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수도원 기행-14]

▲ 성당과 손님의 집.

로마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방학을 잘 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6월말 기말 시험이 끝나면, 10월 중순까지 석 달이 넘는 여름 방학이 있고, 성탄과 부활을 전후해서 각각 2주 정도의 방학이 있다. 긴 여름 방학은 주로 학업을 위해 요구되는 제2, 제3의 외국어를 익히는데 주로 할애해야 하고, 성탄과 부활 방학은 무척 기다려지지만, 방학 후에 찾아오는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처럼만에 로마 성 안셀모 수도원을 떠나 다른 수도 공동체들을 방문하여 그곳의 수도생활을 체험할 수 있고, 전례는 어떻게 거행하는지, 공동체의 생활은 어떠한지를 살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 지방에 위치한 몬떼 올리베또 수도원(Monte Oliveto Maggiore)은 언젠가 꼭 방문해 보고 싶은 수도원이었다. 한국에 있는 또 다른 베네딕도 수도원인 경남 고성의 올리베따노 수도원과 부산 광안리의 올리베따노 수녀원이 이 수도원과 연관이 되기 때문이다. 성주간을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이곳 수도원의 아빠스님께 메일을 드렸다. “가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문의를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이미 수도원 문간으로 팩스가 도착해 있었다. “당연히 와도 되지!” 그리고 팩스의 여백에는 오는 방법들이 자세하게 적혀져 있었다. 너무 늦게 메일을 보내지 않았나 하는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성주간 수요일에 이곳에서 전례학을 공부하는 의정부교구 신부님 한 분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중간에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목적지인 아쉬아노(Asciano) 역에 도착했는데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역에 도착한 후 수도원에 전화하니까 수사님 한 분이 마중을 나갈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온다는 수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작은 동네에 기차역이 두 개나 있었던 것이었다. 시간상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그 역의 이름은 아쉬아노 몬떼 올리베또(Asciano Monte Oliveto Maggiore). 수도원 이름을 붙인 또 다른 역이었다. 역에서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구릉마다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나타나는 풍경들마다 그림엽서에서 본 듯한 장관들이었다.

▲ 토스카나 풍경.

▲ 토스카나 풍경.

올리베따노 수도원은 흰색 수도복을 입는다

몬떼 올리베또에서 수도 생활이 시작된 것은 13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에게 가타리나 성녀로 유명한 시에나에서 태어난(1272년) 베르나르도 똘로메이는 법학을 공부한 행정관이었다. 그러나 1313년에 두 동료와 함께 은수생활을 시작하였고, 나중에 성덕이 알려져 제자들이 많이 모이자 몬떼 올리베또에 수도원을 세웠다.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을 따르고 공동생활 양식을 존중하면서도 관상적인 생활에 전념하는 수도원이었다.

수도원 경내에는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2009년 시복)가 은수생활을 했던 토굴을 보존하고 있는 경당도 있다. 전통적으로 베네딕도회가 검은색 수도복을 입었다면, 올리베따노 수도원은 흰색 수도복을 입는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고성 올리베따노 수도원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현재 몬떼 올리베또 수도원은 30여명의 수도자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아주 활력이 넘쳐보였다. 연세 드신 수도자들도 많지만 젊은 형제들도 많았다. 10개국(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멕시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슬로바키아, 가나)에서 온 수도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문화적 다양성은 이 공동체가 지닌 또 다른 활력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 수도원 원경.

 

▲ 식당.

이미 여러 형제들이 우리나라를 다녀간 적이 있어 한국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고성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초기에 이곳에서 수련기를 지냈기 때문에 한국은 이들에게 먼 나라가 아니었다. 왜관을 방문하셨던 어떤 분은 병실에서 젊은 수사들이 병들고 연로하신 수도자들을 보살피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또 고성 수도원이 처음 설립될 때 함께 했던 아브라함 신부(세례명이 도밍고라서 한국 이름을 도명구로 정했다고 한다)를 만나서 우리말로 이야기 하는 기쁨도 가졌다. 뜻하지 않게 2001년 부제 시절 런던의 올리베따노 수도원에 머물 때 그곳에 사시던 필립 신부도 만났다. 이래저래 남의 집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이미 와 본 듯한 친근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신선한 영성의 공기를 공급하는 숲과 같은 곳이었다

▲ 프레스코화 앞에서.
성주간에 방문했기 때문에 공동체 전례에 아주 깊게 참여할 수 있었다. 함께 바치는 기도 소리는 맑고 아름다웠다. 목소리에서 젊음과 경쾌함이 느껴졌다. 전례 중에 부르는 특별한 노래들과, 전례 해설들, 강론들은 빠스카 신비를 깊이 묵상하도록 이끌어주었다. 수도원 안쪽에 있는 네모 난 회랑에는 베네딕도 성인의 생애가 프레스코화로 빽빽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였다.

수도원 입구의 손님의 집에도 여러 나라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산꼭대기에 있고 주위는 절벽으로 둘러싸여진 그런 곳이지만, 늘 사람들에게 신선한 영성의 공기를 공급하는 숲과 같은 곳이었다. 산책 중에 우연히 만난 한 수사는 멀리 있는 높은 산들을 가리키며 저 산에는 어떤 수도원이, 또 다른 먼 산에는 어떤 유명한 수도원이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베네딕도 성인이 태어난 움브리아 지방이 그러하듯, 르네상스의 태동지이고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으는 이 곳 토스카나 지방(피렌체, 피사, 시에나 등) 역시 성인들과 수도생활의 향기를 흠뻑 머금고 있는 땅이었다.

18년 동안 아빠스직을 수행했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M. Tribilli)아빠스 님은(현재는 디에고 마리아 로사 총 아빠스다)는  모든 사람들을 아주 친근하게 대하시는 분이셨다. 수도원을 떠나기 전날, 수도원을 방문한 소감이 어떤지 나에게 물으셨다. “소감이라면... 음... 제가 한국에서 고성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그런 느낌과 환대를 여기서도 받은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이 마음에 드셨는지 점심 식사 후 형제들과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도 다른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씀 속에 한국에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올리베따노 공동체를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로마로 향했다. 방문 동안 늘 신경을 써 준 테오도로 수사가 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산 위에서는 그렇게 추웠었는데, 역에 도착하자, 옷을 벗어야 할 만큼 더운 날씨였다.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서 토스카나의 풍경을 보면서 한국과 이탈리아를 잇고 있는 인연의 끈을 느껴 보았다. 또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 프레스코화 복도.

<참고 할만한 누리집>

http://osb.brothers.or.kr (고성 올리베따노 수도원)
http://www.osboliv.or.kr (부산 올리베따노 수녀회)
http://blasio.osb.kr  (몬떼 올리베또 수도원에 대한 다른 사진들과 글을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서 발간하는 <분도>지의 편집진과 상의하여 연재하는 글입니다.

글, 사진제공 박현동 블라시오 신부 (성베네딕도수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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