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의 지방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함께 했던 수녀님은 부산으로 나는 서울로 가는 표를 샀는데 이미 회갑을 지내신지 오래인 연로하신 분이어서 조금이나마 편안히 가시도록 KTX 표를 사드리고, 나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늘 그렇듯이 무궁화 열차표를 샀다. 개찰구를 통과하고 헤어지는 곳에서 수녀님께서 물으신다.

“로제리오는 무궁화를 타고 가는 거야?”

“네. 저녁 강의까지 시간이 많고 특별히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어서요.”

“그래도 대단하다. 오랜 일정에 피곤해서 어서 가 쉬고 싶을 텐데...”
“편한 것에 익숙해지면 불편한 것을 견디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몸이 많이 피곤할 때가 아니라면 조금 힘들어도 견뎌내 보고 싶어요.”
“그래 맞아. 그건 우리 수도자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좋은 모습이야.”
“그렇지만 저 혼자 갈 때 얘기구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는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지요. 그리고 연로하신 분들은 가능하면 빨리 가는 것을 타야할 것 같아요. 지난주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무궁화로 5시간 30분을 탔는데 몸살이 나서 혼났어요. 오늘은 다행히 대구에서 가니 그렇지 않을 거예요.”

객실 안으로 들어서니 절반 이상의 자리가 비어있다. 너나 할 것 없이 편한 것에 길들여진 요즘 사람들 덕분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무궁화는 배차간격이 뜸한데도 자리가 많이 비어있기 일쑤다. 그래도 나는 사람 냄새가 나고 조금은 어수선해서 오히려 정겹다. 자리를 잡고 책을 읽으려다가 떠나올 때 친구가 싸준 구운 식빵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일러서 아직 도시락 장수는 보이지 않았고 간식거리와 음료를 실은 밀차가 지나다녔다. 중간쯤에 앉은 나보다 5~6 줄 앞쪽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빵을 사고 싶어 하셨지만 그 밀차에 빵은 없다고 했다. 먹고 있던 빵을 보니 아직 한 조각이 남아있어서 그분께로 갔다.

“아저씨. 빵이 드시고 싶으신가 본데 빵은 안파네요. 제가 먹다 한 조각이 남았는데 이거라도 드시겠어요?”
“아, 네. 먹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뒤에서 들었는데 마침 제가 빵을 먹고 있었거든요. 저는 이제 충분히 먹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좌석이 어디예요?”
“저 뒤 쪽 42번이예요.”
“꽤 먼 거리인데 참 귀도 밝으시네.”

빵을 다 드신 후 내 앞을 지나 반대쪽으로 다녀오신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바나나우유 2개를 사 들고 오셔서 한 개를 내게 건네주셨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다가오셔서 당신 옆 자리가 비어 심심한데 얘기나 나누자고 청하셨기에 읽던 책을 덮어두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했다.

“많이 배우셨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공부를 많이 했고 종교계에서 일하시는 분 같은데 맞지요?”
“네. 가톨릭 신자이구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 맞다. 왠지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더라니까. 개량한복을 입은 옷차림도 그렇고, 악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순박한 얼굴 표정도 그렇고. ”
“꼭 그렇지 만은 않아요.”
“아니야. 내 눈은 못 속여. 우리 사위가 많이 배웠는데도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 유기농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옷차림과 표정이 비슷하거든. 나도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서 천주교 신자가 되려고 두 번이나 예비자 교리 반에 등록을 했었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더라구요.”

할아버지는 딸과 사위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들의 학력과 직업 뿐 아니라 현재 사는 모습까지 낱낱이 다 얘기해 주셨다. 또한 평생을 군인으로 사시다가 중령으로 예편한 후 아내가 암으로 먼저 가셔서 외롭게 혼자 살아가시는 얘기와 80이 다 되신 요즘에 만나는 애인 얘기 까지 3시간 동안 쉬지 않으셨다. 간간히 담배를 피우기 위해 화장실 가시는 시간을 빼고는.

“아저씨. 80이 넘으셨는데 애인이 있으시다면 그 연세에도 연애가 가능한가요?”
“그럼. 남자는 지푸라기 잡을 힘만 있어도 가능하다니까.”
“그래도 외로우신데 아드님께 가시지 그러세요. 혼자 해 드시는 것도 힘드실 텐데요.”
“아니야. 나 때문에 아들 내외가 힘든 것 보다는 나 혼자 힘든 게 났지.”

하시면서 같은 동년배이신 아버님을 모시고 사는 내게 도움이 될 거라면서 이것저것 도움말도 해 주시고 6.25 사변과 베트남 전 등 군대생활 얘기와 그 와중에 비롯된 당신의 여성편력 무용담(?)까지 숨김없이 아니 다소 과장되어 보일만큼 다 들려주셨다.

‘오늘 참 즐거웠다’고 하시면서 나 보다 한 정거장 앞서 내리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이웃의 소중함을 새삼 간직해 본다. 늘상 외로우셨을 할아버지께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함께 해 드렸고, 그 시간 동안 나 또한 기뻤다는 것을 감사하고 싶다.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사람과 함께 하는 기쁨과 비교할 수는 없다. 가난함이란 이런 것이 아니던가.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섞고 나누며 살아가는 일. 이런 가난함이 그리워서 무궁화 열차와 일반고속버스를 즐겨 탄다.

아직은 기쁜 마음으로 이웃사랑을 노래하면서...

새로운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 하여라
세상 사람들 그것을 보고 서로 사랑하리라 모두 내게 오리라.
주님. 내 이웃의 소박한 웃음에서 당신을 봅니다.
주님. 내 이웃의 말없는 눈물에서 당신을 느낍니다.
주님. 내 이웃의 가난한 기쁨에서 당신을 봅니다.
주님. 내 이웃의 끝없는 슬픔에서 당신을 느낍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계명 따라 서로 사랑합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가진 것을 나누며. (요한복음 13:34~35)

/김정식 2007-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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