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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번의 눈물, 1000번의 희망'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번째 맞아
과거의 성찰과 청산없이 미래도 없다

   

“전쟁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정확히 19년 11개월 6일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길에서 외친 말들이다.

지난 1992년 1월 8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 윤미향 이하 정대협) 회원 30여명이 모여 “일본 정부는 정신대 희생자들 위령비를 건립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친 것으로 시작된 수요집회는 이듬해인 1993년 2월부터 매 주 수요일 12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일본군 위안부’라는 멍에를 쓴 채, 일주일에 한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해온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았다.

   

12월 14일 수요일 12시, 1000번 째 ‘수요 집회’는 어느 때보다 성황을 이뤘다. 평소 50명 안팎으로 참여하던 것과는 달리 100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할머니들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이번 수요집회는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 28개 도시에서 1인 시위, 기자회견, 거리행진 등으로 동시에 열렸다.

정대협 측은 이날 집회에 앞서 일본대사관 앞 거리를 ‘평화로’라고 이름 짓는 캠페인을 벌이고, 14일 오전 이 평화로에 ‘평화비’를 설치했다.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피해자들의 모습이기도 했을, 한복을 입은 소녀의 모습을 한 평화비는 올해 초부터 정대협이 시민모금을 통해 제작을 해왔고 조각가 김운성, 김서경 씨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평화비 설치를 앞두고 일본 정부는 ‘외교적 문제’를 운운하며 우리 정부에 설치를 막아줄 것을 요청했고, 지난 8일에는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이 "평화비 설치가 한일 외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선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설치를 중단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정대협은 예정대로 평화비 제막식을 강행했다.

   
▲ 수요집회에서 제막식을 가진 '평화비'. 평화비는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꿈 많았던 소녀시절 할머니들의 모습을 닮은 채로 평화를 꿈꾼다.

배우 권해효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수요집회에는 정대협 회원,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회원, 일반 시민 등 500여명이 모였고 특히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참여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권해효 씨는 “이날이 기쁜 날인지, 슬픈 날인지, 답답한 날인지, 어떤 날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부끄러운 역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이 길에서 세월을 보낸 할머니들을 위해 모인 이 자리가 뜨겁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감회를 밝히며, 이날은 1000회를 기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더 이상 수요집회가 없는 날을 위해 함께 연대하는 날이라고 전했다.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는 “이 1000회 집회는 완성도 끝도 아니다. 우리는 다음 주에 1001차를 다시 시작할 것이며 가야할 길이 멀다”고 하면서, “전 세계가 함께 정의 실현을 위한 목소리 함께 내고 있다.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함께 해야 하고, 지금까지의 길은 두꺼운 벽이고 아득했지만 우리 앞에 희망이 열리고 있다. 세계에서 전쟁과 군국주의를 꿈꾸는 이들에게 강한 경고가 되는 운동을 이곳에서 완성시켜 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 이전부터 수요 집회에 참여해왔던 운청고 학생들은 "우리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란다.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초등학생 86%, 중학생 63%가 위안부에 대해 모른다고 한다"고 전하면서, "오늘 모인 이들이 잠깐의 관심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갖고 할머니들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기를, 이 자리에서 20년간 흘린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조속한 해결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수요집회에는 많은 청소년들도 동참해왔다.이날 역시 가장 많은 참여율을 기록한 것은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었다.

또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명숙 전 총리,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은 과거의 역사는 미래를 규정하며,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또 이러한 일이 반복 될 것이라고 전하면서,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1965년 위안부 피해 배상을 팔아넘긴 한일 청구권 협상을 전면 재협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어 정기 수요집회 참가자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서에서는 “진실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그 진실조차 부인하는 망언과 계속되는 발뺌을 일삼는 일본 정부의 작태는 피해자들에 대한 제2의 폭력”이라고 규정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명확한 국제법적 판단 하에 이뤄진 유엔을 비롯한 각국의 결의와 요구를 즉시 받아들일 것”을 엄중히 요구했다.

또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문제 해결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외면과 방치로 일관해왔음을 비판하면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도록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의 메시지가 담긴 퀼트.

‘위안부’는 1932년 상해 사변에서 비롯되었고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본격화됐다. 1932년 1차 상해 사변 때 오카무라 야스지 상해 파견군 참모부장이 상해 지역에서 발생한 몇 건의 강간 사건을 계기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안부’를 요청한 것으로 시작됐다.

일본정부는 전쟁중 일본이 ‘위안부’ 제도를 설립하고 운영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공문서 발굴과 피해자, 일본 병사 등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창설, 운영주체가 일본군과 국가였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또 1992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걸쳐 위안부에 대한 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하고 중대한 인권침해가 자행됐음을 인정했지만 끝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어린 소녀들은 그곳에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말못할 고통과 참상을 겪은 것은 물론, 일본이 패망한 후에는 현지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무수히 목숨을 잃어야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병마와 정신적 고통으로 고단한 세월을 보냈고 234명이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올해에만 16명이 세상을 떠나, 단 63명만이 일본의 사죄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린 것은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을 한 덕분이었다. 또 그 이전부터는 정대협 초대 대표를 맡기도 했던 윤정옥 선생과 사회학자 이효재 선생의 노력이 있었다.

   
▲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정부에 이렇게 외쳤다."일본 대사는 들으라, 평화의 길이 열렸으니 일본 정부에 고하라.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1990년대부터 많은 단체와 개인들은 끊임없이 일본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고,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항의하는 공개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당시 공개서한에 참여했던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1990년 11월 16일 결성한 것이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다. 정대협은 1991년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설해 피해자들의 공개 증언을 이끌어 내고 국회의원 등과 연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지원법’ 제정을 요구 1993년부터 피해자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됐다.

그리고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최초의 수요집회가 열려 오늘에 이르렀다. 수요집회는 연인원 5만명이 참석하고 세계 최장기 집회로 기록되고 있지만, 어쩌면 가장 서글픈 기록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는게 기적이야. 박물관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역사를 보고 배워서 우리처럼 속지도 말고, 우리처럼 그런 수난도 당하지 말고, 그렇게 험난한 세월을 보내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길원옥 할머니

정대협은 현재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위안부 생존자 20여 명이 정부로부터 받는 생활비를 조금씩 모아 주춧돌 기금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12월 18일부터 건립을 위한 연대와 지원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박물관 건립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은 물론 다시는 같은 전쟁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육하고 인권과 평화를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도록 하자는 염원에서 시작됐다. 박물관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달려온 여성들의 운동사와 세계의 전쟁 중 여성인권 유린 사례 등을 알림으로써 기억과 체험, 연대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기획됐다.

정대협 활동과 후원은 홈페이지(http://www.womenandwar.net/)를 통해 알 수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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