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이 땅의 자화상 둘

2006년 6월 13일.

이 날이 그토록 특별한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끼를 갖은 9년생 마르티스견 혈통의 잡종 꽃님이를 살펴보고, 그간 바빠서 눈길을 주지 못한 집안 여기저기를 치우고 정리하다가, 마당 가득히 피어난 꽃들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누가 그랬던가? 꽃멀미가 나서 어지럽다고... 산 아랫자락에 사는 덕으로 매년 새롭게 날아와 저절로 핀 온갖 야생화에다, 아내와 함께 번갈아 가면서 가져다 심어 놓은 풀꽃들, 그리고 이사 오기 전부터 원래 있었던 색색으로 아름다운 영산홍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꽃잔치다. 그중 압권은 단연 둥글레꽃과 산나리꽃이다. 이사 온 다음 해인 3년 전 이른 봄. 당시 인권회복과 환경보전을 위한 전국순회공연으로 지칠대로 지친 내게 갑자기 찾아온 탈기(奪氣)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작했던 암벽등반 중에 도봉산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함께 간 동료들이 ‘둥글레는 옮겨 심어서 살아날 확률이 거의 없다’ 고 말렸지만, 이파리의 고고함에 취해 서너 뿌리 쯤 캐어다 마당가에 심어놓고 잊어버렸는데 올 봄에 꽃이 핀 것이다. 줄기가 딱 하나에 넓은 이파리가 죽 피어나고, 그 이파리가 시작되는 곳마다 하얀 꽃들이 달려있어서 그윽한 향기는 물론 고고한 자태가 어떤 난과 비겨도 지지 않는 둥글레꽃. 내일 아침에는 사진이라도 한 방 찍어서 친구들에게 꽃잔치 소식을 전하기로 하고 거실에 앉아 몽골의 고(古)음악을 틀어놓고서 요즘 열중하고 있는 <공간문화>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도 잊은 채 이 새로운 분야의 공부에 흠뻑 빠져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새만금 갯벌 살리기 천주교모임>을 어렵게 함께 하면서 동지애가 돈독해진 장 선생이다.

“김 선생님. 요즘 바쁘세요?”
“아뇨. 오늘과 내일 오전은 특별한 일이 없는데요.”
“그러시면 청와대 앞으로 좀 오실래요? 문정현 신부님께서 단식 8일째이신데 기력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힘들어 보이네요. 기타 가지고 오셔서 노래로 위로 좀 해 드리세요.”
“그렇게 할께요. 가야할 곳 위치를 휴대전화 문자로 넣어주세요.”

기타와 읽던 책을 포함하여 몇 가지 물건을 챙겨들고 지체없이 집을 나섰다. 그때서야 시장기를 느꼈지만 단식을 하는 분께 위로를 드리러 가는 마당에 한 두 끼쯤 거르고 가는 것이 예의라 여겨졌고, 아침에 떡국이라도 먹어 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전철역으로 향한 시각이 오후 3시였다. 책 몇 줄 읽은 것 같은데 벌써 광화문 역이다. 책에서 눈을 뗀 나는 그제서야 전철 안 풍경을 확인하고 지금 내가 어느 나라와 와 있는지를 따져보았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새로운 신화가 창조된다’ 는 월드컵 본선 우리나라 첫 경기가 열리는 날이고, 시내 광화문 광장과 상암 월드켭 경기장을 비롯한 전국의 여러 곳에서 합동 응원전이 펼쳐지는 날이다. 칸칸마다 가득한 젊은이들의 옷차림새는 온통 일색으로 말 그대로 『붉은악마』를 연출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굵은 주름을 넣은 짧은 치마와 세일러복 스타일의 셔츠인데 함께 맞춘 것인지 아니면 그런 컨셉으로 상품이 나와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 똑 같거나 비슷한 옷차림을 한 젊은이들이 가득한 전철 안은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전광판이 좀 더 잘 보이는 데서 관전을 하기위해 무려 7시간 전부터 거리로 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다.

광화문 역에서 내려 청와대까지는 족히 20분은 걸어야 한다. 5~6 미터 간격으로 두 명씩 짝을 지어 서있는 전경들에게 길을 묻다가 옆을 보니 FTA협상 결사반대와 미군철수를 지지하는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이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축구 응원을 하는 곳인데 충돌은 없을 것인지 걱정을 뒤로하고 효자동 길로 들어서자 청와대가 가까워서인지 사복경찰들의 검문이 시작되었다.

