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주말영화] 자비에 보브와 감독의 <신과 인간>

알제리의 한 산골 마을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일곱 명의 프랑스인 수도사와 한 명의 의사가 겪은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

1996년 일곱 수도사들이 무장한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모두 살해된 사건을 다룬다. ‘티브히린 프랑스 수도사 살해사건’ 10주년을 추모하며 2006년에 다시 프랑스 언론이 이 사건을 재조명하자, 1990년대 후반 젊은 프랑스 영화를 이끌던 한 사람인 자비에 보브와 감독이 연출을 맡아 2010년에 완성하였고, 그 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개봉 당시 4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하며 3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국민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나라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가톨릭 수도사들의 행적을 다루고 그레고리안 성가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노동과 가난, 봉사의 의무를 삶으로 체화한 늙은 수사들의 일상과 사건을 영화가 다룬다고 해서 이 영화를 종교영화라는 카테고리 안에 가둘 수는 없다.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인간적인 나약함 앞에서 신념을 지켜나간다는 것의 의미, 이상과 현실이 괴리를 가져올 때 그 갈등을 이겨내는 방식,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 위한 고뇌의 과정, 용기와 헌신을 지속하게 하는 어떤 힘의 존재에 대해 사유케 하는 매우 보편적인 인간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은 수도원의 평화로운 일상에서 시작한다. 수도사들은 가난한 알제리 마을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고민을 들어주며 이슬람 축제에 참석해 마을남자들과 함께 가톨릭과 이슬람식 기도를 나누고 대화한다. 수도원에서는 악기 없이 소박한 성가를 부르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고 공부하며, 밭을 경작하여 자급자족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을 이어간다.

어느 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도로 작업장의 인부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평화롭던 마을은 위기를 맞는다. 의사가 있고 마을사람들을 치료할 최소한의 약을 구비하고 있는 수도사는 테러리스트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공간이다. 이에 수도사들은 프랑스로 귀환할지 남아서 수도원과 마을을 지킬 것인지 목숨을 내건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다.

초반부, 다큐멘터리처럼 수도원과 수도사의 일상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듯이 담아내던 카메라는, 폭력사태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수도사 개개인의 내부로 들어간다. 선택 앞에 놓인 인간이라는 철학적 질문, 그들의 회의와 고뇌, 그리고 신념이라는 추상적인 관념들은, 카메라가 고요하게 수도사의 뒤를 쫓고 그들의 사소한 표정과 몸짓을 포착하며 얼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자 구체적인 그림으로 형상화된다.

영화는 단순한 수도사들의 생활을 닮아 미니멀리즘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카메라를 채택하다, 중반부 이후 내면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이로써 카메라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의 변화를 보인다. 개인의 고뇌와 선택, 믿음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긴박감 넘치는 촬영술과 편집리듬을 총동원하여 당시의 화약고 같은 갈등의 순간들을 재연해낸다.

이 영화의 미덕은 수도사들을 진부한 틀 안에서 낭만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짧게나마 정치적, 역사적 언술을 새겨 넣으면서 수도사들의 비극이 개인에게 불어 닥친 우연한 사건이 아님을 강조한다. 알제리를 점령한 프랑스 식민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학교 교장의 입을 통해 전달되거나,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 대장과 수도원의 리더 수도사가 잠시나마 서로를 동정하는 장면, 수도원을 겨냥한 어느 편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머신 건, 알제리 정부군 역시 무자비하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수도사의 꾸짖음 등. 이와 같은 상징적인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수도사들을 사회와 괴리되어 순수한 봉사심으로 살아가는 초인간으로 박제화시키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수도원과 사회를 연결짓고, 그들의 결단과 역사적 속죄에 대해 발언하기 위해 수도사의 인간적 흔들림에 집중한다.

미스터리물처럼 긴장감 넘치는 연출의 힘, 얼굴의 미세한 근육의 떨림만으로도 갈등과 고뇌를 전달하는 노배우들의 열연, 그레고리안 성가의 경건한 아름다움, 풍경과 인물에 대한 시적인 묘사 등등이 어우러져 이 작품은 종교적 고뇌 후의 헌신이 가져다 주는 기쁨을 우아하게 엮어낸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신념으로 가득한 인간의 품위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다가 한밤에 수도원이 울리도록 울부짖으며 신께 답을 갈구하는 수도사, 치즈 한 덩어리의 선물에 기뻐하고 책 한 권이 반입되자 꼭 껴안고 아이처럼 설레하는 수도사, 적들에게는 카리스마를, 마을사람들에게는 사랑을, 서로에게는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말없이 전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곧 불어 닥칠 자신들의 운명을 절감하고 나누는 만찬이다. 말 없이 의사 수사는 포도주 한 병을 가져오고 카세트에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테이프를 끼운다. ‘백조의 호수’ 선율이 수도원을 감싸고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은 그들이 인간으로서 행하는 최고의 사치다. 음악에 몰입되어 미소를 나누다가 감동에 눈물을 흘리며, 그리고는 최후의 결단을 다지는 순간이 얼굴에 스친다. 남자의 늙은 얼굴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 짧은 클라이맥스의 커트 하나하나를 놓치지 말기를….

수도원 리더인 크리스티앙 역을 맡은 눈빛이 아름다운 배우는 랑베르 윌슨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많은 연기상을 거머쥐었는데, 브룩 쉴즈와 소피 마르소의 시대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몹시도 반가울 것이다. <라붐2>에서는 소피 마르소의 첫사랑 소년을 연기했으며, 브룩 쉴즈가 사하라 사막을 남장을 하고 횡단했던 영화 <사하라>에서 파란 눈의 무슬림을 연기했다. 이후 <매트릭스>에서도 열연했다.

침묵의 서언을 한 수도사들이 생활하는 봉쇄 수도원을 다룬 <위대한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가 2010년 초에 한국에서 조용히 흥행을 이어갔었다. 경쟁을 조장하고 빠르게 움직일 것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신과 인간>은 경건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며 삶과 죽음의 의미, 신이라는 존재가 가져다 주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2012년을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 우리 모두가 꼭 감상해야 할 귀한 영화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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