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지요하]

가톨릭교회의 ‘위령성월’인 11월도 어느새 거의 기울어간다. 11월은 늦가을과 초겨울이 겹치는 시기이다. 또 수확과 조락이 동시에 진행되는 때다. 11월이 기울어가는 지금은 들판에 황막함만이 가득하다. 조금 전까지 연둣빛과 황금물결이 출렁대던 들판에 황막함만이 가득해진 풍경은 처연하기도 하고, 그 허전함과 쓸쓸함이 아름답기도 하다. 가톨릭교회가 11월을 세상 떠난 영혼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기도하는 ‘위령의 달’로 정한 것은 당연지사요 인지상정일 법도 하다.

11월에 세상 떠난 이들을 많이 기억하고 기도하며 사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만추에서 초겨울로 들어서는 지점에서는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마음의 옷깃을 여미기도 한다. 허허로움과 황량함 같은 것을 체감하는 가운데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의 갈피를 세워보기도 하고,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표’가 새삼스럽게 명확해지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자신의 인생을 좀 더 뜨겁고 확실하고 올바르게 살려는 의지도 생동한다. 계절이 안겨주는 황량함과 허허로움 속에서 인생의 바른 경작에 대한 열의와 다짐이 새롭게 생동한다는 것은 역설이기도 하다. 이 역설 속에서 인간의 창조의지는 더욱 증대되는 것이다.

11월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들

하지만 사회 현실은 우리에게 계절과 관련하는 감상이나 낭만 따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난삽하고도 공명정대하지 않은 일들의 범람현상 때문에 우리 사회는 계속적으로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공명정대하지 않은 일들의 범람현상과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되기 마련인 소용돌이들은 대부분 국가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빚어진다. 또 그것의 상당 부분은 그들의 빈약한 사고력과 통찰력에서 연유한다. 그들에게 역사의식이니 정치철학이니 하는 말은 너무 고급스러워 어울리지 않는다. 사고력과 통찰력이 빈약한 사람들에게 역사의식과 철학적 품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들의 특징은 ‘오늘만 살려는 태도’이다. 사람은 결코 오늘만 사는 게 아닌데도, 또 오늘은 내일을 위한, 내일로 가는 과정일 뿐이건만 그들은 내일을 생각지 않는다. 내일이야 어떻게 되든 그저 오늘만 열심히 짓고 부수고 꿰맞추면 그것으로 만사가 형통되는 것으로 여긴다.

사람이 오늘을 잘 살면 내일도 잘 사는 법이다.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오늘 최선을 다한다. 오늘 애정으로 심은 나무는 내일에 가서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그런 순리와 창조성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은 역사에 대한 외경심, 역사에 대한 사랑, 역사창조 의지 등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역사의식은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기본적인 역사의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쥐고 국정을 농단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는 내일과 상관없이 그저 오늘만 중요하다. 권력을 쥐고 권력놀음을 즐기며, 무리수를 두더라도 오늘만 잘 챙기면 그것이 ‘성공’인 것으로 안다. 그리하여 업적과 업보를 구분하지 못한다. 무수히 업보를 만들어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들면서도 그것이 업적인 줄로 안다. 업보를 업적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또 무리수를 두니, 악순환이 악순환을 낳는다.

거짓은 거짓을 낳는 법

▲ 오바마와 이명박.
애초부터 속임수로 출발한 정권이었다. ‘도깨비방망이’라도 가진 듯이, 비현실적인 허무맹랑한 공약들을 가지고 국민들을 현혹했다. 물론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들 다수가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실현 가능한 내용인가를 저울질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저런 사정들과 요인들이 결부되면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도 환상작용을 낳는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명박은 ‘경제도사’로 치환되기도 하는,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환시적인 모습으로 정권을 잡았다. 그가 내세운 공약들은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둔 오늘까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도깨비방망이는 확실하게 휘둘렀다. 만능에 가까운 도깨비방망이로 BBK를 요술주머니 속에 넣어 감추고, 4대강을 확실하게 파괴하고, 용산에도 불을 지르고, 천안함 사고를 가지고 북한 해군을 신출귀몰하는 세계 최강 해군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한미FTA를 가지고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미국인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미국 의회에서 45분 연설하면서 45번이나 박수를 받아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입‧퇴장을 포함하여 기립박수를 5번이나 받은 것도 세계 신기록이다.

또 미국 의회 연설 원고를 미국 전문 업체에 거액을 주고 의뢰한 것도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의회 연설의 박수갈채를 미국 전문회사에서 연출을 한 것도 우리 역사상 처음을 장식한 일이다.

이명박의 도깨비방망이는 정말 만능에 가깝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제협약’을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한 신기록도 만들어내었고, 진짜 보수들의 설 자리를 까뭉개버리는 일도 감행했다. 보수(保守)란 말 그대로 ‘지킬 것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킬 것을 지키는 것에는 무엇보다 자존감이 생명이다. 자존감이 없는 보수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데 자존감이란 한 줌도 없고, 그저 친일 아니면 친미 따위의 사대주의 근성만 머리에 가득한 사이비 보수들, 진짜 보수들을 능멸하고 무색하게 하는 가짜 보수들이 보수의 탈을 쓰고 설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진짜 보수가 거의 없다는 말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언젠가 나 자신을 깊이 분석해 본 적이 있다. 여러 가지를 놓고 볼 때 나는 ‘진보’가 아닌 ‘보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지킬 것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를 가지고 산다. 4대강도 지키고 싶었고, 천안함 사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안들 가운데서 ‘진실’을 추구하고 싶었다. 나는 보수의 가장 큰 덕목은 진실과 정직이며 민족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을 지닌 알짜 보수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저 가짜 보수들, 특히 보수로 치장되기도 하는 이명박의 도깨비방망이가 실로 혐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도깨비방망이가 내일에도 무사할까

이명박의 도깨비방망이는 ‘쥐의 수염’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BBK, 천안함 등과 관련하여 미국이 ‘쥐의 수염’을 꽉 쥐고 있다는 말도 널리 퍼져 있다.

오늘 휘두르는 도깨비방망이가 내일까지 건재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늘 마음껏 휘두르는 도깨비방망이가 내일에는 크나큰 업보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당연지사이기도 하다. 또 역리와 순리가 서로 교차하고 점철되면서 역사의 궤적을 만들어 간다. 내일을 생각지 않고 오늘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보일 리 없다. 그러나 무릇 깨어 있거나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들은 내일이 있음을 알고 내일을 보고 살기에 희망을 갖는 법이다.

지요하
막시모, 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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