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제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닐스 아르덴 오플레브 감독, 2012

동명의 원작이 있는 스웨덴 영화. 저널리스트인 스티크 라르손이 쓴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원작은 몰입도가 높은 미스터리 소설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4부를 쓰는 와중 사망했고, 3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그는 원고지를 출판사에 넘긴 후, 12일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을 스웨덴 인구의 1/3이 보았고, 덴마크에서는 성경보다 더 많이 팔렸으며,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6천 5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 ‘어른들의 <해피 포터>’란 별칭도 있다.

소설은 곧 영화로 만들어져 대단한 성공을 거뒀고, 할리우드에서는 오리지널 판권을 사들여 리메이크했다. 할리우드 판 감독은 데이비드 핀처. <소셜 네트워크>(2010),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세븐>(1995) 등의 영화를 연출한 그는 흥행감독이기도 하지만,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응시하는 날카로운 작가 의식을 가진 대단한 실력파다.

스웨덴 오리지널 버전은 1월 5일,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1월 12일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한다. 두 작품 모두 잔인한 살해 장면과 과격한 성 묘사로 미성년자 관람불가다. 소설 <밀레니엄>을 보고 흥분한 독자들은 두 선택지를 두고 당연히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스톡홀름의 냉기와 지능적인 주인공들의 두뇌싸움을 날 것 그대로 느껴보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버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를 당부 드린다. 할리우드 버전으로 인해 극장에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니까.

우리에게 북유럽의 스웨덴 영화라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스웨덴 영화는 무성영화 시절부터 영화산업이 잘 정착되어 있었고 전쟁을 거치면서 스웨덴 특유의 분위기를 확립해나갔다. 야외에서 촬영된 아름답고 우울한 풍경에, 이야기들은 어둡고 신비로운 스칸디나비아 신화와 문학 전통을 활용했다. 심리적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들은 주관적이고 미묘하다. 스웨덴 출신으로 유명한 감독으로는 <제7의 봉인>(1957), <산딸기>(1957), <페르소나>(1966) 등, 신에 대한 초월적 가치와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잉마르 베리만이 있다. 그는 구원과 믿음이라는 종교적 질문을 통해 인간에 대한 진지한 지적 고찰을 불러 일으키면서 1950-60년대 세계의 지적인 관객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스타이자 뮤즈였던 그레타 가르보가 있고, 연기력과 스타성을 드물게 겸비한 잉그리드 버그만이 있으며, <말괄량이 삐삐>의 고향이 스웨덴이다. 스웨덴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개 같은 내 인생>(1985), 현대의 뱀파이어를 통해 이기적인 인간관계와 사랑의 의미를 파헤치는 공포영화 <렛미인>(2008) 정도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스웨덴 영화다. 음울한 날씨, 스칸디나비아 신화와 전설에서 전수된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 정신적 주제, 그리고 스웨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전통 등으로 인해 여느 스웨덴 영화라도 주제와 재미 면에서 기본은 한다.

‘밀레니엄’이라는 잡지를 운영하면서 어느 유력 기업인의 비리를 파헤치다 기자 생활을 접어야 하는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헨리크 방예르라는 거물 사업가로부터 1966년에 일어난 조카딸 해러어트의 실종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헨리크는 권력을 위해서는 똘똘 뭉쳤으나 서로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방예르 가문의 한 사람이 살해범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방예르 집안을 파헤치던 미카엘은 천재 해커이고 반사회적 기질이 농후한 보안회사 직원인 살란데르와 팀을 이룬다.

영화는 두 가지 주요 플롯으로 전개된다. 해리어트 사건이 한 축으로, 2차 대전 시기 방예르 형제들이 나치 친위대로 활동한 경력이 밝혀지고, 유대인 혐오와 여성혐오가 복잡하게 얽혀진 역사적 사건들이 낡은 흑백사진들을 단서로 촘촘히 엮인다. 또 다른 한 축은 살란데르다. 이 젊은 여성은 <밀레니엄> 시리즈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 역할을 하는데, 그녀가 엄청난 능력을 보유하면서도 반사회적이고 불안한 이유가 그녀의 꿈 장면을 통해 하나씩 드러난다. 물론 1부에서는 아주 조금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얼굴 곳곳의 피어싱과 온 몸의 용 문신, 검은 가죽 옷으로 칭칭 싼 고스족인 그녀는 끔찍한 과거를 지니고 있고 현재 보호 감찰 중인 것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분노와 상처로 가득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을 몸에 지닌듯하다.

이 영화는 네오인종주의가 확장되고 있는 북유럽 현대 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역사를 끌고 들어와 날카롭게 비판한다. 기독교 광신으로 가장하여 인종적 살해를 서슴지 않은 나치주의자이자 남성우월주의자 살인자들은 권력을 가진 대단한 백인가문의 일원이다.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을 천재적인 추리력으로 풀어내는 살란데르, 그녀를 이끄는 추동력은 냉철한 논리와 함께 분노다. 모녀가 겪은 성적인 치욕과 어린 시절의 범죄에 대한 기억은 하층민이자 아웃사이더인 그녀를 더욱 폭발하게 한다.

성적으로 농락하는 보호자 정치인에 대한 보복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지만,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던 약자가 두뇌 하나로 스스로 거미줄을 깨고 나오는 장면은 통쾌하기 그지 없다. 세상의 끔찍함을 생각한다면 영화의 잔혹한 장면은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그녀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주거나 대사로 뭔가 설명하지 않아도, 강렬한 정서적 에너지와 불안한 기운이 그녀의 캐릭터 그 자체가 된다. 법과 질서로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의 울분은 살란데르를 통해 해방감으로 바뀌고, 게다가 사랑과 육체적 본능의 선택에 있어서 거침없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여성으로서 완벽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복잡하고 치밀한 플롯의 추리극은 미국 드라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형식이지만, 이 영화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여성 영웅에 있다. 여성은 사악하고 비밀스럽지만 성적으로 매력적인 팜므파탈이라는 조연이 아니다. 이 여성은 추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늘 해내고, 위기에 빠진 남자 주인공을 결정적으로 도와주며, 허술하게 자신의 감정을 흘리지 않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가졌다. 거기에서 100%의 카타르시스와 매혹을 느낀다. 자, 영화의 제목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고, 그 증오 때문에 피해자가 된 여성은 전능한 처벌자가 된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똑같이 되갚아주는 방식은, 정당성을 떠나서 통쾌하다. 이건 현실에 대한 역설일 것이다.

살란데르 역을 맡은 매력적인 배우 노미 라파스는 할리우드로 스카우트 되어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에서 집시 역할을 한다. 표정 변화 없는 연기가 오히려 신뢰감을 주는 미카엘 역의 미카엘 니키비스트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톰 크루즈의 상대역인 과격한 테러리스트 역을 맡았다. 이 매력적인 스웨덴 배우들의 할리우드 영화, 같은 소설을 다른 분위기로 전하는 스웨덴 <밀레니엄>과 할리우드 <밀레니엄>은 모두 이번 극장가에서 볼만하고 생각해 볼만한 영화들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EBS 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동국대, 숭실대 출강 중.
쉽게 정보가 눈에 뜨이지 않는 영화들 추천을 통해
영화로 닥치고 소통하는 명랑한 공동체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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