“어디 가시는 거지요?”
“청와대 분수대 옆에 가는데요.”
“무슨 일로 가시는데요?”
“친구들과 약속을 했어요.”
“혹시 문신부님 계신 곳으로 가시는 것은 아니지요?”
“문신부님이 누구예요? 저는 여기 가는 건데요.” 하면서 ‘청와대 분수 앞 효자동 사랑방 안쪽으로’ 라고 휴대전화에 찍힌 문자메세지를 보여주었다.
“아, 친구들 만나러 가시는 군요. 혹시 이라크 문제 관련된 분은 아니시지요? 가방 안엔 뭐가 들어있나요? 저희가 큰 가방은 열어서 확인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제서야 케이스가 너무 무거워서 가벼운 비닐 가방에 구겨 넣듯이 담아 들고 온 기타의 우스꽝스러운 꼴이 눈에 들어왔다.

“예. 기타니까 확인해 보세요.”
“작은 가방 안에는 뭐지요?”
“제가 보고 있는 책 이예요.”
“<공간문화의 정치학>? 성공회대 다니시나 봐요.”

매번 책을 사는 것이 부담되어 아들에게 부탁하여 빌린 책이라서 겉표지에 학교도서관 표시가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50대 아저씨를 대학생으로?

“학생은 아니구요.”
“아, 그러면 교수님이시군요? 친구 분들과는 무슨 일로 만나시는 거예요?”
“이곳에서 만나 광화문으로 가 축구응원을 하면서 기타치고 노래하며 놀기로 했어요.”
“예.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거짓말도 이만하면 수준급이지만 천연덕스러움에 스스로 감탄을 하면서, 효자동 사랑방이라고 현판이 적혀있는 관광객들을 위한 청와대 홍보관 같은 곳 뒤로 가니 신부님께서 긴 의자에 반듯이 누워 계신다. 「평화와 생명의 지킴이-길 위에 신부님」은 너무나 긴 싸움에 지쳐 있었지만 눈빛만은 청정하게 살아있었다. 유난히 노래를 좋아하는 신부님께 고요한 노래 몇 곡을 불러드리자 무척 좋아하시면서 노래의 선율과 가사내용을 따라 때로 어린 시절로 때로 희망 있는 내일로 마음의 여행을 하시는 동안, 길 위에서 그을린 구릿빛 지친 얼굴에 평화로운 웃음이 번져난다. 기운을 차린 신부님께 최근 노르웨이 출신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 박사의 강의 내용인 ‘2020년 안에 미 제국주의의 필연적인 붕괴’ 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희망을 잃지 말고 오래 사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2020년이면 14년 남았어? 잘 하면 살아서 볼 수도 있겠네.”
“그럼요. 미국 사람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미합중국이 소련처럼 붕괴하는 것이구요. 많은 미국인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보복이 예상되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평화가 찾아오고, 미국 또한 혜택을 볼 거라면서 이런 사실을 인터넷 싸이트를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 시민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까지 했어요. 미합중국이라는 거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벌인 전쟁이 240번, 지구촌에 그들의 군사기지가 있는곳이 140개국이래요. 그것도 부족해서 욕심 없이 평화롭게 농사짓고 사는 평택 대추리 도두리 노인네들을 하루 아침에 몰아내고 자기네들 맘대로 군사기지 철조망을 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리고 그런 일에 반대는 못 할망정 앞장서서 앞잡이 노릇을 하는 우리 정부는 또 뭡니까. 농사 밖에 모르는 분들에게 한 마디 양해도 없이 그저 국가 결정에 의한 통보만으로 강제 집행이 말이나 되느냐구요. 아니 왜 제가 이렇게 흥분을 하지요? 친구들하고 축구 응원하러 간다는 사람이... ”

우리는 함께 웃으며 다시 노래를 불렀다. 시공을 초월하여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 퍼져나가는 노래 소리에 함께 한 모든 분들이 잠시 시름을 잊는다.

다섯 시간여 함께 하는 동안 세 차례의 위로공연을 끝내고 다시 삼청동쪽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 누이들을 찾아갔다. 그야말로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매연을 향기 삼아 묵언 단식을 하고 있다. ‘이 방법 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누이들에게 노래와 내 특유의 익살로 위로를 드렸는데, 너무 웃어서 뱃살이 땡겨 더 배가 고프다는 누이들에게 내일 또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귀가 길을 서둘렀다. 정말 배가 너무 고프다. 한 끼 걸러서 다음 끼가 되니 이 정도인데 이미 8일 째인 신부님과 누이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장 선생이 가게에서 사 준 건빵을 씹으면서 자꾸만 자꾸만 목이 메여왔다. 어떤 음료로도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은 기막힌 목 메임. 얌전히 신부 노릇 잘 하고 계시면 얼마나 신자들에게 대접 잘 받고 한없이 존경 받으며 살 수 있을 텐데, 도대체 뭐가 부족하여 길 위에서 한 평생을 살아야 했을까? 의식 없는 신자들의 빨갱이 소동은 그렇다 치고 동료 사제들이나 교회 내 고위성직자들의 철저한 외면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땅 위에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며 천대받는 이웃들이 있고, 그 이웃들의 아픔이 십자가 위에서 겪은 예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이 당하는 수모와 멸시를 같이 당하겠다는 신부님의 거룩한 삶의 모습이 고통 받는 히브리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임마누엘 하느님의 강생(降生)내용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다시 노래나 한 줄 불러보자. 길바닥이면 어떤가.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느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계실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하느님.

