착민 등 아시아 민중의 고통에 응답할 방안을 논의했다.

태국 방콕의 카밀리안 사목센터에서 1월 17-25일 열린 연수에는 13명의 주교를 포함해 아시아 15여 나라에서 40여명의 사제, 수녀, 평신도가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18-21일 3일 동안 토착민, 이주 노동자, 에이즈 감염자 및 성매매 피해자 거주지에서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현장체험을 했다. 미얀마와 경계를 이루는 카렌족 난민 마을에서 현장체험을 한 오시카와 주교(나하 교구)는 이곳 난민들의 처한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간신히 물 몇 바가지로 샤워를 하는데, 이 난민들은 먹을 물조차 없다는 게 기억나서 샤워를 중간에 포기했다. 정말 충격이었다. 일본에 돌아가면 주교회의에 내가 체험한 것을 보고하고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논의하려 한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내 교구의 사목정책을 다시 세워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하 교구장인 오시카와 주교는 일본에서는 어떤 국경 분쟁이나 심각한 난민 문제를 들어 본 적이 없다면서, 물질 사회에 익숙해져버린 일본 신자들에게 이들의 상황에 대해 교육하겠다고 덧붙였다.

인도에서 온 마리올라 수녀는 토착민을 만나기는 처음이라면서 카렌족 난민 상황을 직접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아무 가구나 물건도 없는 이 좁은 집에서 8명이 살아야 한다는 게, 삶 자체가 재난처럼 보였다. 많은 권리에 대해 말해 왔지만, 하루 먹을 거 때문에 고통 받아야 하는 이들 앞에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카렌족 노인이 팔기 위해 빗자루를 만들고 있다.

<카리타스 아시아>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넘어 온 이주민은 12여만 명이며 이중 카렌족 난민은 8000-1만 명에 이른다. 카렌족 난민은 대부분이 태국 국경 근처의 난민 캠프에 수용돼 있으며, 태국 법으로 캠프에서 300미터를 벗어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일부 젊은이들은 캠프를 떠나 이곳저곳에서 막일을 하다가 부랑자 신제로 전락하기도 한다.

<카리타스 아시아> 사무총장 보니 멘데스 신부는 “태국 자체에서도 국내 이주민도 많고 다른 나라에서 오는 이주 노동자도 많아서, 이주민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를 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카렌족 난민은 유엔에서 난민 지위를 부여했지만, 태국 정부는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할 경우 수반되는 국제법적, 경제적 부담 때문에 난민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멘데스 신부는 “미얀마의 정치 상황이 호전되고 있어서, 이들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행동주교연수는 지난 1986년 1월 태국 후아힌에서 개최된 7차 연수를 끝으로 25년 동안 열리지 못했다. 한국도 지역별 개최지로 포함돼 서울의 판자촌과 강원도 사북 탄광에서 현장체험을 연 적이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등도 사회행동주교연수에 참가한 바 있다.

인간발전사무국 사무총장 니티야 신부는 “태국 카리타스의 도움으로 현장체험을 할 수 있었다.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회의에서 아시아 민중의 현실을 깊이 논의하고 아시아 교회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러 이유로 25년 동안 연수가 열리지 못했다면서, 자신과 사무국 의장인 찰스 보 대주교는 해마다 연수를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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