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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잃어가는 아이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잔뜩 흐려진 희뿌연 하늘이 날씨 때문만은 아니고 공해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우울해진다. 어린 시절 자주 보았던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은 이제는 빛바랜 사진속의 추억처럼 되어 버린지 오래다. 이런 상실감을 안고서도 우리는 단풍구경도 가고 가을 소풍도 가면서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를 품어줄 자연은 조화를 잃고 균형이 깨져가고 있지만 모두들 ‘강 건너 불구경’처럼 여길 뿐 회복이나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어린이들의 마음이다. 부조화와 불균형으로 망가진 환경은 고스란히 사람의 정서에도 투영되어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자꾸만 거칠어지고 공격성마저 보이는 어린이들의 삶의 모습은 훼손된 자연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가을은 사랑에 빠진 하느님 얼굴
산천이 일어서네
풀섶의 벌레가 숨어 빚는 가락이
기도가 되는
가을은 나를 안은 유리 항아리
눈을 감아도 하늘 고이네
물이 고이네. (이해인 시/김정식 곡 ‘가을’)

지난 가을 인천의 어느 공부방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을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가을에는 하늘을 자주 바라보면 좋겠어요. 가슴이 환해지고 마음이 넉넉해 지거든요.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본 적 있어요?”
“없어요. 그리구요. 하늘이 파랗지도 않아요.”
“그렇네요. 오늘은 하늘이 흐리지만 그래도 가끔씩 파란 하늘일 때도 있잖아요. 아저씨가 어렸을 때는 파란 하늘일 때가 많았구요. 가을에는 특히 하늘이 높고 파래서 자주 자주 하늘을 올려다 봤거든요. 지금은 공해나 매연으로 인한 오염과 환경파괴로 그런 하늘을 자주 만날 수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 비 개인 후에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면 어린 시절의 하늘을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아요. 여러분도 그럴 때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세요.”

   

“싫어요. 쓸데없이 지겹게 하늘을 왜 쳐다봐요?”
“우리가 함께 불러본 이 노래에서 눈을 감으면 하늘이 고이고 물이 고인다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몰라요.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요.”
“아저씨는 맑고 파란 하늘을 보면 까닭없이 슬퍼져서 눈물이 나던데 여러분은 그런 적 없어요?”
“없어요.”
“그럼. 어떤 때 눈물이 나오나요?”
“짜증 날 때요. 엄마가 때릴 때요.”

이런 대답들을 들으면서 또 슬퍼졌다. 이제 아이들의 가슴속에 ‘「참된 기쁨이나 아련한 슬픔」같은 조화로운 정서는 사라지고 「즐김이나 화 혹은 분노」같은 왜곡된 감정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가끔씩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자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참된 기쁨보다는 즐김만을 생각하는 요즘 아이들에게서 슬픔이라는 정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화나 분노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인간에게 정서의 조화는 생명처럼 소중하다. 조화로운 정서를 잃어가는 아이들에게서 조화로운 미래의 삶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정서적 부조화는 곧바로 가정과 사회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인간에게 조화로운 삶의 터전이 되어주는 자연과 환경보전에 눈길을 돌리는 한 편, 우리 아이들에게 「참된 기쁨이나 아련한 슬픔」같은 조화로운 정서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배려를 다해야 한다. 삶을 투영하는 모든 문화 장르가 다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노래나 음악을 통해서도 그런 노력은 가능하다.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다양한 음악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주변부터 살펴봐야 한다. 강하고 거칠거나 시끄러워서 즐기기 좋은 음악만이 아니라 차분하고 조용하게 나 자신의 내면을 생각하고 조화로운 정서를 간직할 수 있는 음악도 고루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슬픔」이라는 정서를 되돌려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김정식 200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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