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450개나 동시에 건설되고 있는 골프장 때문에 한반도 남쪽에는 곳곳에서 때 아닌‘건설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고, 우리가 잘 누리고 보전하여서 후손들에게 곱게 물려주어야 할 생태가 한꺼번에 망가질 위기 속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할 수 없다고, 그래서 이런 일에는 창조질서보전을 위해 종교단체들이 나서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생태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마침 10월에는 자연의 수호성인인 프란치스꼬 축일(10월 4일)도 있어서 강원도와 전라도에 이어 경상도에 까지 가서 음악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내 가난한 노래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전해지고 또한 어떤 감동을 주었을지를 생각했다. 노래는 논리 보다는 즉흥 쪽에 가까운 장르인데 과연 듣는 이들에게 싱싱한 기쁨으로 느껴졌을까?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할 수 있다면 작은 일에 최선을!’ 이라는 삶의 좌표 때문에 주말을 가족과 떨어져 지냈지만, 예상인원인 4~500 명을 훨씬 넘어 전국 각지에서 경남 고성 산골짜기로 1,400 명이나 모여와서 아름다운 가을 밤 음악회를 잘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 이랑이가 말을 건넨다.

“아빠. 대학가요제 봤어? 대상 팀이 너무 잘 했어. 짱이야. 짱. Rock 과 Hiphop 이 접목되어 신선한 느낌이 있고 그룹 Ex가 연주를 너무 잘 했고 싱어는 최상이야. 예쁜데다 세련된 표정과 훌륭한 매너~. 아뭏튼 너무 멋졌어.”

“그래? 아빠는 못 봤는데 궁금하네.”

대답은 그랬지만 잦은 여행에서 오는 피곤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인 내 생각은 딴 데 가 있어서 건성이었을 뿐 별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또한 요즘의 <대학가요제>라는 것이 말만 <대학가요제>일 뿐 상업가수 등용문과 다를 것이 없어진지 오래이다. 내가 참가해서 「은상」을 받았던 <제2회>대회가 1978 년이니까 따져보면 올해로 <제29회>가 되는 셈이지만, 초창기에 애써 애정을 가지고 대여섯 차례 보았던 기억과 20주년이 되었다고 방송사가 요청하여 잠깐 인터뷰 출연을 했던 기억, 그리고 언젠가 가족과 함께 TV를 보다가 우연히 듣게 된 ‘Trot 와 Rap을 접목해 부른 남성 듀엣의 <사랑의 죄>라는 대상곡’에 딱 한 번 흥미를 느꼈을 뿐 그런 대회가 언제 어디에서 열리는지조차 관심 밖으로 사라진지 오래이다.

요즘 시인 이해인 수녀와 나는 문화를 통한 삶의 영성을 가꾸어 보자는 초청행사를 자주 갖고 있다. 수도자인 시인과 가수 겸 작곡가인 가톨릭 평신자가 함께 어우러진 데는 <수도자가 전해주는 맑은 이야기>와 <시로 만든 노래>가 청중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며, 이러한 든든한 교감을 발판으로 우리는 종교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시종 기쁨으로 출렁이는 삶의 향기를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행사는 종파와 계층 그리고 나이나 학력,성별 등 우리 사회 안에 알게 모르게 스며있는 모든 장벽을 쉽게 허물어 낼 수 있기에 불교나 개신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단체 뿐 만 아니라 학교와 일반 사회단체로 까지 계속 번져가고 있고 삶과 융화되어 새롭게 전해오는 문화의 파급효과는 실로 놀랍다. <시와 노래가 있는 가을 밤>이라는 초청행사를 위해 자주 상경하시는 수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그룹의 노래 들어 보았어요? 우연히 인터넷 검색창에서 발견하고 들어보았는데 대단해요. 가창력도 훌륭하고 노랫말도 신선하고 곡도 경쾌해서 좋더라구요. 제목도「잘 부탁드립니다」라는데 참 신선하지 않아요? 그러니 며칠 사이에 카페회원이 3만이 넘을 수 밖에...”

