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마음의 상처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내가 한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숨져가는 흰 물새를 다시 노래하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Emilly Dickinson 의 시를 번안해 김정식이 곡을 부친 <내가 할 수 있다면>)


13 살 때,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비가 오고 나서 맑게 개인 봄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교실 뒤 아카시아 숲으로 갔다.

그 시절에는 자주 그곳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바로 옆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골라 읽었다. 거의 책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몰입하여 읽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지러지듯 울어대는 꾀꼬리 새끼의 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지만 잘 날 수 없어 파닥이는 어린 새를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문득 새끼가 바라보는 나무 위를 보니 어미새가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애원하듯 울어대는 새끼를 보며 함께 울어댈 뿐 조금도 안 돌봐주는 어미가 괘씸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어쩌면 성격이 나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질 무렵 새끼 꾀꼬리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끊임없이 울어대는 애기새를 달래느라고 작은 숟가락으로 물을 줘 보기도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는 밥알을 입에 넣어주기도 했지만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곱고 부드러운 솜을 깔아주고 덮어도 주었지만, 새벽녘에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나서 마당가에 핀 봉숭아 꽃 밑에 묻어주고 나무십자가도 세워주었으며 간간히 오가면서 잠깐씩 기도까지 했는데도 한 번 숨진 꾀꼬리는 다시는 살아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얘야. 아마도 그 어미새가 아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사람이 나타나니 나무 위로 피해 새끼 곁으로 갈 수가 없었겠구나. 너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린 새를 돕겠다고 데려온 것이 어미에게서 떼어온 것이 되었으며, 새를 살리려고 애쓴 것이 오히려 새를 죽게 만든 셈이다. 모르고 한 일이니 괜찮지만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일이 '돕는 일인지 해를 끼치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죽이는 일인지'를 지혜롭게 잘 생각해 보거라. 어머니의 이 말씀은 가늘고 여린 숨을 쉬며 죽어간 어린 새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함께 내 가슴 깊이 새겨져서 훗날 참 삶을 살아가는 좌표가 되어주었다.

환경운동과 인권회복운동 등 사회운동에 관한 일 뿐만 아니라 크건 작건 일상적인 삶의 모든 곳에서 이 기억은 나와 함께 살아있다. 아니 그 기억을 살아내고 싶다. 내 삶이 헛되지 않도록...

2007년 7월 1일 장마 비가 그친 일요일 아침, 뜰 안에 가득한 새소리를 들으며

*내 안의 평화를 이루어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이루고자하는 ‘생명평화결사’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생명평화등불》8호 (2007년 7-8월호, 7월 15일 발간예정)에 실릴 글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을 내용에 맞게 쓴 것입니다.

*원고청탁을 해 오신 <생명평화>의 윤민상 님께서 보내오신 글입니다.
좋은 노래와 글,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 등불지에 딱 어울리는 꼭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생명평화결사 청년모임 자람에서 제주도로 청년순례를 떠나게 되서 그 일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실 그 일이 일 아닌 일이 되어서 마음에 부담이 커지고 있는 차였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글을 보고 용기와 힘이 났지요.
특히 선생님께서 새를 구하는 그 대목이 정말 마음에 남더군요~
어머니 말씀도 말씀이지만..

작년에 청년 자람에서 우포늪에 갔다가 정말로 죽음 직전에 새를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렇게 지나갔던 일이 선생님의 글을 보고 다시 떠오르게 되고,
제가 자람 청년순례를 준비 하면서 들었던 마음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아직 돕는 일은지 해를 끼치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 죽이는 일인지 정말 확신할 수 있는 그릇은 못 되지만..
그래도 내 길을 믿고 굳굳하게 나가는 의지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을 가면서 선생님 말씀을 잘 새기고 음미하면서 갈 수 있도록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유정란을 생산하는 친구 이재휘(시메온) 님의 댓글입니다.
하는 일이 상대에게 참으로 도움이 되는지 늘 세심하게 살피는 것,모든 일에서 필요하지.
자식키우기나 가정생활이나 닭키우는 일등 모든 일상생활에서.


/김정식 200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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