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50/50>, 조나단 레빈 감독, 2011

암환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코미디라니, 이건 너무 뻔뻔할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의 실제 경험이라는 정보를 얻고서, 암을 이기고 살아난 이가 스스로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면 그건 또 다른 괜찮은 시도일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겨났다. 나도 암환자의 가족이었으니 그의 대처가 궁금하기도 했고.

스물일곱의 라디오 작가 애덤은 척추암에 걸리고 생존 확률이 50%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 동안 건강 염려증으로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적절한 운동과 성 관계로 삶의 긴장감과 활력을 유지해왔으며, 게다가 사고가 무서워 운전도 배우지 않은 순진한 이 젊은이는 한 순간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여자친구인 레이첼에게 쿨하게 암에 걸렸음을 고백하고 떠나도 괜찮다고 말하는가 하면,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극성맞은 어머니를 초대하여 암을 알리는 멋진 신고식도 치른다. 게다가 절친인 카일은 ‘50대 50’이면 카지노에서 최고의 확률이라며 쾌재를 부른다. 환자 본인이 이렇듯 쿨하니 눈물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영화는 암환자가 된 이후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인생이 얼마나 우스운 일들로 가득한지를 꼼꼼하게 보여준다.

카일은 내켜 하지 않는 애덤을 설득하여 떠들썩하고 어색한 암 선언 파티를 연다. 직장상사는 애덤을 끌어안고 ‘잘 가라’는 마지막 인사를 하거나, 동료들은 환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티를 즐긴다. 여친 레이첼은 병원 앞에서 병원 안의 우울한 공기가 싫다면 함께 들어가길 꺼려하고, 그러다 바람이 나고, 들키고, 다시 찾아와 곁에 있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절친 카일은 여자들의 동정심을 자극하여 원나잇 스탠드할 요량으로 애덤에게 암을 이용해 보자고 꼬드긴다. 이 일은 꽤나 성공적이어서 쿨하게 빡빡 깎은 머리를 들이대는 암환자 애덤은 여자들의 인기를 산다. 초보 상담심리사 캐서린은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 대로 애덤을 상대하여 황당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자신의 실연을 환자에게 고백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 외, 이 영화에는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선 후에라야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감동들이 펼쳐진다. 동료 암환자들과의 죽음에 대한 가벼운 농담들, 치매 아버지에게 사랑을 전하고 교감하는 방식, 주변인들이 슬픔을 감추고 어떻게 환자를 대하는지 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거리를 두고 사건을 관찰하는 관객에게나 희극이지 환자 본인에게는 비극일 수밖에 없으니. 수술을 앞두고서 점차 주인공에게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오는 순간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이고 시나리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아는 마당에 그의 죽음을 염려할 일은 없으니, 안심하고 그의 불안을 지켜보면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고 일상적으로 암환자를 둘러싼 사건들을 소개하는 정도이지, 극적인 감정 고양의 장면들은 자제한다. 코미디와 슬픔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어느 한쪽을 과장하지 않는다. 이런 전략으로 인해 영화는 현실성을 획득한다.

시한부 주인공은 멜로드라마의 익숙한 관습이다. 어린 시절, TV 명화극장에서 <러브 스토리>, <스텔라>, <필링>, <선샤인 온 마이 숄더>를 보며 온 식구들이 서로 등돌리고 앉아 훌쩍거리던 그런 기억. 꼭 시한부를 사는 사람은 운명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 뭔가를 이루려고 하고, 그래서 주인공에게 더욱 연민이 생겨나고, 남겨진 한 사람은 쓸쓸히 길을 떠나는 방식. 이런 게 암환자를 다루는 익숙한 방식이었다.

<50/50>은 익숙한 멜로드라마 캐릭터를 가져와 코미디로 비튼다. 감정과잉의 투병과정을 보여주기 보다는, 호들갑스러운 미국 시트콤처럼 말이 많고, 오지랖 넓거나 눈치 없는 주변인들을 보여주는 것을 선택한다. 영화의 서사적 전개가 다소 심심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온 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깊이는 어째 부족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암환자가 흔한 현대에, 내게도 불치병이 닥친다면 주인공처럼 쿨하게 죽음과 마주하고 이겨내리라는 인생의 지침 같은 것을 던져준다.

판타지 그 자체인 <브레이킹 던>이 온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는 이번 주 극장가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뭔가 감동을 얻고 싶다면, 이 영화 괜찮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은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은 블록버스터 <인셉션>과 인디영화 <500일의 썸머>로 얼굴을 알린 청년으로 힘들어간 전형적인 장르형 캐릭터와 자유분방한 일상적 연기가 모두 가능한 재능을 가졌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EBS 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동국대, 숭실대 출강 중.
쉽게 정보가 눈에 뜨이지 않는 영화들 추천을 통해
영화로 닥치고 소통하는 명랑한 공동체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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