“그래요? 저는 아직 못 들어 보았는데 우리집 막내 이랑이가 어떻게나 좋다고 칭찬을 하는지 몰라요. 초등학생인데 연주가 주는 감흥은 물론 곡의 장르와 분위기며 가사 내용의 신선함과 가창력, 심지어 무대 매너 까지 분석을 하고 있더라구요. 아이들을 여럿 키우다보니 어쩜 그렇게 다른지 몰라요. 고등학생인 언니 이슬이는 좋은 것은 좋다고 여기고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인데 막내는 그렇지 않다니까요. 그래서 가끔씩은 너무 호들갑스럽다고 언니에게 핀잔을 듣기도 해요.”

“그래요. 사람마다 취향도 다 다르지만 드러내는 반응 또한 다 다르다니까요. 그런 다양성을 인정해야만 문화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거예요.”

집에 돌아와서 이메일을 확인하려고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낮에 나누었던 내용이 떠올라 검색창으로 들어가서 바로 그 노래 「잘 부탁드립니다」를 들어보았다. 대학졸업반인 그녀가 딱 한 번 경험했던 취직시험의 면접에서 떨어진 후에 술 한 잔 마시고 난 심정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적당히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유후~
끝내줬어요 긴장한 탓에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았죠
바보같이...
한 잔 했어요 속상한 마음 조금 달래려고. 나 이뻐요? 히~
기분이 좋아요 앗싸 알딸딸 한게 완전 좋아요 몰라요~

이 정도로 나왔어도 즐겁잖아요
한 번의 실수쯤은 눈감아 줄 수는 없나요
나나나나나나나나 노래나 할까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It's a beautiful day

좀 쌀쌀하네요 차가운 바람이 휙~ 가슴을 쓰네요. 아프게...
걱정은 안 해요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버린거죠
한두 번도 아닌데...
울어도 되나요 가끔은 혼자 펑펑 울고 털고 싶어요 엉엉~
이젠 괜찮아요 딱~ 한 잔만 더 할께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로 나왔어도 즐겁잖아요
한 번의 실수쯤은 눈감아 줄 수는 없나요
나나나나나나나나 노래나 할까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It's a beautiful day

안녕히 계세요 지금까지 제 얘길 들어줘 정말 고마워요
잘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친절한 금자씨」가 연상되었다. 그러나 자꾸 듣고 싶어져 반복해 들으면서 그 노래가 주는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웠다. 꾸밈없는 가사와 내뱉듯이 풀어내는 담담한 기교.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거침없는 자유로움과 천연덕스러운 표정의 자연스러움. 지난 시대의 순수문화를 대변하는 서정성을 과감히 포기한 새 시대의 젊음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통속적 순수함.

그렇다. 유교적 전통문화와 획일화된 사회구조에 억압당한 우리 세대가 극복해 내지 못한 <착한 사람 컴플렉스와 모범학생 콤플렉스>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첨단 정보시대를 향유하며 살아가는 해방된 젊은이의 일면을 그들은 아무런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과감한 일탈과 솔직한 거부 보다는 끝없는 절제와 수용만을 요구 당한 채, 갇혀지고 그래서 닫혀 있는 삶의 순수를 고요하게 전해주는 내 노래와는 선명하게 다르다. 그리고 그 신선한 통속적 순수가 내게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 분명하다.

“이삭아. 이 노래 듣고 있어? 그런데 이런 노래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아도 되는 거니?”

“아빠. 그건 너무 고루한 생각이야. 그런데 그 노래가 이번에 대상을 받은 거야? 나는 처음 듣네. 내 생각에는 노래도 좋구~ 목소리도 좋구~ 기교나 가창력도 뛰어나고. 바로 가수로 나가도 되겠는데.”

“그래? 가수나 다름없지 뭐. 「Ex」라는 그룹으로 계속 활동을 해 왔으니까.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아빠와 생각이 똑 같니? 나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같은 대학생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거든.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좀 보수적이고 고루한 데가 있잖아?”

아무 대답 없이 계속 반복해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몸 장단을 맞추며 하던 일본어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이삭이의 방으로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아침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옛날과 오늘 그리고 내일을 향해 한결같이 쏟아지지만
늘 새롭고 싱싱한 기쁨의 햇살.

/김정식 2007-10-20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