70년대에서 80년대의 기막힌 아픔의 시대를 지내오면서 우리가 가슴 찢는 마음으로 불러대었던 그 노래가 이미 21세기인 오늘까지 내 가슴에 젖어올 줄은 정말 몰랐다.

15분을 걸어 광화문 역에 닿으니 9시 40분이다. 이제 20분만 있으면 온 국민을 열광과 흥분 아니 광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줄 월드컵 원정 첫 승 후보경기가 벌어진다. 거리는 이미 축제와 다름이 없다. 8개 출구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넘쳐나 출구폐쇄 방송이 나온지 오래인데 왠 일인지 벌써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맥없이 늘어져 돌아가는 초딩을 붙잡고 물어보니, 각종 응원 도구를 손에 들고 좋은 자리 찾아 다니다가 벌써 지쳐서 아예 포기를 하고 집에 간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들도 나처럼 경기 자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서로 모양새는 다르겠지만. 지금 집으로 출발하면 이미 전반전은 끝나 있을 테니까. 문득 오늘 광화문에 응원가겠다던 우리 집 둘째 이슬이가 생각나 찾아보기로 했다. 이럴 때는 휴대전화 문자가 그만이다.

“이슬아. 어디 있니?”
“친구 다섯과 함께 광화문 역 7번 출구 근처에 있어.”
“배고플테니 만두를 사다 주고 갈께 기다려.”
만두 3인분을 포장해 들고 8번 출구에서 7번 출구까지 가기위해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며 30분 사투 끝에 얻은 것은 지친 몸과 끊어진 가방 끈 그리고 뭉개진 만두 세 판이다.
“이슬아. 만두를 샀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어 포기하고 집으로 간다. 배고프지 않니?”
“아빠 괜찮아. 집에 가서 이랑이 먹으라고 해. 안녕.”

나랑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단식도 아닌데 끼니를 굶어가며 좋은 자리에 않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를 하고 있는 고딩이들을 위해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무엇이나 하고 싶었다. 그들이 지금 배가 고프지 않은가.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농사가 짓고 싶은 사람에게는 땅을 주는 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이다. 그것도 누가 남의 땅을 달라 하는가? 내 땅에서 내가 살고 내 땅을 일구어 내 맘대로 농사를 짓게 놔 두어 달라는데 왜 폭력과 무력으로 못 하게 하고 내 쫒으려 하는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다시 노래나 하나 불러보자. 월드컵 응원가가 아니면 어떤가.

내가 한 마음의 상처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내가 한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숨져가는 흰 물새를 다시 노래하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김정식 번안)

이 땅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권이 유린된 채 아프고 힘들다가 때로 죽어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기 위해, 그분들이 다시 한 번 땅을 갈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길 위에서 한 평생을 바친 문정현 신부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신부님의 거룩한 임마누엘 하느님 신앙에 동참한 누이들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분들에게 노래 한 소절 들려드리기 위해 두 끼를 굶은 나의 삶도 결코 헛되지 않다.
복되어라. 하느님의 사람들이여 - . 에라, 내친 김에 노래 한 곡 더 불러보자.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모두가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 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

오늘 하루에만 네 번째 부르는 이 노래를 따라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광화문 네거리인가?
아니면 청와대 분수 앞 효자동 사랑방 뒤 켠 - 길 위의 의자 곁인가?
(2006년 6월 13일)
/김정식 20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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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교포사목을 하고 계시는 어느 사제께서 보내오신 편지글을 본인의 허락없이 옮겼기에 글쓴이를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글의 내용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여겨져 여기에 옮깁니다.

 

 

+ 찬미예수님!


로제리오 형제님!

보내준 글 <우리가 걸어갈 길은?> 아주 아주 공감하면서 특히나 생명과 평화를 위해 당신을 매일처럼 산 제물로 봉헌하고 계신 문신부님을 영적으로 내적으로 풍요롭게 해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어쩌면 음악과 유머를 통해 지친 사람들 안에 영적인 샘을 다시 감지하게 함은 로제리오 형제님만이 갖은 독특한 탈렌트가 아닌가 여깁니다. 이 번만이 아니지요. 여러 번 그런 기회들을 보고 들음에서 감지한 저의 소견이랍니다.


