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변영국]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모든 방송은 바야흐로 ‘학교 폭력’ 도배중이다. 가증스럽다. 마치 제 놈들은 아무 잘못 없다는 식의 그 뻔뻔함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가련한 중학생의 죽음마저도 아이템이 되고 마는 방송의 그 존재론적 당위가 구역질난다.

하기야 방송이 무슨 죄가 있나. 방송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당연히 미래에도 대중 추수적 이어야 한다. 국민이 폭력을 좋아하면 방송도 폭력을 미화해야 하고, 국민이 끝없이 이기적이면 방송도 끝없이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1박2일이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구호 중에 이런 게 있다. ‘나만 아니면 돼!!!’ 그 프로그램에 친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복불복 게임에서 나만 안 걸리면 된다는 식의 뭐 그런 찌질한 구호다)

아무튼 우리 국민은 온순하지 않다. 그리고 적잖이 폭력적이다. 또한 우리 국민은 대개의 경우 이타적이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이기적이다. 그래서 방송도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다. 당연히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넘들도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다. 초대 손님들을 데리고 현안을 분석하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했다. 성적이 좋은 녀석들만 인정을 받고 멋진 놈이 되는 세상에서 그렇지 못한 녀석들이 멋진 놈이 되기 위해서는 주먹질이라도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요컨대 작금의 그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이 누구냐 하면 ‘백성’인 것이다.

물론 우리 백성들은 할 말이 많다. 정신 나간 대통령은 재벌만 찰지게 밀어주고 중소기업은 등골을 빼먹는다.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대학 4년 헛다닌 꼴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가해자다.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모든 인간들이 귀신에 들렸다. 중학교부터 입시 지옥이다. 사교육 시장을 정리하기는 커녕 부채질한다. 개쉐이들이다....

노동자 농민 죽어가는 걸 모르고 FTA 통과시키는 거 봐라. 저 쉐이들은 우리와 불구대천의 원수다. 죽여 버리고 싶다... 등등등....

게다가 그 모든 말 보다 훨씬 지당한 말도 있다. 광주에서 죄 없는 국민들을 하염없이 쏴 죽인 전두환이 국가 원로 대접을 받고 있는데 대체 어떤 놈이 제 잘못을 뉘우칠 것인가. 누구에게 죄를 묻는단 말인가...

옳다 옳다... 다 옳다. 나도 충분히 동의하고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런데....
나를 포함하는 이 한심한 인간들아. 어른도 아닌 중학생이, 타살도 아닌 자살을 했단다. 생각을 해보자는 얘기다. 우리가 중학교 때 언감생심 ‘자살’을 생각해 봤었냐는 말이다. 자살이라니. 그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그리고 끝없이 괴로울 것이 분명한 그 짓을 잠깐이라도 떠올려봤었냐 이런 얘기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자살하고 싶어 하는 녀석들도 왕왕 있었을테지.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왕왕’ 그랬던 거지 지금처럼 중학생의 몇 십 퍼센트가 자살을 생각해 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 그럼.... 도대체 왜 그럴까? 간단하다. 그 때의 어른들이 지금의 어른들보다 훨씬 정당했다. 훨씬 인간적이고 훨씬 순수했다. 그래서 그 어른들을 보고 배운 우리들은 최소한 자살을 꿈꾸지는 않아도 되었다. 글쎄 토 달지 말고 내 얘기를 믿기 바란다. 맞는 말이니까.

물론 박정희가 사람들 잡아다가 패 죽이고, 전태일로 설명되는 살인적인 노동조건이 있었고 정치하는 놈들은 도둑놈보다 더해서 막걸리 고무신 선거가 어쩌고저쩌고 했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절어버린 국민들은 개쉐이와 빨갱이를 혼동하기 시작했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한 시대였는지도 모르지.... 허나 거기 까지다. 그 때의 백성들은 제 새끼 귀하면 남의 새끼도 귀한 줄 알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담벼락에서 담배 피우다가 지나가던 어른에게 귓불을 쥐어 잡혀도 낄낄댈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른의 진심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때의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 대하기를 이웃으로 대했다. 그래서 김장철 지나면 어떤 집도 김치가 없거나 반찬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나눠 먹으니까....

이런 제미럴... 교육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명바기가 어떻고 주절거리지 말고 당신부터 르네상스하기 바란다. 온고지신 하고 포스트 디지털 하기 바란다.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의 어쩔 수 없는.... 이런 거 말고 당신 옆집에 사는 사람부터 챙겨야 할 일이다. 웃기지 말라고? 허 참....

정치하자고, 정당을 만들고 국민을 계몽하자고,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없이 꼬드기던 유다의 ‘정당한 정견과 입장’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예수는 그럼 뭔가?

외롭게 스스로의 삶을 마감한 중학생의 명복을 빈다.
뒤늦게라도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너희들이 옳다. 그러니 조금 힘들더라도 제발 죽지는 말아라.....

변영국(토마스 아퀴나스)
서울 수송국민학교를 졸업했으며 희곡 쓰고 연출하는 연극인인 동시에 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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