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한국사회에서는 기묘하게 뒤틀려있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이를테면 우파로 불리는 정치세력은 대외적으로 문호개방에 제한적인 태도를 취하며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적 가치를 중시한다면, 좌파로 불리는 진영은 민족주의보다는 대외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강조하고 공동체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을 더욱 중시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우파는 '우파'가 아니라 '매판세력'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우파를 자칭하는 세력은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기는커녕 개인, 그것도 기득권을 보유한 일부 특정 개인들의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옹호하기에 바쁘다. 그뿐 아니다. 외부세력 특히 민족공동체의 자립을 위협하는 미국과 일본 등 강대국에 대해 유독 문호를 개방하다 못해 곳간 열쇠까지 내주지 못해 안달복달이다. 따라서 우파가 아니라 '매판세력'이라고 불러야 적당한 것 아닐까 싶다.

이 나라 경제주권을 위협하고 민중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한미 FTA협정’이 아니어도 한국은 대외개방도가 대단히 높은 시장이다. 특히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환경은 어느 나라 시장보다 더 넓게 문이 열려있는 개방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한미 FTA협정’에 반대하는 측을 개방에 역행하는 쇄국주의자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며 억지논리를 내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것처럼 이번의 ‘한미 FTA협정’은 국민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이미 글로벌기업이 되어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이야 그만한 혜택을 입게 되겠지만 그들이 얻는 수익이 다수의 민중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낙수(落水)효과 또는 적하(滴下)효과라고 불리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이론, 즉 대기업에 자원을 집중투입하면 점차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 전반적인 경기부양의 효과를 낸다는 논리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저 4대강 사업에서도 날품팔이나 다름없는 건설일용노동자의 고용이 늘지 않았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2005년 우리나라의 연간 교역량이 5.000억 달러를 넘어선 지 6년 만인 올해 말 1조 달러를 달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6년간 살림살이가 두 배로 나아졌다고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고용이 두 배로 늘어났나? 체감경기가 두 배로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는가? GNP(국민총생산)나 GDP(국내총생산) 숫자놀음으로 대중을 마취시킬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GNP든 GDP든 1인당 평균소득이 얼마인가가 구체적인 시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운 일본의 우파들은 틈만 있으면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때 ‘NO라고 외칠 수 있는 일본’류의 서적들이 서점을 휩쓸었듯이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는데 나름대로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이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에 대한 침략성향으로 나타난다는 데 문제가 있긴 하다.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의 집권층이 주력했던 일 중의 하나가 페리제독에게 개항을 강요당한 이래 미국과 열강들과 체결한 불평등조약을 폐기하는 일이었다. 미국의 함포외교에 위협 당하기도 하고 서구열강 중심의 국제질서에 어두웠던 탓에 자신들의 주권을 크게 제약하는 불평등조약을 체결했으나 이를 폐기하지 않으면 당시의 국제질서에서 일본이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것이다. 결국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이를 바탕으로 근대국가로 성장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들이 현재 일본의 우익을 자처하는 세력은 아니다. 일본에서 우익을 자처하며 김태희와 같은 한류 연예인 추방 캠페인이나 벌이는 세력은 전전(戰前)부터 일본 정계의 외곽을 형성하던 도야마 미쯔루(頭山滿)와 같은 정치낭인집단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마디로 극우 떨거지들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우익의 본류는 자민당과 집권 민주당 주류세력이다. 이들 우익의 본류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국익, 그것도 재벌과 소수 대기업의 이익만이 아니라 정치경제 및 역사공동체로서 일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유리한 가 아닌가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실천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우파적 관점에서 보는 정체성이고 국익이긴 하지만. 일본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의 우파 정치세력은 대체로 이와 같은 정치적 궤적으로 걷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우리나라 '자칭' 우익

그러나 우리나라의 자칭 우파들은 어떻게든 상전나라인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나라 민족주의운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3.1운동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자거나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재결합을 통해서 민족의 기상을 드높여 그 좋아하는 국어사전에도 안 나오는 ‘국격(國格)’을 높이자는데 조모 기자, 서모 예비역 대령이나 어버이 연합을 비롯한 자칭 우익세력이 앞장서는 것을 볼 수 없다.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지금이라도 불법으로 날치기한 ‘한미 FTA협정’을 무효화하는 데 이 땅의 양심세력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누가 일당을 주거나 동원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공동선을 위해 싸우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양심세력이야 기꺼이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으며 불평등협정을 무효화하는 싸움에 나설 것이다. 이럴 때라도 자칭 우익세력이 힘을 보태준다면 굴욕적인 불평등 협정, 무엇보다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의 살림살이를 더욱 옥죄이고 빈부의 간극을 더 넓고 깊게 벌릴 괴물을 몰아내는 일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나라의 고질병 중의 하나인 보혁 갈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어 정말 대화와 타협으로 사회갈등이 조정되고 해소되는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라는 몽상을 가져 본다.

황인오 (부천@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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