사제가 자신 안에 비춰진 진리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간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길인지를 가면 갈수록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에 오늘처럼 길에서 곧은 대나무로 우뚝 서 계신 문신부님의 모습을 그리는 순간 참으로 저 개인적으로 그런 분을 알고, 뵙고 그런 분 곁에 있음이 얼마나 복된 순간인지를 ... 한편으로 이렇게 마음만으로 함께 할 수밖에 없음에 신부님과 자매들에게 죄송하기도 하지요.


그분들의 단식 외침이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고 힘없는 외침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저 거대한 합중국(전 개인적으로 미국이라 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솔직히 그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라고 미화하여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고 보지요. 그래서 굳이 부른다면 합중국 혹은 그냥 US로 부르고 싶어요)의 팽배해진 동물적 근성을, 마치도 부푼 고무풍선에 가느다란 핀을 꽂듯 근원적으로 터지게 하는 힘이 됨을 누구도 모를 것으로 보입니다. 본디 어떤 집단이나 단체라도 팽배한 욕심을 터트리게 하는 데는 큰 손길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저 힘없이 보인 몇 사람! 그분들의 날카로운 정의의 날! 그것이면 족했습니다. 오늘 저는 합중국도 결국 그런 전철을 밟으리라 여깁니다.

 

그런데 로제리오형제가 소개한 노르웨이 평화학자 갈퉁 박사의 예견처럼 "2020년 안에 그들의 필연적인 붕괴"가 있다니, 이런 저의 생각도 돌발적인 사고가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아무튼요. 역사의 교훈은 어디서나 늘 그래왔지요. 그런데 그런 교훈이 선명함에도 그들 스스로는 절대 그런 교훈의 틀에 들지 않으리라 여기는 것이 또한 그들의 한계가 아닐까요? 우습지요? 이런 그들은 마치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안 죽는다’ 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자들일 수 있으니... 도리어 갈퉁 박사의 주장에 대해 어쩌면 그들이 미친 소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런 예견이 미친 사람들의 지론인지 아닌지는 그때 가보면 알겠지요? 그리고 만일 그게 미친 사고가 아니라면 전 그런 전철에 문신부님과 자매들의 오늘 이 기도와 침묵의 외침이 분명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에게 영적 내적 힘을 불어 넣어준 로제리오씨의 활동도 빼 놓을 수 없는 역할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 개인적으로 로제리오씨의 위로의 음악회가 앞으로도 얼마나 요긴할지 참고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처럼 언제든 평소의 지론대로 영적 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다가서는 로제리오 형제님의 특별한 탈란트에 새삼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주님과 형제님께요. 때로 그런 선물을 받았지만 자신을 고려하다 미처 그런 선물을 써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로제리오씨는 전혀 아니거든요. 어쩌면 이 시대에 평신도로써 또 다른 예언 직무자라고나 할까요? 살아 숨쉬는 직무자 말입니다.


말씀하신 내용 중에 문신부님에 대한 한국교회의 고위성직자를 비롯한 동료 신부들의 무관심을 넘어서서 오히려 질타가 있음에 대해 아픈 맘을 보이셨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 그래서 어쩌면 로제리오 형제님 같은 분을 대신 보내 주셨다고도 생각 합니다. 왜 그런 내용 있잖아요? 영화 『sound of music』에서 수녀원을 떠나는 메리 지원자에게 원장수녀님께서 하신 말씀.  "하느님께서 자매 앞에 문을 닫으셨지만 저 창문은 열어 놓으셨다"고요. 같은 맥락으로 신부님들이 문신부님께는 그렇듯 문을 닫았지만, 로제리오 형제님이나 다른 동지들을 통해 창문을 열어 놓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언젠가 하느님 앞에  가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왜들 그랬는지요. 지금은 그저 그러려니 합니다. 한 땐 저 개인도 로제리오 형제님처럼 그런 면에 불만이 많았지요. 지금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불만보다 각자 자신들의 소신이 있기에 그러리라 생각하지요. 마치 문신부님께서 평생을 거리에서 약자 빈자들과 생을 함께 하시면서 사신 소신이 있으시듯, 그분들도 그분들의 소임지에서 그것이 성소의 길에 충실함이라 여기며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 다른 소신 때문이라 생각하고 싶어요. 이 점은 이 정도에서 마치지요.


다시 한번 가슴에 젖어드는 글과 특히나 문신부님의 근황을 잘 알려주신 소식 주심에 감사 드리며 모쪼록 주님 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기원드리는 맘으로 강복을 보내 드립니다.

내내 건강도 잘 돌보시면서 생활 하세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소식 드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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