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9월 14일자 2615호 <가톨릭신문>과 986호 <평화신문>이다.


‣ 득점과 연결되는 안타이길 바란다.

5월에 시작한 <가톨릭신문>의 기획취재인 ‘커버스토리’가 연속으로 좋은 취재를 하고 있다. 한국천주교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되어가는 문제를 찾아내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그동안 커버스토리는 5월 ‘한국교회 가난한가?’를 시작으로 6월 ‘신앙과 점(占)’, 8월 ‘고해성사’에 이어 이번에는 ‘성사혼’ 즉 혼배성사를 둘러싼 한국천주교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점을 지면 위로 올렸다. 한 달에 한 번꼴인 커버스토리가 기다려진다는 말은 지난 비평에서도 한 바 있다. 특별히 이번 보도와 전후하여 <한겨레21>이란 일반 주간지의 특집 역시 공교롭게도 ‘주례사는 가라’는 표지이야기가 실려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종교적, 사회적 관습과 의미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가톨릭신문>은 1면에서‘성사혼’이 교회가 바라는 대로(?)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과 그 원인 및 대책을 전하며 교회결혼식을 둘러싼 각종 폐해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전했다. 그리고 9면에서는 2030세대의 결혼관, 10면에서는 혼배미사의 환경적 미비점과 가톨릭교회의 혼인 의미와 혼인 절차를, 11면은 성사혼을 위한 사목적 제언과 혼인강좌 현황을 전하였다. 그리고 4면의 사설 역시 다시 한 번 이번 특집의 의도를 빠뜨리지 않고 재강조 하였다.

‘혼배성사’를 교계신문이 단순한 호교론적인 의미로 뻔(?)하게 접근하지 않고 문제점들을 제시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특별히 사설의 말미에서 지적한 “과다한 비용과 부대서비스 이용강요 등은 교회에서 혼례를 치르는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 사목서비스 차원에서라도 본당들이 최소한의 비용을 받거나 혹은 무상 제공까지 고려해 볼만하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며 공감한다. 또한 양가의 하객을 모시고 혼배성사를 치르기에는 부족한 시설의 선교본당 ‧ 임시성전 ‧ 상가에 위치한 성당 등을 본당으로 한 신자들의 다양한 고충을 이웃본당들이 지혜롭게 풀 수 있는 방법 역시 필요한 것이다.

<가톨릭신문>의 특집으로 인한 문제제기가 한국천주교회 구성원들의 실제 개선에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안타수보다 중요한 것은 득점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치열한 취재와 후속보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교회의 필요성에 대하여 서양인들이 냉소적으로 말하는 세례 받고, 결혼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필수(?)의식에 보다 교회구성원들이 진정성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마저 혼배를 제외한 두 가지로 줄어들지 모를 일이다.

 

평화신문 985호 5면


‣ 열린사회를 위한 가톨릭문화강좌는 10년도 넘었다.

<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 동서울지역이 주최하고 명례방포럼이 주관하는 ‘열린사회를 위한 가톨릭문화강좌’ 소식을 지난 985호의 5면에 전한바 있다. 그 강좌의 후원은 같은 날짜 2면 광고를 참조하면 평화방송 ‧ 평화신문 ‧ 명례방포럼 후원회이다. 서울이 아닌 지역 교구민의 입장에서 제일 아쉬운 것은 이런 유의 강좌가 서울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물적 ‧ 인적 인프라가 아마도 적지 않은 요인이 작용할 것이다. 이와 그리 멀지않은 관련기사가 986호에도 실렸다. <평화신문>은 8면 박스기사를 통해 그 강좌가 열리는 서울 역삼동본당 조군호 신부의 ‘종교간 평화’ 특강의 요약을 전하며 이 특강은 “오는 24일부터 열리는 ‘열린사회를 위한 가톨릭문화강좌’와 같은 맥락”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런 ‘가톨릭문화강좌’는 그동안 여기저기서 간간히 주최하였다. 그러나 꾸준히 이런 일을 해온 단체도 없지 않다. 얼마 전 9월 9일자 우리신학연구소 발행의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에는 이런 일을 10년 이상 해 온 신앙인아카데미의 사무국장이 서울주보의 푸대접에 대하여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신설된 단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단체가 처음 하는 교육 강좌도 아닌 10년을 어렵지만 하루같이 이어온 ‘열린사회를 위한 가톨릭문화강좌’에 대한 몰이해는 아쉬움을 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성당이 주관하면 공신력 있고, 평신도단체가 주관하면 믿을 수 없다는 것인가? 신앙인아카데미가 주최하는 강좌에 대한 홍보를 요청받은 서울주보 관계자는 모임의 성격, 교육을 진행한 강사 명단과 강사의 현재 업무에 대한 내용과 지도신부 등에 관한 것을 단체에게 요청하여 순수 평신도단체인 그들의 강좌에 대하여 홍보가 불가능하다고 통보를 하였다는 내용이다.

성직자와 평신도, 제도교회와 현장교회, 보수신학과 진보신학, 남과 여, 어른과 아이가 함께 사는 세상이다. 어느 한쪽만을 고수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교계신문은 주위를 조금 더 포용력 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취지로 강좌를 여는 것이 뉴스 가치가 있다면, 결코 그것과 다르지 않은 취지로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인문강좌를 열고 있는 이들을 격려하는 것과 홍보해 주는 것 또한 언론의 소중한 몫일 것이다. 교계신문의 밝은 눈을 바란다.

/김유철 200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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